1. 고전건축의 시대사
기원전 14세기 경에 소아시아 지역에는 두 개의 문명이 발전했다. 아나톨리아 고원 내륙에는 히타이트의 문명이, 그리고 서쪽 에게해 연안에는 트로이 문명이 개화했다. 히타이트는 기원전 1183년에 이집트에 의해 멸망했고, 트로이는 7년후 그 유명한 트로이 전쟁에서 그리스 본토의 미케네인들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다. 호머의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는 바로 소아시아와 북부 에게해의 전쟁신화다.
이미 기원전 13세기부터 그리스인들은 이 지역에 진출하기 시작했으나, 그리스인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도시와 주거지가 건설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7세기부터다. 모든 지중해 연안지역에 이주 정착하기 시작한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식민도시를 건설하여 무역 기지로 삼았고, 무역을 통해 얻어진 막대한 재화와 인력은 도시건설과 건축문화로 승화되기 시작한 시점이다. 소아시아 지역에는 수십개의 식민도시들이 건설되어, 소아시아는 그리스 본토, 마그나 그래시아 (전 지중해 연안의 식민지)와 함께 ‘헬렌의 세계’를 이루는 3대 거점이 되었다. 소아시아에 그리스적 도시가 정착되기 시작한 이후 동로마제국이 건설되기까지의 기간은, 그리스 문화권 전역의 시대구분에 맞추어, 대략 4개의 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
아르카익 시대(750BC-479BC)는 도시들이 개척되기 시작한 초기로 남아있는 유적은 그다지 많지 않다. 또한 이시기는 페르시아와 그리스가 잦은 전쟁을 통해 지중해의 패권을 다투던 시기로 수준높은 도시나 건축을 건설하기는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건축은 프리에네의 아테네 신전이다. 여기에 사용된 이오닉 오더는 이집트와 애올리스 지방 전래의 종려잎 주두에서 발전된 것으로, 그리스 건축의 3대주두 중 하나가 되었다. 이오닉 오더의 명칭은 그것이 발생하고 유향했던 이오니아 지방의 명칭에서 유래한 것이다.
클래식 시대 (479BC-323BC)는 페르시아를 패퇴시키고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 도시국가 연맹이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한 평화시대다. 모든 예술과 철학은 최고로 발전하였으며, 많은 식민도시들이 본격적으로 건설되었다. 특히 이 시대에는 건축 뿐 아니라 조각은 최고의 수준을 자랑할 수 있었다. 할리카르수스의 마우쏠레움이나 크쌍투스의 네레이드 기념물은 완결된 건축비례 뿐 아니라 사실적인 조각 장식품으로 유명하다. (두 작품 모두 현재는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이전되어 있다.)
헬레니즘 시대(323BC-130BC)는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으로 시작된다. 아프가니스탄 지역까지 진출했던 알렉산더가 급서한 후, 소아시아 지역은 그의 부하였던 3인의 장군들에 의해 분할 통치되었다. 쎌레우코스, 안티고노소, 리씨마코스는 이 지역에 많은 도시와 소왕국들을 성립시켰다. 그 가운데 강력한 왕국은 내륙의 카파도키아와 이오니아 지역의 페르가뭄이었다. 페르가뭄은 소아시아 에게해 연안 최강의 국가로서 현재도 매우 수준높은 도시와 건축의 유적을 보존하고 있다. 건축에는 코린트 오더가 유행했으며 고유의 종려잎 주두도 발달했다.
로마제국 시대(130BC-330AD)의 도시들은 헬레니즘 기의 유산을 충실히 계승 발전시킨 것이다. 에페수스는 인구 40만의 대도시로 확장되어, 로마제국 내의 최대 도시로 명성이 높았다. 사도 바울이 안티오키아와 에페수스를 주된 전도의 대상으로 삼은 이유도 그 도시적 상징성 때문이었다. 서기 284년 동로마제국이 니케아에 수도를 정하면서 소아시아는 기독교의 중심지로 부각되었고, 330년 비잔티움에 천도함으로써 고전시대는 막을 내리게 된다.
천혜의 무역항을 가지고 있었고 배후에 넓은 농경지를 확보할 수 있었던 이 지역의 지리적 이점은 그리스 본토나 로마 본토보다 더 많은 도시와 건축을 건설하게 하였다. 신전만 예로 들더라도, 전 그리스 문화권에서 최대의 신전은 시칠리아 부근 사모스의 헤라신전이었고, 둘째는 에페수스의 아르테미스 신전이었고, 셋째는 디디마의 아폴로 신전이었다. 모두 그리스 본토 바깥에 건설되었고, 특히 소아시아 지역에 집중되었다. 소아시아 지역은 그리스 본토보다 더욱 많고 수준높은 거축과 도시유적으로 간직한 보고가 되었다.
2. 도시와 건축의 구성
그리스와 로마시대는 이른바 ‘건축유형의 백화점’이라 불린다. 민주정치제도의 실현과 다양한 계층으로 구성된 사회조직, 그리고 복잡한 신앙체계로 인해 다양한 용도의 건축들이 필요하게 되었고, 건축적 유형들이 고안되고 발전되었다.
도시의 상징적 중심은 주신전 main temple이다. 각 도시는 자신의 수호신들을 가져야했고 대개 제우스 헤라 포세이돈 아르테미스 아테네 등이 모셔졌다. 주신전은 도시내에서 가장 장대하고 최고 수준의 건축물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에 올려진 파르테논 신전의 위치는 이례적이다. 보통 주신전은 도심 내 한 구역을 차지하거나, 아크로폴리스 아래에 위치하여 일반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자리를 잡았다.
철저하게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도시들의 행정중심은 시청사 prytaneum와 의사당 buleuterion이었다. 시청사는 주로 바실리카형식으로 구성되었고 내부에 작은 헤스티아 사당을 가져서 건강의 여신이 도시를 보호해 줄 것을 기원했다. 의사당은 지붕을 가진 작은 계단식 공간이었다. 내부는 100-20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고 바깥이 작은 중정을 두어서 의원들의 로비장소로 삼았다.
이오니아 도시들은 무역과 대규모 농장경영 등 경제적 목적 때문에 형성된 곳들이다. 따라서 이 도시들의 중요한 주인은 다름아닌 상인계층들이었고, 상업행위를 위한 공간들이 도시의 태반을 차지하게 되었다. 도시의 상업 중심지인 광장 agora은 상점주택stoa들과 열주회랑collonade으로 둘러쌓인 사각형의 외부공간이었다. 그 성격에 따라 시장 아고라가 되기도하고, 시청 아고라가 되기도 했다. 시장 아고라는 유럽도시의 시장광장의 원형이 되기도 한다. 시장 아고라의 중앙에는 상인들의 신을 모신 작은 신전이나 사당이 있다. 아고라가 사각형의 공간이기 때문에 사당들은 주로 원형으로 조성된다.
그리스 로마도시들이 페르시아 따위의 전제군주도시와 다른 것은 시민들을 위한 문화와 교육시설이 발달했다는 점이다. 문화시설의 중심은 옥외 원형극장 theatre이다. 반원형 혹은 말굽형으로 구성된 계단식 극장에서 시민들의 정치집회와 대형 연극들이 열렸다. 도시의 민주정치를 위해서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시설이었다. 아스펜도스나 시데의 극장은 20,000석 규모로 건설되었고, 그 숫자는 그 도시의 성인 남자시민 인구와 동일하다. 극장에는 연극의 신인 디오니수스를 위한 작은 신전이 모셔졌다. 음악당 odeum은 주로 뮤지칼을 공연하던 곳이다. 평면과 단면형식은 원형극장과 유사하지만, 규모가 몇백석 정도로 작고 지붕을 덮은 실내공간인 점이 다르다.
교육문화시설로는 도서관 library을 꼽을 수 있다. 특히 비교적 태평기였던 헬레니즘과 로마제국 시대의 도시에 필수적인 시설로서 에페수스의 켈쑤스 도서관이 유명하다. 도서관 안에는 지혜의 여신인 아테네를 위한 소신전이 조성됐다. 학교 gymnasium은 지식교육과 체력단련을 동시에 실시하던 곳이다. 지덕체智德體의 일체화는 당시 교육의 목표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나지움은 넓은 공간과 조용한 환경을 요하기 때문에 도심지 외곽에 위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무엇보다 인간의 신체를 중요한 가치로 여겼던 고전시대에서 경기장 stadium은 빼놓을 수 없는 시설이었다. 특히 마차경기는 대중적 스포츠로 각광을 받았고 대규모 마차경기장이 주요도시에 건설되었다. 흔히 경기장은 극장과 함께 도시의 입구부분에 위치한다. 이는 두 시설 모두 대규모이며, 계단식 객석을 만들기 위한 구릉지가 필요했고, 특히 도시의 위용을 과시할 수 있는 대표적 시설물이었기 때문이다.
도시의 중심을 이루는 아고라 부근에는 여러 가지 편의시설들이 산재한다. 영웅들 위대한 정치가들을 기념하기 위한 사당 heroum들이 요소요소에 자리잡았고, 공회당으로 쓰이는 바실리카와 각종 기념시설물들이 설치되었다. 로마시대의 도시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시설은 바로 목욕장 bath이었다. 알려진대로 목욕장은 시민들의 사교시설이자 유희시설이었기 때문이다. 목욕장은 매우 큰 규모로 경영되었고, 에페수스나 뻬르게의 목욕장들은 아직도 원형이 잘 남아있다. 또 아고라 근처에는 필수적으로 공중화장실이 설치되었다. 특히 페르가뭄이나 에페수스와 같은 대도시의 화장실은 수십명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대규모였다. 에페수스의 것은 남녀로 구분되었고, 바닥에는 상수도가 흘러 뒷처리를 할 수 있었고, 하부에는 하수도 시설이 되어 매우 위생적이었다.
도시경계에는 성곽을 쌓아 방어했다. 성곽에는 성문들이 생기고, 성문 주변에는 분수대 nymphanium를 두어 행인과 시민들에게 음료수를 제공했다. 님파니움은 단순한 식수대일 뿐 아니라 화려하게 조각하고 장식하여 도시의 얼굴 역할을 했다. 도시의 정문부터 중심 아고라나 주신전까지의 중심도로 gallery는 양편에 열주회랑이 달리고 바닥은 대리석으로 장식되었다. 특히 이러한 갤러리들은 로마시대에 발달하여, 로마 특유의 경관도 sceenography를 형성했다.
그리스 로마도시는 도시의 하부구조, 즉 상하수도 시설이 완벽히 갖추어진 것으로 유명하다. 멀리 산이나 계곡에서부터 식수를 끌어오기 위해 수십km에 달하는 수도관 aquaduct과 수도교를 설치했으며, 그 일부가 아직도 남아있다. 소아시아 지역에서는 아스펜도스의 유적이 가장 확실하다. 도시의 모든 생활하수는 지하에 묻힌 하수도를 통해 강으로 배출된다. 각 가정에서는 작은 토관을 묻어 하수도로 연결된다.
여기까지가 일상적 도시의 구성이다. 고전도시들은 모두 3개의 도시로 이루어지는 집합체다. 일상아도시 middle city, 아크로폴리스 upper city, 그리고 네크로폴리스 lower city. 아 크로폴리스는 높은 지대에 만들어지는 한 구역이다. 높은 절벽 위에 위치하여 유사시의 최후 방어처로 삼았다. 대도시의 경우 아크로폴리스에 주신전과 부속시설들을 두기도 한다. 그럴려면, 주변에 성곽을 둘러 내성으로 삼고, 그 입구에는 대문채 propylon를 건설했다.
네크로폴리스는 죽은 자들의 도시, 다시 말해서 공동묘지다. 이 지역의 장례풍습은 독특하여, 돌로 작은 집을 지어 시신을 담은 돌관을 안치했다. 사자의 주거 겸 사당으로 쓰기 위해서다. 묘지는 흔히 성문 바깥, 도시의 입구에 만들어진다. 가장 인상적인 네크로폴리스는 아네무리온에 있다. 리키아 지방에는 바위절벽을 깍아 내부를 만든 암굴무덤이나 기념탑 모양의 묘지가 발달했다. 암굴무덤들은 도시 입구 원형극장 옆에 위치하고, 기념탑 무덤들은 도심내 혹은 원형극장 안에 위치하기도 한다.
식민도시들은 대부분 격자패턴으로 계획되었다. 대표적인 밀레투스는 로마시대에 15,000명의 도시로 확장되면서 400여개의 작은 격자블록으로 이루어졌다. 공공시설들은 4개 혹은 6개 블록을 차지했으며, 중심 아고라는 무려 28개 블록을 차지했다. 그리스 도시가 일반적으로 유기적인 패턴으로 구성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비교적 초기에 속하는 프리에네의 경우는 급한 경사지임에도 불구하고 78개의 격자블록으로 이루어졌다. 식민도시들은 무엇보다도 단기간에 건설이 완료되어야 했고, 이주자들에게 균등한 소유권을 제공하여 많은 이민들을 유도해야 했다. 단기 계획과 균등성을 위해서는 격자형 도시계획이 최상의 틀로 작용했던 것이다.
3. 유적의 사례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지역에 남아있는 고전 유적들은 로마시대의 것이 대부분이고 약간의 헬레니즘시대의 것, 그리고 그 이전의 것은 매우 희귀하다. 그 이유로는 우선 도시건설의 수효가 헬레니즘 시대에 집중되었다는 점이다. 아르카익 시대에 이 지역은 실질적으로 페르시아의 통치 밑에 있었고, 클래식 시대라도 아직 그리스의 국력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헬레니즘은 본토의 개념이 없는 세계국가를 표방하였고, 막대한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신도시들을 개척할 수 있었다. 로마제국이 차지한 영토 가운데, 소아시아 해안지역은 가장 문화가 발달한 지역이었다. 따라서 중북부 유럽에 신도시를 개척한 것과는 반대로, 이 지역은 기존의 도시들을 더욱 확장 발전시키면서 새로운 건축물들은 계속적으로 건설하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로마의 건축구법이 그리스와는 달랐다는 점이다. 아취를 도입한 로마건축술은 석재를 잘라서 쌓는 이른바 조적식 stereotomic 구법이었고, 그리스의 건축술은 기둥과 보를 쌓아 올리는 구축식 tectonic 구법이 위주였다. 구축식 구법은 조적식에 비해 세우기는 어렵고, 무너지기는 쉽다. 아취를 조적한 목욕장이 잘 남아있는 것에 비해서, 높은 기둥들을 가진 신전들은 거의 무너져버린 이유가 될 것이다.
소아시아에는 지중해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많은 신전건물들이 건축됐지만, 남아있는 예는 매우 적다. 앞서 말한 구법의 문제도 크지만, 더욱 큰 이유는 이 지역이 다름 아닌 초기 기독교의 전파지였고, 동로마제국이 들어선 이후로 특유의 우상파괴적 정통교회의 성격 때문에 이교도의 신전들을 파괴해 버렸기 때문이다.
반면 가장 잘, 많이, 크게 남아있는 것은 다름아닌 원형극장들이다. 경사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였기 때문에 크게 무너질 것이 없으며, 조적식으로 쌓아올린 구법적 견고함도 이유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원형극장이라는 공간은 어느 시대에도 이용할 수 있는 다목적 시설이었다. 가장 잘 보존된 아스펜도스의 극장은 이슬람들의 술탄들이 관청으로 사용했을 정도였다. 현대에는 음악당이나 오페라장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소아시아 지역의 수많은 도시와 건축유적을 다 소개할 수는 없다. 단지 지역별로 남아있는 유적지의 이름만 나열함으로써 소개에 대신한다. 각 지방들은 지중해 북쪽해안, 즉 이스탄불에서 가까운 지역부터 먼 곳의 순서다.
<**표는 중요한 등급 / ( )안은 현재의 지명>
1) 트로아드와 애올리아 지방
트로이** 네안드리아 알렉산드리아 트로아스 (오둔루크 이스켈레시)
아소스 (베람칼레) 아시안 애오리스 페르가뭄 (베르가마)***
2) 북부 이오니아 지방
시미르나 (이즈미르) 에페수스***
3) 남부 이오니아 지방
프리에네*** 밀레투스** 디디마의 아폴로 신전***
4) 헤르무스와 매안데르 계곡
사드리스 (사르트) 히에라포리스 (파무칼레)** 아프로디시아스
니사 (술탄히사르)
5) 카리아 지방
에우로무스의 제우스 신전* 밀라사 (밀라스) 라브라인다
할리카르나쑤스 (보드룸)** 크니두스
6) 리키아 지방
카우누스 (달리안) 피나라 더 레토움 크산투스* 파트라
안티펠루스 (카스) 미라* 파셀리스*
7) 팜필리아 지방
아딸레야 (안탈랴)* 테르메쑤스 뻬르게** 아스펜두스** 시데*
아나무레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