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일
1999.01
출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웹진 https://www.arko.or.kr/zine/artspaper99_01/4.htm
분류
건축론

타율적 근대화와 전통의 굴레

지난 한세기는 한국 뿐 아니라 세계건축계에 가히 혁명적인 세기였다. 19세기 중반부터 일기 시작한 ‘근대건축’ 혹은 ‘근대성’에 대한 논의와 실험이 시작된 이래, 20세기 초반에 무수한 ‘근대건축운동’이 갖가지 가능성을 타진하고 실천됐다가 일단 바우하우스 풍의 기계론적 건축과 이론이 주류로 자리잡았다. 3000여 년에 걸친 인류 건축사상 전혀 새로운 형식의 건축이 태동하여 전 세계의 도시들은 상자곽 모양의 콘크리트 철골 건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 근대건축의 획일성과 비인간성에 대한 자각과 반성이 제기되어 또 다른 모색이 시작되기는 했지만, 아직은 금세기 전반에 정착된 모더니즘 건축의 연장과 변형에 불과하다. 한국건축의 변화는 더욱 극심했다. 서구에서 한창 근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될 때, 이 나라의 국운은 쇠잔해졌고 외침에 대한 자체 생존력 마저 잃어버려, 새로운 건축과 문화에 대한 관심을 기울일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비록 개항기에 선진 외국의 이른바 양식건축이 유입되었고 일제 강점기에 일본을 통한 근대적 건축이 이식되었지만, 그들의 질적 수준은 보잘 것이 없거나 전근대적인 복고에 불과했다. 또한 일제기에 이식된 이른바 근대건축들은 해방 이후의 건축문화 형성에 계승되거나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라고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0년간 지속되어온 목조건축의 전통은 일단 막을 내리고 새로운 서구적 건축들이 유입됨으로써 한국이 겪었던 문화적 건축적 충격은 서구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본격적인 근대건축의 시작은 아무래도 해방과 전쟁, 그리고 전쟁 복구의 기간이 지난 1960년대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때부터 한국건축은 한국인 건축가에 의해, 우리 기술에 의해, 우리 자본의 건축을 시작할 수 있었다. 또한 국내의 건축교육과 소수 해외 유학의 결실로 다수의 건축가들이 출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더니즘 건축의 발상지인 유럽과 미국을 제외한 다른 모든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근대건축은 출발부터 이른바 타율적 근대화의 콤플렉스를 원죄와 같이 안고 있었다. 근대건축의 형태와 공간, 재료와 공법 모두가 전통적인 건축문화와는 너무나 달랐고, ‘근대화가 곧 선진화’라는 가치체계 안에서 맹목적인 외래건축의 모방과 수입이 최고의 건축적 대안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한국건축의 정체성을 정립하기는커녕, 오히려 한국건축의 존재근거를 무력화시키기에 충분했다.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내건축계의 자각과 비판이 필요했다. 당연히 외래화에 대한 반발 혹은 대안으로 이른바 ‘전통계승’의 명제가 등장했다. ’60년대 등장해서 지금까지도 건축계에 부담을 주는 화두가 되어 있어 전통 문제에 얽매인 수많은 건축물들이 축조되었고 여러 가지 논쟁들이 있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의 문제는 타율적 근대화의 다른 짝에 불과했다. 서구건축의 모방과 수입이 맹목적이고 무비판적이었다면, 전통계승의 명분도 비이성적이고 소아병적이었다. 이것이 한국성의 창조나 새로운 건축적 담론의 생산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복고적이고 자폐적인 양상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현대건축의 성과에 대한 백안시와 순수하지 못한 창작동기 등 원천적인 문제들 때문이었다. 전통계승에 대한 논쟁은 출발점을 잘못잡은 소모적인 노력일 뿐이다.

전체성 회복을 위한 새로운 시도들

다행히도 ’90년대말의 건축계는 더 이상 전통계승의 굴레에 얽매이지 않는 것 같다. 현재를 담당하고 있는 건축가들은 여러 외국에서 교육과 생활의 경험을 쌓아왔고, 국제적 건축의 시야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들의 관심은 ‘현재 여기서’의 건축으로 집중된다. 한국성의 문제는 한국건축이 가져야할 중요한, 그러나 부분적인 가치에 불과하다. 세계건축에 대한 경험과 마찬가지 밀도로 한국의 전통건축에 대한 체험과 지식을 쌓아왔기 때문에 가능한 행보라고 보인다. 이제 우리 건축계도 더욱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건축적 노력을 할 수 있는 지적 체험적 토대가 마련됐다고도 할 수 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의미있는 건축적 활동과 담론들은 비록 다양하고 통일되지 않지만, 커다란 범주에서 본다면 ‘전체성의 회복’으로 압축할 수 있다. 전체성이란 여러 가지 각도에서 지칭될 수 있다. 우선 도시와 건축의 관계에서 두드러진 변화가 전개되고 있다. 모더니즘 건축의 도시관은 ‘빛나는 도시’로 표현된다. 개개의 빛나는 건물들이 서고, 대형 내부공간의 쾌적한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도시 전체가 빛나고 쾌적하게 될 것으로 낙관했었다. 그러나 상황은 전혀 반대의 모습으로 전개됐다. 대형 초고층 건물은 도시의 인구 집중과 교통혼잡을 가중시키는 주범이 되었고, 주변의 환경과 고립적인 빛나는 건축들은 도시의 전체성을 파괴하고 단편화시켜 버렸다. 무엇보다도 개별건축물과 도시환경 사이의 단절과 적대관계가 초래됐다. 이기적인 건축물이 서면 설수록 도시는 삭막해지고 환경은 열악해졌다. 이러한 병폐를 치유하려는 처방은 주로 도시설계와 도시계획에서 시도됐다. 미관지구를 지정하기도 했고, 고도제한, 용도제한 등 각종 규제를 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개별 건축물의 이기적 욕구는 집단적인 계획과 규제 정도로 수그러들지 않는다. 도시설계의 한계는 뚜렷하다. 도시와 건축의 관계를 복원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은 개별건물들이 적극적으로 도시와 만나고 화해하는 전략 뿐이다. 최근들어 ‘도시같은 건축, 건축되는 도시’라는 명제가 자주 등장한다. 개별 건축물을 마치 하나의 작은 도시와 같은 집합체로 만들려고 하는 노력, 또는 도시적 상황에 건축물의 구성을 맞추고, 도시적 환경을 적극적으로 건물안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지적할 수 있다. 이러한 ‘도시적 건축’들은 ’90년대 건축가들의 주요한 전략이 되고 있다. 또한 두각을 나타내는 대다수의 건축들은 거의 예외없이 이 전략에 순응하고 있다. 그들의 희망은 개별건물과 도시, 건물과 건물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개방함으로써 도시 전체를 개별건물들의 연계망으로 재구축하려는 데 있다. 아직은 개별건물의 차원에서만 시도되고 있어서 ‘도시같은 건축’에 머물러 있지만, 동숭동 대학로의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건축되는 도시’의 양상이 보여지기도 한다. 승효상의 대학로 문화공간, 정기용의 무애빌딩, 이종호의 메타사옥 등이 동숭동의 대표적인 도시적 건축으로 자리매김된다. 또 하나의 양상으로 중소규모의 건축까지도 많은 부분들의 집합체로 인식하여 이른바 ‘매스터플랜’의 개념이 도입되는 현상을 들 수 있다. 근대적 패러다임 속에서는 하나의 단일 건물이어야할 규모의 건축물도 많은 부분들로 나누어 다시 집합시켜 전체를 이루는 방법의 시도가 부쩍 늘어났다. 그럼으로써 다양한 부분 속에서 변화있는 체험을 얻어내고, 통일적인 전체 속에서 안정과 쾌적성을 추구할 수 있게 된다. 조성룡의 해운대 빌라, 김원의 광주 카톨릭 대학, 정기용의 진주 동명중고교, 김영섭의 용문수련원 등이 집합적 방법을 통해 전체성을 획득한 예들이라 할 수 있다. 개별건물의 전체성이나 도시적 전체성보다 더욱 근원적이고 거대한 전체는 바로 자연이요, 건축의 모태가 되는 땅이다. 이른바 ‘대지의 형상화로서의 건축’이란 자연과 인공 사이의 교류와 전체화에 대한 희구다. 이를 위해서는 지형을 읽는 눈과 조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지형 또는 대지라는 거대한 전체는 건축적 공간의 원형이고 창조자이기 때문이다. 한국건축의 가장 위대한 전통도 지형과 건축의 일체화에서부터 출발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전통의 맥을 잇게되는 부수적 효과도 거두게 된다. 민현식의 신도리코 기숙사와 아산본관, 유건의 독도박물관, 김종규의 남양성지 매스터플랜 등에서 그 가능성을 읽을 수 있다. 건축 내부의 부분과 전체의 집합적 구성, 도시적 건축과 건축되는 도시의 상관관계, 대지가 지시하는 형상을 따라 구성되는 건축. 이들은 모두 부분에만 집착하던 과거의 건축과는 전혀 다른 태도와 방법론들이다. 이들이 추구하는 전체성의 회복은 건축 본연의 가치로 회귀하는 것이고, 한국 현대건축 최초로 건축적 의미를 발견하는 작업이다. 건축은 원래 다양한 부분들을 취해 전체를 구성하는 집합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전체성의 문제는 우리의 현대건축 뿐 아니라, 세계건축의 본질적인 전체성을 구축한다. 한국 현대건축의 가장 커다란 발전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전체성에 대한 자각과 노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