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건설업은 다른 제조업과는 달리 3차산업으로 분류된다. 3차산업이란 사람의 정신적 육체적 서어비스를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이다. 1차산업의 생산수단은 토지 등의 자연환경이고, 2차산업의 자원이 공장과 기계라 한다면, 3차산업의 자원은 곧 사람이다. 따라서 건축산업의 성패와 경쟁력은 얼마만큼 우수하고 전문적인 인력을 길러내는가 하는 교육에 달려있다.
그러나 국내의 건축교육은 전문교육은 커녕 단순 기술자도 양성하지 못할 만큼의 제도적 모순을 갖고 있다. 건축과 안에는 크게 두 개의 전공이 나뉘어진다. 건축물과 도시환경을 설계하는 설계교육과 구조공학이나 환경공학을 다루는 건축공학교육이다. 미적 감각과 사회와 역사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하는 설계분야는 인문학이나 미술에 가까운 반면, 수학과 물리학을 바탕으로하는 건축공학분야는 공학에 소속된다. 학생들의 진출분야도 설계업과 건설업의 두 방향으로 크게 나뉘어진다. 일단 졸업만 하면, 두 분야는 서로 만날 기회도 흔치 않은 독립된 분야들이다.
이런 한지붕 두가족의 파행적 교육체제에서는, 대학졸업자가 설계도면 한 장 제대로 그리지 못한다거나, 시공현장에서 단순 공사 하나 감독하지 못한다는, 너무도 아는 것이 없다는 기업체의 불만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교육제도는 한국과 일본만의 특수한 기형적 현상이다. 대부분 국가에서 건축과란 건축가를 키우기 위해 설계교육을 전문으로 시행하기 때문이다. 시공과 구조기술자들은 대개 건설학과나 토목학과에서 양성한다. 한국의 특수한 역사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우수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이제는 단안을 내릴 때가 됐다.
국내 대학 건축과들은 어쩔 수 없는 변혁의 요구 앞에 서있다. 세계건축가연맹인 UIA는 2000년부터 전세계에 통일된 건축교육 기준을 적용하려 한다. 이 기준에 미흡한 교육기관의 졸업생은 국제적 건축가로 인정되지 않는다. 세계무대에서 생업을 찾을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기준은 까다롭기 그지없다. 일례로 국내건축학과 설계시간이 평균 주당 6시간에 불과한데, 국제기준은 15시간 정도를 요구한다. 도저히 현 체제로는 시간표도 짤 수 없는 상황이다. 뿐만 아니다. 국내 공과대학들은 <한국공학교육인증제>를 도입한다고 한다. 이 인증제에 의하면, 공과대학의 모든 학과들은 전공 구분없이 1학년은 교양교육, 2학년은 기초공학교육을 공통적으로 이수해야한다. 전공교육은 3학년부터 2년간에 불과하다는 말이 된다. 이 인증제를 따르지 않는 건축과 졸업생은 기업체에 취직도 불가능하게 된다.
나라 안팎의 압력은 서로 반대적인 건축과의 변화를 요구한다. 국제 기준을 따르자면 설계전문 교육에 목표를 두어야하고, 국내의 공학인증제를 따르자면 건설공학 교육에 목표를 두어야한다. 어느 경우든 확실한 목표 아래 뚜렷한 전공 전문교육으로 전환해야 할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설계냐, 공학이냐?
국내 대학들이 취할수 있는 가능성은 두가지다. 첫째는 학과의 교육목표를 설계나 공학 중 한가지로 명확히 선택하는 것이다. 둘째는 학과를 분리하거나 전공을 분리해 두 분야를 동시에 교육하는 방법이다. 그러자면 시설과 교수진의 확대가 요구된다. 이 두가지 가능성을 묵살하고 현행의 교육을 고집한다면, 국제적 수준의 설계나 시공은 불가능해지고, 해당대학의 건축과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두가지 가능성 중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시행된다면, 현재의 낙후된 설계수준이나 공사기술보다는 훨씬 국제화되고 전문화된 인력이 배출될 것이고, 건축 건설업계의 발전에 밑거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