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일
2017.02.07.
출처
한국예술종합학교
분류
기타

오늘 영예로운 예술사, 전문사 학위를 품에 안고 정든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교정을 떠나는 졸업생 여러분! 여러분의 성실한 노력과 빛나는 성취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또한 헌신과 사랑으로 자녀들을 뒷받침해 온 학부모님과 가족 여러분께도 축하의 인사를 올립니다. 무엇보다 훌륭한 교수님들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오늘 여러분이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함께하신 학부모님, 교수님, 그리고 내외 귀빈 여러분, 졸업생을 대신해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우리 한국예술종합학교는 국내 정상을 넘어서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예술학교로 도약했습니다. 작년 영국의 세계대학 평가기관에서 우리 학교를 전 세계 예술대학 중 46위로 평가했습니다. 이는 국내 예술대학은 물론 아시아권에서 최초로 진입한 자랑스러운 쾌거입니다.
순위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 졸업생들이 국내는 물론, 세계의 유수한 예술단체와 예술계에서 주역으로 활동하고, 탁월한 작품들을 창작하고 있어서 자랑스럽습니다. 비록 이름은 드러나지 않지만, 편집, 디자인, 조명, 음향, 대본 등 우리 예술계 곳곳에서 중요한 기반을 쌓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자랑스럽습니다. 오늘 졸업하는 여러분들은 더 큰 활약을 할 것으로 믿으며, 여러분의 활동에 힘입어 우리 학교가 머지않은 장래에 글로벌 탑10의 예술학교가 되리라 확신합니다.

자랑스러운 졸업생 여러분!
그러나 여러분이 맞닥뜨릴 사회와 현실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권력과 경제적 부를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고 있습니다. 예술을 그저 삶의 장식품이나 취미로 치부합니다. 기업 취업률로 교육의 성과를 평가하며, 정략적 목적을 위해 블랙리스트를 휘두르기도 합니다. 예술의 근본적인 목표, 삶의 깨달음과 영혼의 감동, 사회의 치유와 공동체의 행복 등은 이 속물적이고 탐욕적인 사회에서 실종된 듯이 보입니다.

예술계의 사정도 밝지 않습니다. 열악한 물적 인적 공간적 시간적 창작 여건에 좌절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늘 불만이었겠지만, 우리 학교는 여러분의 교육과 예술 활동을 위해 최선의 환경을 지원했습니다. 사회에 나가 보십시오, 알게 될 겁니다, 학교가 얼마나 행복한 낙원이었는지. 늘 비어 있어 나를 반기던 작업실은 이제 높은 임대료를 요구하고, 과 사무실에서 얻을 수 있었던 재료들은 모두 돈을 내고 구입해야 합니다. 그나마 잘 구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가급적 졸업을 늦추고 학교의 시설과 자원을 이용하려는 학생들도 적지 않은 줄 압니다.

그러나 낙제하지 않는 이상 졸업하십시오. 사회라는 더 큰 무대로 나아가십시오. 대학은 씨를 뿌리고 싹 띄우길 기다리는 곳이지, 꽃을 피우는 곳이 아닙니다. 줄기가 자라고 꽃을 피우는 곳은 사회입니다. 세찬 비바람을 맞고, 뜨거운 햇볕을 쬐어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비바람과 태양이 무서워 땅속에만 있으면 썩어 없어집니다. 대학이 연습실이라면, 사회는 실제 공연장입니다. 실제 무대에서 진검 승부를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2년 또는 4년 이상 연습하고 또 연습했습니다.

긴 여행을 떠나기 전에 많은 준비를 합니다. 가고자하는 행선지의 정보를 수집하고, 세세한 일정을 짜며, 필요한 물품들을 가방에 챙깁니다. 그러나 막상 여행을 떠나보면 그 많은 준비물들이 쓸데없는 짐에 불과하고, 그 자세한 계획이 헛된 수고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준비가 없다면 여행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무엇보다 준비하는 과정이 또 하나의 여행이어서, 여러 번의 여행을 하는 행복을 누립니다.

인생이라는 것이 이미 경험해 본 것이라면, 얼마나 지루할까요? 사회라는 곳이 또 하나의 연습장이라면 얼마나 맥이 빠질까요? 이제 사회라는 공간으로, 인생이라는 시간 동안 긴 미지의 여행을 떠날 졸업생 여러분! 여러분에게 잘 알려진 시 한 구절을 드립니다.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부르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 때 비로소 진정한 일을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 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터키 시인 나짐 히크메크의 <진정한 여행>입니다.
◯◯◯명의 졸업생 여러분! 여러 분이 떠날 자신만의 진정한 여행에 커다란 행운과 축복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