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기획 (대표집필 김봉렬)
A. 아젠다김진애 (서울포럼 대표)
오천년의 시간 속에서 창조된 건축의 명장면들.
그 장면속에는 인물이 있고, 현실이 있고, 기술이 있고, 예술이 있다.
건축을 통해 이루려 했던 꿈, 이상, 철학, 사회, 삶이 있다.
자연에 대해, 우주에 대해, 사회에 대해, 사람에 대해, 세계에 대해
끊임없이 새로운 관계를 모색해 온 건축 역사의 여정.
오천년 한국 역사 속의 건축 명장면을 더듬어보며
지금에 만들, 또한 미래에 떠오를 건축 명장면의 정신을 기려본다.
B. 본문 대표집필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
1. 장군총과 벽화고분들 (AD 6세기)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기념비
동아시아의 강자로서 세계사의 주역이 됐던 한민족의 경험. 지금 중국의 료녕성 지안(集安, 옛 국내성) 일대에 웅장한 분묘들로 남아있다. 일명 ‘동방의 피라미드’, 장군총은 한변 길이 34m, 높이 13m의 규모다. 고구려의 건축은 크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일대의 고분들에는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벽화들이 그려져 세계미술사의 보고로 평가된다.
2. 경주왕경과 안압지 (674) -지역성과 세계성이 공존했던 국제도시
전성기 경주는 178,936호, 인구 100만에 육박하던 국제적 대도시. 왕궁과 사찰, 시장과 주거들이 360개의 도시블록으로 정비된 계획도시였다. 삼국통일 기념 사업으로 조성된 안압지는 신라의 강인함과 백제의 우아함이 통합된 궁궐 정원으로, ‘한국적 조형미’의 원형을 창조했다. 인공과 자연, 직선과 곡선, 지역성과 국제성 등 모든 대립적 요소들을 통합한 건축적 전통이 확립됐다.
3. 석굴암과 불국사 (790) -종교와 기술, 최고의 하이테크 건축
인도에서 시작된 석굴건축 운동은 9,000km의 거리와 1,000년 간의 긴 여정을 거쳐 경주 토함산에 그 찬란한 꽃을 피웠다. 석굴암은 국제적인 유행 속에서도 석실 돔구조라는 독창적인 공법과 공간개념을 창안한 최첨단의 하이테크 건축이었다. 불국사는 불경에 묘사된 여러 불국토들을 입체적인 건축으로 표현한 ‘건축적 대장경’이었다. 지식인 건축가 김대성은 현란한 석조기술로, 종교와 기술, 건축과 신앙을 일체화시켰다.
4. 중원 미륵대원 (10세기경) -지방화 시대, 다양한 전통들
신라말 고려초, 중앙의 통제력이 약화되면서 지방에서는 ‘호족’세력을 중심으로 자치운동의 바람이 분다. 옛 고구려나 백제의 예술양식이 부활하여 활발한 지역 문화를 형성했고, 고려건축의 다양한 전통을 만들어낸다. 미륵대원은 서민적인 미의식과 실용적 건축기술로 가득차있다. 지방화 시대, 풀뿌리 민중들에 기반한, 소박하고 역동적인 건축이다.
5. 영주 부석사와 무량수전 (13세기경) – 불국토의 이상과 고전미의 완성
극락세계를 재현하듯 9개의 대석단으로 나누어 터를 만들고, 한계단 한계단 아미타불이 있는 무량수전을 향해 올라간다. 완벽한 조화와 비례미를 자랑하는 무량수전, 그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첩첩이 펼쳐지는 대자연의 정원을 바라보라. 불교국가 고려의 염원과 미학이 이 한장면에 집약되어 있다.
6. 서울도성과 종묘 (1395) -도시같은 건축, 건축되는 도시
서울도성은 주변 산세를 고려한 환경친화적 도로계획, 적절한 공공건축물의 위치, 유기적으로 엮여진 주거지와 오픈스페이스 등, 새로운 도시계획의 기량을 선보인다. 궁중건축가 박자청이 주도한 종묘는 침묵과 은유로 가득하다. 종묘는 서울 도시계획의 상징적 중심인 동시에, 죽은 자들의 도시공간을 재현한 건축이다.
7. 경주 양동마을 (1458년부터) -마을 공동체 속의 개별 주택
씨족마을은 반상구별, 장유유서, 남녀유별 등의 유교적 질서를 구현한 조선 성리학자들의 이상적 공동체였다. 양동마을은 손중돈과 이언적이라는 걸출한 학자를 배출하면서 성립된다. 손씨가는 서백당과 관가정, 이씨가는 무첨당과 향단이라는 최고의 주택을 지으면서 서로 견제하고 협동하는 긴장된 공동체를 이룬다. 판이한 주택들이 지형을 따라 변화하면서, 다양성 속에서 통일된 건축적 전체를 이룬다.
8. 담양 소쇄원 (1530) -인공의 자연, 소리로 보는 정원
물소리와 바람소리를 듣고,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공간 속에서 산책하고 명상하는, 온 몸으로 체험하는 정원이다. 소나무 한그루, 굽이친 물줄기 하나도 치밀한 계산과 실험 끝에 심고 깍아냈다. 그러나 그 솜씨들이 너무 절묘하게 숨겨져서 마치 원래의 자연인 줄 착각하게 한다. 자연과 같은 인공 – 그 속에서 양산보 송순 정철 등 문인들은 ‘가사문학’의 위대한 형식적 틀을 완성했다.
9. 안동 병산서원 (1614) -성리학을 담는 철학적 그릇
조선중기, 성리학의 보급과 사회적 실천을 위해 전국 곳곳에 서원들이 세워졌다. 서원에서 건물은 하나의 그릇이나 액자에 불과하다. 액자는 단순하고 소박해야한다. 그 안에 담겨지는 경치와 내용을 부각시켜야하기 때문이다. 병산서원의 건물들은 낙동강과 앞산을 담았다. 물질을 아끼고 정신을 풍부하게 하는 절검의 건축, 환경과 완벽히 하나가 되는 천인합일의 건축이 바로 이것이다.
10. 수원화성 (1796) -실학사상과 자생적 건축의 가능성
새롭게 싹튼 실학사상은 수원화성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둔다. 자족 방어도시를 위한 새로운 도시계획, 벽돌과 돌을 혼용한 재료기법, 독창적이면서 기능적인 디자인, 성과급제를 통한 획기적 노무관리, 새로운 기구와 공법의 발명……… 수원화성의 ‘새롭고 독창적인’ 내용들은 끝이 없다. 근대건축의 맹아라 할 수 있는 장면이다. 화성은 군사용 건축이면서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아름다움은 강한 것이기도 하다.
C-1. 10개만 명장면일까?김봉렬
5000년 동안의 성과 가운데 10대 건축을 선정하는 일은 무척 어렵다. 너무 후보작이 많기 때문이다. 수많은 수준작들 가운데 심지어 100개를 고르는 일도 만만찮다. 과거의 건축을 돌아보면 이처럼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대상을 고르기 위해 세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건축 역사상 새로운 전기를 이룬 건축일 것. 둘째, 역사적 전환기의 시대정신이 잘 담겨진 건축일 것. 셋째, 질적 완성도가 높은 세계적 수준의 건축물.
10대 장면 가운데, 고대에는 왕권 관련 건축이, 중세에는 불교건축이, 근세에는 유교건축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한국사상사의 전개와 궤를 같이한 건축의 변화들이다. 사회를 떠난, 역사를 떠난 건축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북한에 있는 건축물이 하나도 끼지 못해 아쉽다. 북한에서 간행된 불충분한 간접자료에만 의존하자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금강산과 묘향산의 사찰들, 개성의 고려유지와 한옥마을, 해주의 이율곡 관계 건축물 등이 주목되지만, 현존 실제 모습에 자신이 없어서 제외했다.
이른바 건축 문화재들은 심각하게 훼손되고 사라져가고 있다. 곳곳의 사찰들은 과거의 질서를 붕괴시키며 새집 짓기에 열중하고 있다. 부유해진 사찰들의 문제다. 농촌마을과 주거는 주민들이 계속 떠나가고 있고, 빈집 3-4년이면 폐허가 되고만다. ‘농촌 빈집 사람살기’ 운동이라도 벌여야한다. 최상의 보존방법은 ‘활용 보존’이기 때문이다.
C-2. 한국역사, 5인의 건축가들 김봉렬
아비지(阿非知, 7세기경) : 백제 최고의 장인 건축가. 643년, 당시 적국인 신라로 파견되어 소목수들 200명을 이끌고 황룡사 9층탑을 세웠다. 높이 71m, 최첨단의 하이테크 초고층 목탑건물을 설계하면서, 그는 심각한 갈등에 빠졌었다. 자신의 작업이 조국인 백제를 정복하려는 신라의 호국사업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조국애보다는 개인적 신앙심과 작업에 충실한 기술자적 건축가의 길에 충실했다.
김대성(金大城, ?-774) : 명문 귀족 출신으로 재상을 지낸 고위 정치가. 은퇴후 불국사와 석굴암 창건의 총책임을 맡았다. 천문학과 수학에 능통했고, 고승들로부터 수준높은 화엄교학을 전수받았으며, 고도의 예술적 감수성을 겸비한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5년이라는 긴 세월을 헌신한 끝에 세계적 명작을 창조할 수 있었다. 우리 역사상 최초의 지식인 건축가로 기록된다.
박자청(朴子靑, 1357-1423) : 내시의 신분으로 공조판서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 강직한 충정과 성실한 직무수행으로 태조-태종-세종대에 걸쳐 중용되었다. 한양도성의 정비와 문묘, 종묘, 모화관, 창덕궁의 신축까지 국가적 사업들을 관장했다. 밤샘를 밥 먹듯이 하며 오로지 건축사업에만 몰두해, 당시 정치권으로부터 배척 받을 정도로 올곧은 전문가이기도 했다. 뛰어난 궁중건축가의 길을 보여주었다.
호암 약휴 (護巖 若休, 1664-1738) : 순천 선암사의 중창승. 17세기말, 불교계 개혁의 선구자이기도 했고, 선암사의 수많은 건물을 설계하고 공사 책임을 맡았다. 그가 설계한 원통각이나 승선교는 건축사상 독창적인 명작으로 평가된다. 벌교홍교을 건설해 지방민들에게 커다란 혜택을 주는 등, 사회봉사에도 열심이었던 승려건축가.
정약용(丁若鏞, 1762-1836) : 소개가 필요없는 대실학자. 그러나 건축에도 뛰어난 식견과 솜씨를 가진 만능인. 하위직 공무원 시절, 한강에 ‘배다리’를 설계해 두각을 나타내더니, 드디어 화성 설계의 중임을 맡아 1년여의 연구 끝에 성곽 설계와 이론을 완성했다. 수원화성의 건축가로 길이 빛날뿐 아니라, 만년까지 설계와 시공과정, 새로운 재료 개발에 관한 저술을 남긴 이론적 건축가의 모범.
사진 설명
편집자께.
아래 사진들은 본문 B의 번호들과 일치합니다.
*2-1, *6-1, *10-1 등 도면들은 2-1, 6-2, 10-2와 겹쳐 편집이 되면 좋겠습니다. 방법이 있을까요?
멋있게 편집해 주세요.
1. 고구려 장군총
2-1. 경주왕경도*2-2. 안압지
3-1. 석굴암3-2. 불국사
4. 미륵대원
5. 부석사
6-1. 서울도성도*6-2. 종묘
7-1. 양동마을 전경7-2. 양동 서백당
8. 소쇄원
9. 병산서원
10-1. 화성성역의궤*10-2. 수원화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