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일
2000.05.01.
출처
RAILROAD
분류
건축역사

온돌은 이미 한국집의 대명사가 되었다. 외국의 백과사전에 한글 명사를 가진 항목은 ‘온돌’과 ‘김치’ 뿐이라는 자랑 아닌 자랑도 등장할 정도다. 따라서 온돌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우리네 방안을 따뜻하게 했던 것으로 여기기 쉽지만, 의외로, 온돌이 한반도 전역에 전해진 때는 빨라야 고려말이었고, 제주도에는 19세기경에야 일반화되었다. 우리 건축에는 온돌뿐 아니라, 마루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20세기 초까지도 함경도 지역에는 마루를 가진 집이 없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오래 전에는 북쪽에는 온돌만 가진 집이, 남쪽에는 마루만 가진 집이 있었고, 마루와 온돌을 한 건물 안에 같이 갖게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또한, 마루와 온돌을 함께 가진 집이 바로 ‘한옥’이라 할 정도로, 한국 건축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마루’라는 용어는 원래 ‘높은 곳’이라는 의미다. 산의 가장 높은 능선을 ‘산마루’라 하고, 지붕이 하늘과 맞닿은 가장 높은 선을 ‘용마루’라 부른다. 그렇다면 나무 널판을 깐 바닥을 뜻하는 집의 마루는 높은 곳에 위치한 바닥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시골 수박밭 가운데 우뚝 서있는 원두막과 같이 지면에서 떨어져 높은 곳에 위치한 나무바닥을 마루라고 부르기 시작하여, 위치를 가르키는 용어가 장소의 용어로 바뀐 것이다. 이처럼 높은 바닥을 가진 집을 ‘고상형 주거’라고 부르며, 이들은 주로 따뜻한 남쪽지방 – 구체적으로는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발생하여 한반도로 북상한 해양성 건축요소라 할 수 있다.
마루는 원시시대부터 만들어졌을 것이지만, 그 흔적은 발견할 수 없다. 나무판으로 만들어진 마루는 썩거나 불에 타서 흔적을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농촌 과수원에 만들어지는 ‘원두막’ 등에서 그 원초적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또, 동남아시아나 태평양 지역같이 더운 지방의 주택들에서 마루로만 만들어진 집의 모습을 그려볼 수있다. 예전, 한반도 남쪽에 있었던 집들도 이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온돌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마루와 반대되는 요소다. 아득한 옛날, 추운 북쪽 지방사람들은 땅을 파고 내려가 바닥을 고르고 지붕을 덮어 집을 마련했다. 이러한 집을 ‘움집’ 혹은 ‘수혈식 주거’라 부른다. 그러나 흙바닥만으로 추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궁리와 실험을 거듭한 끝에 발명한 것이 바닥에 넓적한 돌판을 깔고 그것을 불로 달구어 온기를 보존하는 ‘온돌’이었다. 당연히 온돌은 북쪽지방 – 극동 시베리아와 만주일대 -의 대륙성 요소로 발생하여 남쪽으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온돌의 흔적은 청동기 시대의 주거지에서 흔히 발견된다. 그러나 원래부터 바닥 전체에 구들을 놓고 난방을 했던 것은 아니다. 고구려나 삼한 지방에서 발견되는 주택들은 방안 한쪽에 벽을 타고 ㄱ자형으로 구부러진 부분 온돌이 놓였다. 이 부분 온돌이 놓이지 못한 곳의 바닥은 여전히 흙바닥이었고, 궁궐같이 고급스러운 집에는 벽돌을 깔았다. 여기에는 의자나 평상을 놓아 현대와 같은 입식생활을 했고, 잠자거나 쉴 때만 부분 온돌 위에 누웠을 것이다.
한반도의 남쪽에서는 마루라는 높은 바닥이, 북쪽에서는 온돌이라는 낮은 바닥이 전파되기 시작한 지 오랜 세월동안, 이 두 이질적 바닥들은 서로 융화되지 못했다. 온돌은 아궁이를 방바닥보다 낮게 파고 들어가야만 난방 효율이 좋았고, 마루는 방바닥보다 높을수록 세원하게 지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온돌은 불을 필요로 하지만, 마루는 높고 불을 멀리해야 하는 요소였기 때문이다. 고려 때 까지만 해도 건물 한동의 내부는 모두 온돌이나 마루라는 한가지 바닥으로만 만들 수밖에 없었다. 심할 경우, 온돌을 가진 건물과 마루를 가진 건물을 따로 만들어, 겨울에는 온돌집에서, 여름에는 마루집에서 지내야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 땅의 머리좋은 조상들은 갖은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드디어 한 채의 집 안에 온돌과 마루를 동시에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온돌 고래 기술이 발달하여 온돌 바닥의 높이를 높일수 있었고, 마루는 낮추어 같은 평면에서 두 바닥을 만나게 할 수 있었다. 드디어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온돌방에서, 더운 여름날에는 시원한 마루 위에서 자연의 제약을 극복하며,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집 – 곧 우리의 한옥이 탄생한 것이다.
온돌과 마루가 함께 있는 집은 한국의 집 밖에는 없다. 일본집에는 마루만 있고, 북부 중죽 주택에는 온돌의 변형인 ‘깡’은 있지만 마루가 없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우리의 한옥은 중세적 기술의 차원으로는 최첨단의 설비를 갖춘 가장 과학적이고 경제적인 집이었다고 자부해도 모자람이 없다.
온돌과 마루를 한 건물 안에 만들게 되면, 사철 언제든지 건물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경제적 장점외에도 많은 다른 효과를 거두게 된다. 온돌방은 보온을 위해 사방에 벽을 치고 창을 다는 폐쇄적 공간이고, 마루는 피서를 위해 벽을 없애거나 창을 여는 개방적인 공간이다. 온돌이 음적인 공간이라면, 마루는 양적인 공간이다. 따라서 온돌방과 마루를 바로 옆에 붙이게 되면, 폐쇄된 공간과 개방된 공간이 나란히 존재하여 음양의 효과를 거둔다. 창덕궁 연경당과 같이 방과 마루라는 이질적 공간들이 서로 연속되어, 그다지 넓지 않은 실내지만 서로 깊이있고 우아한 내부를 이루게 된다.
바깥의 외관도 두 공간들은 대조를 이룬다. 폐쇄적인 온돌방은 보통 회벽을 치고 창의 면적이 작다. 반면, 개방적인 마루는 아예 벽이 없거나 전체면에 창호를 단다. 따라서 하얀 벽면에 반사되는 햇살과, 비워진 마루에 드리운 그늘이 서로 대조를 이룬다. 한국 건축의 대표적인 외관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방들의 속성이 그대로 외관으로 나타나는 것이 우리의 건축이다. 바깥에서만 보더라도 어느 방이 온돌이고, 마루인지 구별할 수있다.
격식있는 한옥에서는 바깥에서 곧바로 온돌방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중간의 마루나 대청을 거쳐서 온돌방으로 들어가게 되어있다. 이때, 마루는 완벽한 내부도 아니고 완벽한 외부도 아니다. 이러한 공간적 성격을 건축학적으로는 ‘반외부 공간’이라 부른다. 외부에서 반외부를 거쳐 내부로 들어가는 순서를 밟는다. 때문에 이런 중간적 성격의 공간을 ‘매개 공간’이라고도 부른다. 매개 공간이 많은 건축일수록 고급스럽고 격식있는 집이 된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마루를 겨울에도 사용하고, 비바람이 들이치지 않게 한다고 마루에 유리문을 다는 경우가 많아졌다. 20세기에 세워진 서울의 도시한옥들은 예외없이 그렇다. 그러나 섣불리 유리문을 달게되면. 한옥의 깊은 멋은 사라지고, 싸구려 요리집과 같이 바뀌어 버린다. 온돌과 마루가 같는 원래의 속성을 무시하고 외관을 통일화시켰기 때문이다.
우리 건축은 규모로만 따진다면 작고 소박하다. 그러나 그 속에는 온돌과 마루의 만남이라는 역사적 발명이 그 현명함을 발하고 있고, 한국 건축의 시각적 아름다움은 바로 그 위대한 발명이 표상화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