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교직원님들, 그리고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8년 전, 우리 학교를 <중창>하겠다는 포부로 7대 총장에 취임하여 이제 8대 임기를 다하고 이임 인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 인생 여정이나 우리 학교 역사에서 꽤 길고 중요한 시간이었습니다. 8년간 매주 중요 현안들을 기록한 메모들을 정리해보니 보람도 있지만 왜 그리 못했을까 후회도 많습니다.
<중창>이란 과거를 뒤집는 혁명이 아니라, 지난 업적들을 존중하며 그 위에 새로운 성과들을 쌓는 연속적인 과정입니다.
서초동 캠퍼스 증축과 리모델링, 대학로 캠퍼스 확보, 미술전통원 리노베이션 등은 기존의 골격에 더 풍성한 살을 붙이는 작업이었습니다. 향중국프로젝트 수립과 AMA + 프로젝트 등 국제 교류를 내실화했습니다. 영재교육원 지방분원 개설과 예술섬 조성사업 등 전국적 네트워크도 구축했습니다. 인권센터 설립, 예술계 국가장학금 확대와 강릉연수원 확보 등 인권과 복지도 높이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물량 확보는 좋은 교육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닙니다. “유학 없이 세계적 예술가를 국내에서 배출하자”는 학교의 설립 취지대로, 우리는 무수한 국제대회에서 더 무수한 입상자들을 내어 세계 속에 우뚝 솟았습니다. QS 세계 예술대학 평가 36위가 입증하듯이 높이 솟았습니다. 그러나 높이 경쟁의 승리는 예술교육의 본질이 아니라 부수적 성과일 뿐입니다.
<더 깊게> 예술과 교육의 본질을 추구했고, <더 넓게> 예술과 학교의 지평을 확대 했습니다.
교수 정원의 대폭 확대, 외대와 공동교양과정부 운용, 교수지원센터 운용, 제로 에듀케이션 실시 등 더 깊은 예술교육을 위한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융합예술센터, 평생교육단, 기술지주회사 등을 신설하여 더 넓은 영역으로 확장할 인프라를 구축했습니다. 그럼에도 시설과 조직과 제도는 여전히 필요조건일 뿐, 뛰어난 교수진의 열정과 진취적 학생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성과와 위상은 얻을 수 없었을 겁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는 독자적인 교육기관인 동시에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와 더불어 살아가는 유기체이기도 합니다.
공직윤리규정이나 강사법 등 새로운 제도는 교수 사회에 당혹스런 변화를 요구했습니다. 성평등과 인권문제 제기는 우리에 내재한 모순을 파헤치고 도려내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또한 코로나19의 범람으로 정상 교육에서 벗어난 지 벌써 2년을 채워갑니다. 여전히 이런 혼란과 갈등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구성원 간의 불신과 반목은 아직 치유되지 않은 상처로 남아 가슴 아픕니다. 급속한 사회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유기체는 도태됩니다. 우리 학교는 오히려 가장 앞서 변화를 주도하는 실험체가 돼야 할 것입니다.
구성원 내의, 구성원 간의 갈등을 치유하여 화합된 에너지를 비상의 동력으로 삼아야 합니다.
구성원의 행복과 학교의 발전을 위해 더 손보고 고쳐야 할 조직과 제도도 많습니다. 통합캠퍼스 조성은 공론화하여 가능성을 열었지만 여전히 진행 중인 거대한 과제입니다. 제 임기에 충분히 해결하지 못한 이 모든 과제를 신임 총장께 고스란히 해묵은 짐으로 얹어 드립니다. 김대진 신임 총장님은 훌륭한 인격과 탁월한 능력으로 이 모든 과제를 멋지게 해결하시리라 믿습니다.
제 능력의 한계는 무거운 짐이 되었으나 우리 출신 예술가들의 맹활약은 한예종 총장이라는 자부심을 주었습니다.
매일 매일 부담이었고 기쁨이었습니다. 돌발한 학교 현안으로 예정된 휴가나 국외 출장을 여러 차례 취소할 만큼 일도 많고 탈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교수 학생들의 공연과 전시를 통해서 제 자신이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된 것 같은 즐거움도 컸습니다.
너무 많은 분들의 넘치는 도움을 받았습니다. 처장단 원장단을 비롯한 보직 교수님들의 동료애적 희생과 봉사에 감사를 드립니다. 역대 국장들과 직원 여러분의 노고와 헌신에도 감사드립니다. 교외에서 학교를 도와준 후원자들께도 큰 빚을 졌습니다. 특히 재학생 졸업생들은 늘 기쁨의 원천이고 자랑의 대상이었습니다. 재임 동안 잘한 것이 있다면 모두 여러분들의 업적이고, 잘못한 것이 있다면 오로지 저의 부족함과 게으름의 업보입니다.
이제 8년간의 괴로움과 즐거움을 내려놓고 연구자로 건축가로 교육자로 돌아갑니다.
한예종 총장으로 두 번이나 선택된 과분한 영광을 누렸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중창과 성숙의 시간이었습니다. 더 깊고 더 넓은 삶으로 보답하여 학교 발전에 힘을 보태겠습니다. 9대 총장의 취임을 축하하고 새롭게 지휘하여 연주해내실 또 다른 한예종을 기대합니다. 모두께 감사하고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2021년 8월 25일
7대 8대 총장 김봉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