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일
2019.
출처
한국예술종합학교
분류
기타

오늘 영예로운 예술사, 전문사 학위를 안고 정든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정을 떠나는 졸업생 여러분! 특히, 코로나19사태로 인해 학위수여식이 연기되어 6개월을 기다리다 오늘 함께 자리한 전기 졸업생 여러분!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한없는 찬사를 보냅니다.

또한 이 자리에 졸업생들이 있기까지 오랜 시간 지극한 정성과 사랑을 쏟아주신 교수님과 학부모님, 그리고 귀한 축사를 해주신 박양우 문화관광체육부 장관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19의 전 지구적 감염 사태로 인해, 이제껏 겪어 보지 못한 매우 어려운 환경에 직면해 있습니다. 특히, 여러분들의 영광스러운 학위수여식조차 전통적인 대면행사를 하지 못하고, 이처럼 온라인을 통해 축하드리게 되어 매우 안타깝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가 겪는 세상은 지난해엔 전혀 상상도 못한 두렵고 낯선 새로운 세계입니다. 인간 사이의 총체적 만남을 전제로 쌓아 왔던 기존의 예술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언택트 환경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흑사병으로 유럽 인구의 절반이 죽는 참혹함 속에서, 보카치오는 데카메론을 써서 근대 소설의 길을 시작했습니다. 또한 20세기 초 수천만을 사망케 한 스페인 독감을 소재로, 알베르 까뮤는 <페스트>를 창작해 실존주의 예술을 열었습니다.

세상의 낯선 체험은 곧 새로운 창작의 소재가 될 것이고, 새로운 세계의 발견은 또 다른 예술을 열어나갈 것입니다. 이제 온라인 환경은 뉴 노말이 되었다고 합니다. 아날로그는 소멸되어 디지털 예술로 대체되고, 오프라인의 창작자를 인공지능이 대신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별도로 존재하지만 서로 밀접하게 관계를 맺는 중첩된 세계입니다. 두 세계는 마치 평행우주와 같습니다. 위대한 예술가는 이 두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한 세계의 변화를 통해 다른 세계를 움직이는 기획자요 조정자입니다.

오늘, 최초의 온라인 학위수여식은 이 중첩된 평행세계로 나가는 첫 번째 관문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졸업생 여러분! 여러 분들은 이 문을 활짝 열고 나아가, 자신의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의 문제, 세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조정자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 한국예술종합학교는 1992년 개교 이래 비약적인 발전을 해 왔습니다. 2020년 상반기에도 각 분야에서 국내외 25개 대회 47명이 입상했습니다. 전 세계 수천개 예술대학 중에서 36위로 평가되는 업적도 쌓았습니다. 모두 여러분들의 땀과 눈물과 열정으로 이룬 성과입니다. 여러분 모두 정말 고맙고 축하합니다.

최근 방송 인터뷰에서 어떤 졸업생이 가장 자랑스럽냐고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세계적 예술가의 반열에 오른 동문들이 너무 많아 누구를 꼽을까 잠시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이내 깨달았습니다. 문화예술계의 스타가 된 많은 동문들도 자랑스럽지만, 더 소중한 이들이 있습니다. 작곡과 안무와 희곡, 조명과 의상, 음향과 편집, 다양한 디자인과 전시 기획 ….. 등, 이름이 드러나지도 무대에서 박수를 받지 못해도 이들이 없으면 작품도 주역도 스타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각 분야의 전문가 중 전문가가 거의 우리학교 졸업생이라는 사실이 가장 자랑스럽습니다. 우리 졸업생들이 한국 예술계의 토대를 만들고 발전시키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불비불명 비필충천 일명경인’(不飛不鳴 飛必沖天 一鳴驚人)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올해 학위수여식 주제이기도 한데요, 중국 전국시대 말기 법가를 창시한 한비(韓非)의 저서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날지 않고 울지 않는 새가 한 번 날아오르면 하늘 끝에 닿을 것이요, 한 번 울면 온 천하의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눈 앞의 이익에 연연하지 마십시오. 조급해 하지도, 불안해 하지도 마십시오. 때를 기다리며 더 높이 날아 오르기 위해 내공을 쌓을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왜 높이 날아야 합니까? 높이 날아야 멀리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멀리 봐야합니까? 멀리 봐야 목적지를 알 수 있고 가는 길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예술의 길이 어렵고, 고통의 시간을 인내하기 힘들 때마다 이 말을 기억하십시오.

‘비필충천’(飛必沖天)
‘나는 높이 멀리 날기 위해서 준비 중’ 이라고,
‘나는 높이 멀리 날 것이다’ 라고.

졸업생 여러분! 다시 한 번 학창 시절의 노고를 치하하며, 여러분의 앞날에 커다란 행운과 축복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