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설계경기는 늘 의혹을 몰고 다닌다. 최근에 발표된 ‘제주 4.3평화공원 현상설계’의 심사 과정과 당선 결과 역시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 근대사의 가장 부끄러운 4.3사태의 비극을 치유하는 역사적인 프로젝트였던 까닭에 국내의 내노라하는 건축가들이 대거 참여했고, 그만큼 결과에 대한 관심과 기대도 각별했다. 당선작이 발표되자 낙선한 참여 건축가들을 중심으로 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는 문제 제기가 잇따르고 있다.
문제는 심사 과정의 공정성 또는 전문성에 집중된다. 심사 과정이 투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좋은 당선작을 내기 어렵고, 그런 결과를 납득할 수 없다는 주장들이다. 13명의 심사위원 가운데 건축인은 5명, 나머지는 미술․조형부문 3명, 단지계획부문 2명, 조경 1명, 4.3위원회 2명이었다고 한다(심사위원 명단은 이상과 같으며 공무원과 일반대표는 없었습니다. 이에 따라 수정해주셔야 할 부분을 다시 보완해주셨으면 합니다). 외형적으로는 전문성이 보장된 것 같지만 내용적으로는 그렇지 못했다는 이의들이 많은 까닭은 무엇일까?
민간에서 발주하는 현상설계는 비교적 잡음이 없다. 민간 공사는 설계자를 현상을 통해 선정해야 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며, 현상설계를 열 때에는 최고의 안을 뽑기 위한 목적이기 때문에 심사위원 선정과 과정에 이의를 달기 어렵다. 반면, 관공사는 거의 모든 설계를 현상설계에 붙이도록 법제화되어 있다. 그것도 응모 자격을 거의 개방해야 하고, 심사위원도 10여 명이 넘도록 되어 있다. 어느 과정에서도 부정과 편파가 개입할 소지를 없애기 위한 조치이다. 심사위원은 아예 풀(pool)을 만들고 당일 새벽에 추첨하여 전화로 통보할 정도로 보안장치까지 완벽하다. 그러나 관에서 주관하는 현상설계는 거의 대부분 의혹을 몰고 다닌다. 그리고 제도적 장치가 정교해질수록 의혹의 덩어리는 더욱 커진다.
서울시의 경우 심사위원 풀은 50여 명이 넘는 걸로 알고 있다. 필자도 가끔 대형 설계사무소 임원들의 전화를 종종 받는다. 십중팔구 며칠 후에 있을 현상설계 심사 때문에 걸려온 전화이다. 본인도 전혀 모르는데, 심사위원 풀에 올라 있다는 것이고 꼭 만나서 현상 안을 봐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위 ‘눈도장’을 찍겠다는 것이다. 명단에 올라 있는 후보위원 모두를 이런 식으로 접촉한다는 것이다. 누가 심사위원이 될지 모르기 때문에 하루 이틀 사이에 50여 명에게 이른바 ‘전방위 로비’를 해야 그나마 당선작이 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뇌물이 아닌 순수 ‘홍보 비용’만도 수백만 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그야말로 시간 낭비, 경비 낭비, 인력의 낭비이다.
이 정도는 인력과 경비를 제공할 능력이 있는 대형 사무소들의 경우이고, 그럴 수 없는 소형 사무소도 수수방관만 하지는 않는다. 최근에는 자신들의 응모안 사진과 도면을 인터넷 이메일을 통해 보내면서 관심을 가져달라는 전자 로비까지 서슴지 않는다. 오프라인에서는 찾아오려는 홍보사절들을 사전에 거부할 수 있지만, 사이버 홍보사절들은 거절할 수도 없는, 스팸 메일이 되고 만다.
이처럼 서로에게 피곤하고 소모적인 일이 발생하는 까닭은, 그리고 심사 과정이나 결과에 대한 시비가 엇갈리는 것은 심사위원들의 무책임과 비전문성에 기인한다. 비전문 시민대표나 지역 유지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은 공무원들의 책임 회피용 방어막에 불과하고, 한두 위원이 부정한 거래나 부당한 결정을 내렸다고 할지라도 수십 명 무기명이라는 수적 희석 때문에 책임을 질 필요도 없어진다. 주최측, 심사위원 모두 피해도 보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는 절묘한 시스템이다.
심사위원을 단 한 명의 전문가로 위촉한다면 오히려 이런 폐해는 줄어들 것이다. 제비뽑기 같은 풀 제도 없애고 미리 그 한 명의 위원을 공개하는 것이 좋다. 사전 로비를 허락해도 좋다. 뇌물을 먹어도 그 한 명이 먹을 것이고, 잘못된 결정을 내려도 그의 책임이 될 것이다. 어느 누가 배짱 좋게 부정을 저지를 수 있을까? 한 명이 불안하다면 최대 3인까지는 가능하다. 심사위원을 최소화한다면, 과정도 깨끗해질 것이고 결과도 위원들의 명예를 걸고 최선의 결정을 보장할 것이다.
10여 명의 유지들이 관공서의 회의실에 앉아서 토론 없이 다수결 투표를 통해 당선작을 결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희화적인 풍경인가. “현상설계를 통해 완공된 건물 치고 쓸만한 게 없다”는 것이 30년 간의 노하우를 축적한 건축인들의 자조적인 발언이다. 이름과 권위를 걸고, “심사위원 아무개는 4.3항쟁을 이렇게 평가하고 그 치유책은 무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당선작을 뽑았다”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으면 얼마나 공정하고 멋진 일인가? 이 간단한 해결책을 왜 실행하지 못하는지, 그런 권위와 관행을 민간에서부터라도 만들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