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일
2008.02.12.
출처
미확인
분류
건축문화유산

“학교 문을 나서서 저 남대문은 / 장안을 지켜주는 서울의 대문…” 40여 년 전, 입학식 때 불렀던 옛 남대문 초등학교의 교가 첫 부분이다. 이 학교 또한 도심 개발에 밀려 사라진 지 20년이 넘어 학교 건물의 모습은 잊어버렸지만, 교가만은 음정까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 학교를 다닌 모두는 숭례문이 가장 위대한 건축물이고 가장 훌륭한 서울의 상징이라 믿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생애 처음으로 존경한 건물 역시 숭례문이었다. 그 덕일까, 결국 한국건축을 평생 전공으로 삼았으니. 그 소중한 숭례문이 불타 무너졌다. 그것도 온 국민이 지켜보는 눈앞에서, 수 십대의 첨단 소방차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치욕스럽게 쓰러져 사경에 빠져있다.
숭례문은 “예를 갖추라”는 문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무례했다. 숭례문의 성벽을 헐어내어 양팔을 잘랐고, 자동차 로타리 안에 고립시켜 매연과 소음으로 고문했다. 고층건물의 울타리로 포위해 어둠 속에 가두었다. ‘시민에게 돌려준다’는 정략의 도구로 삼아 준비도 없이, 알몸인 채로, 대중에게 노출시켰다. 발가벗긴 숭례문을 할퀴고 발로 차더니 급기야 불을 질러 생명을 끊어 버리려했다.
사경을 헤매는 환자 앞에 명의들이 모여 자신의 의술을 뽐낸다. 매뉴얼이 없었다, 감독이 소홀했다, 진화방법이 미숙했다…. 어느 환자에게나 내릴 수 있는 교과서적인 진단들이다. 큰 복원수술을 위한 처방들도 내 놓는다. 수술비는 200억원 쯤, 기간은 3년 안에…. 견적까지 제시한다. 친절하게도 금강송으로 복원해야하는 데 구하기 어렵다는 전문가연한 걱정까지 한다. 심지어 수술 후의 모습까지 조감도로 제시한다.
중환자실 문 밖에선 숭례문을 지켰어야할 책임자들 사이에 공방이 치열하다. 피격을 당해 죽어가는 피해자를 앞에 두고 어디부터 누가 막아야했나 설전을 벌인다. 정작 중요한 책임자는 나타나지도 않는다. 한쪽에선 하루 빨리 수술해 옛 모습을 돌려주라고 호통치고, 수술비는 문병 온 국민들이 분담하면 어떠냐는 아이디어를 낸다. 이 모든 과정을 모든 언론이 즉각 생중계한다. 마치 버튼을 누르면 작동하는 자판기와 같이 너무나 자동적이고 신속하고 획일적이다.
그 누구도 숭례문의 고통을 같이하고, 그간의 무례를 반성하고, 숙연하게 그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남의 탓만 가득하고, 조급한 처방이 난무하며, 기회를 틈탄 출세욕까지 편승한다. 예는 같이 아파하고 걱정하는 마음, 동정심에서 나온다고 했다. 여전히 무례하다. 예를 갖추지 못한 자들, 무례한 자들을 ‘무뢰배’라 한다. 우리는 숭례문 앞에서 전에도 무뢰배였고, 지금도 여전히 무뢰배다.
옛 교가의 가르침대로라면, 장안을 지켜주는 숭례문이 죽어가니 서울도 죽어가는 중이다. 이 절박한 상황에서 단 한번만이라도 숭례문에 예를 갖추자. 예를 갖추어 숭례문을 살리는 길이 바로 서울을 살리는 길이다. 610년 전, 새 나라를 열었던 자신감과 이상도시 한양의 의지가 충만했던 그 씩씩한 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 교가는 이렇게 끝난다. “남-남-남대문은 우리의 자랑”.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건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