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일
2017.07.03.
출처
아름지기
분류
건축론

일시적이며 움직이는 최소의 집
해를 가리면 그늘이 생긴다. 자연적인 그늘을 만드는 나무나 바위가 없는 곳에서, 인간들은 인공적인 지붕을 만들어 그늘을 만들었다. 대지의 모든 곳이 햇볕에 노출될 때, 인공적인 그늘은 특별한 장소적 의미를 갖게 된다. 시원하고 쾌적해서 오랜 시간 거주할 수 있다는 육체적 특별함 말고도, 자연에 도전한 인간이 뭔가 이루었다는 상징적인 장소가 된다. 그래서 장막은 유태교의 성전이 되었고, 어막차(御幕次)는 제왕의 일시적인 왕실이 되었다.
조선시대 궁중에는 각종 의례(儀禮)가 많았다. 예(禮)와 제(制)는 유교 이데올로기의 근간이고, 의례는 유교 왕조의 가장 강력한 통치도구였다. 제사와 같은 길례(吉禮), 장례와 같은 흉례(凶禮), 결혼과 회갑 같은 가례(嘉禮)는 궁중의 마당에 차일(遮日)을 치고 그늘을 만드는 일부터 시작한다. 차일 아래에 의례에 참가하는 신하들이나, 악공들, 무희들이 각자 자신들의 역할을 수행하며 의례를 진행한다. 왕이나 세자는 의례를 위해 대기하기 위해 장막(帳幕)을 치고 그 안에 모셔졌다. 이를 막차(幕次)라고 불렀다.
한옥은 세상의 건축물 가운데 가장 든든한 지붕을 가진 집이다. 지붕의 무게로 아래의 기둥과 들보를 고정시키고, 집 높이의 1/3만큼이다 길게 뻗어 나온 처마는 외부의 햇빛까지 가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행사를 위해 그늘이 더 필요하다. 일반 여염집도 관혼상제와 같은 가례(家禮)를 위해 마당에 차일을 친다. 차일은 햇빛만 가리는 게 아니라 비와 눈도 막아준다. 집안으로 들이치는 햇볕과 비를 막기 위해 아예 지붕에 고정한 차일도 있다. 이를 차양(遮陽)이라 불렀다. 그렇지 않아도 긴 처마는 더욱 연장되어 한옥의 내부영역을 넓게 확장시킨다.
천막은 인류의 태동과 함께 발생한 최초의 건축이다. 최초이기 때문에 본질적인 건축이며, 최초이기 때문에 최소의 건축이다. 건축의 발전은 공간을 확대하고, 장식을 풍성하게 했다. 일상적인 공간은 복잡해졌고, 아름다운 장식은 요란해졌다. 이러한 시대에 최초의 공간인 천막은 오히려 비일상적 공간이 되고, 미니멀한 천막의 구조는 특별한 상징이 되었다. 조선 왕실이 특별한 의례를 장막에서 행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천막은 발생 때부터 이동성, 일시성, 최소함을 갖고 있었고, 고정성, 영구함, 거대함을 추구해 온 건축의 발전은 ‘비일상성’이라는 특별한 가치를 역설적으로 천막에 부가했다. 천막의 이 성격들은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레저용 텐트들은 비일상적 건축의 꽃이며, 낭만의 최고 장소가 되었다. 텐트가 없는 축제를 상상할 수 있는가? 텐트가 없는 놀이동산이 존재할 수 있을까? 목재 지지대가 최첨단의 금속으로 바뀌고, 무명 광목이 기능성 고어텍스로 바뀌어도, 천막의 본질은 발생한 이래 의미 있는 변화가 없었다. 천막에 대한 탐구는 곧 최초의 건축에 대한 탐구이며, 천막의 디자인은 건축의 본질에 대한 설계이다.

천막, 최초의 건축
건축의 기원에 대한 이론은 비교적 소박하다. 동물들의 둥지와도 같이, 모진 비바람이나 뜨거운 햇빛을 피하기 위해 호모 사피엔스가 만든 셸터(shelter)가 모든 건축의 출발이라는 견해다. 셸터란 자연의 재해로부터 몸을 보호하려는 일시적 피난소로서, 영구적인 구조물이 아니라 임시적인 주거로 이해할 수 있다.
호모 사피엔스를 비롯한 인류종은 잡식성 동물이다. 외부에서 탄수화물과 단백질을 공급받아야 생존과 성장이 가능하다. 초기의 인류는 채집을 통해 탄수화물을, 수렵을 통해 단백질을 얻어야했다. 채집과 수렵은 끊임없는 이동을 전제로 하는 경제활동이다. 인류가 한 장소에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신석기 시대부터 진행된 농업혁명 이후에나 가능한 삶의 형태였다. 농업혁명은 농경과 목축 또는 어로를 통해 탄수화물과 단백질을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었기 때문에 생존을 위한 이동을 필요 없게 만들었다.
따라서 셸터란 인류가 먹거리를 찾아 이동해야 했던 이른바 구석기 시대에 발생했다고 상상할 수 있다. 아마도 가장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셸터는 자연 동굴이었을 것이다. 비바람과 햇빛은 물론 더위와 추위, 야수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한 최상의 거주 공간이다. 그러나 자연 동굴은 인류의 수요만큼 흔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매우 특별한 지각 변화의 결과로 제공되는 극소수 축복이었다. 알타미라 동굴을 비롯한 전 세계의 구석기 동굴은 셸터라기 보다, 대부분 신성한 제의의 장소, 종교적 장소로 사용되었다.
대부분 인류는 인공적 구조물을 만들어 셸터로 삼아야했다. 가장 초보적이고 보편적인 셸터란 오두막과 천막이다. 두 구조물 모두,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최소의 부재를 가지고 최소의 인공적 조작을 통해 만드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러나 오두막은 한 장소에 고정된 상시적 구조물이지만, 천막은 여러 장소를 이동하며 해체와 조립을 반복하는 일시적 구조물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원시 오두막 (primitive hut)에 대한 논의는 근대 건축이론의 출발점이었다. 프랑스 계몽기의 수도사이자 건축이론가인 로지에(M.A. Lausier)는 대지에 뿌리를 내린 나무들을 수직 기둥으로 삼고, 가공한 목재를 수평보와 서까래를 걸고, 그 위에 풀을 덮어 인공적인 지붕을 얹음으로써 원시 오두막이 탄생했다고 추론한다. 극히 상식적인 이러한 상상 이론이 무슨 가치를 가질까? 로지에 당시는 건축을 종교적 상징이나 권력의 표상으로 인식했던 시대다. 로지에는 건축이란 이처럼 기능적이고 실용적인 차원에서 발생한 것이고, 기능과 실용이 건축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근대건축까지 이어지는 실용주의와 합리주의의 가치를 이론적으로 설파했던 것이다.
원시 천막(primitive tent)은 언제 어떻게 발생했을까? 정착민의 건축에만 관심을 가졌던 주류 이론에서는 그 논의를 찾기 어렵다. 주류 건축계는 건축이란 대지에 고정되어 특정한 장소성을 가져야만 한다는 고정 관념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류의 태동기에 이미 원시 천막은 거의 유일한 셸터로 고안되었고, 오두막이란 수십만 년 후인 정착기의 산물이다. 따져 보자면 건축의 기원은 원시 천막이다. 아마도 나뭇가지 몇 개를 얽고 나뭇잎 따위를 덮어 만든 가장 초보적인 천막에서 시작하여, 사냥한 짐승들의 가죽을 덮고 두른 피막(皮幕)으로, 직조한 천을 짜서 덮은 장막(帳幕)으로 발전했을 것이다.

장막의 비일상성
오두막은 농경민의, 천막은 유목민의 건축이라는 이분법적 등식은 피상적 관찰이 낳은 편견이다. 농경 사회에서도 천막의 유용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천막이 갖는 이동성, 일시성, 가설성은 오히려 천막을 특별한 건축, 상징적인 시설물로 의미를 바꾸었다.
유목민들의 일상 주거는 지구상의 어느 문화권이든 천막이었다. 몽골의 게르나 아메리카 인디언의 티피, 베드윈족의 검은 장막 등 형태와 재료는 다양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천막의 일종이다. 현재의 유목민 텐트는 비록 실내에 인공위성 TV와 휴대용 발전기를 설치했지만 여전히 수만 년 전에 고안된 전통적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농경사회에서도 이동하는 인간의 셸터는 여전히 천막이었다. 직조기술의 발달로 천막은 주로 장막이 되었다. 원거리 농업을 해야 하는 농민들은 일시적인 농막(農幕)을 지었고, 여기서 물건을 띠어 저기서 팔아야하는 상인들은 휴대용 그늘막(陰幕)을 사용했다. 야전에서 싸움을 해야 하는 군인들은 군막(軍幕)을 자신들의 셸터로 삼았다. 현대의 상인들은 다양한 파라솔을 개발하여, 야외 공기를 좋아하나 햇볕은 싫어하는 까다로운 고객들의 접객장으로 사용한다. 첨단 전자장비로 무장한 현대의 야전군들 역시, 두랄루민 프레임과 방탄 천으로 무장한 첨단의 군막을 이용한다. 소재와 디테일은 첨단화될지언정, 구조와 형식은 전혀 변화가 없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유형학적 격언은 태양을 가리는 장막의 성격을 너무나 잘 설명한다.
‘幕’이라는 한자의 생김새를 주목하자. “풀 따위의 지붕(艸)을 덮어 해(日)를 가리는 큰(大) 천(巾)이라”는 뜻글자이다. ‘帳’이란 ‘길게 이어 붙인 천’으로 장막의 소재를 가리킨다. 장막을 치면 햇볕과 그늘을 구획하게 되고, 안과 밖을 가르게 된다. 어둡고 시원한 내부는 평온하고 안정된 성소가 되고, 밝고 뜨거운 바깥은 고통스럽고 소란한 세속이다. 왜 왕실의 의례는 굳이 차일 아래의 그늘에서 행했을까? 하늘을 가린다는 성스러운 공간이기 때문이다.
왜 서커스나 마술은 고정된 전용극장이 없고, 일시적인 장막극장에 어울릴까? 장막이 갖는 이동성과 일시성 때문이다. 관객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서커스는 일상이 될 수 없고 마술은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일상이 서커스 같다면 얼마나 위험한지, 현실이 마술 같다면 얼마나 허무한지. 이 환상적 공연은 사라지는 순간이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 내일은 다른 곳으로 가버려 사라질 장막이야말로 이 환상에 가장 적합한 건축이다.
건축은 늘 고정되고 영구한 것인가? 삶이란 반복이고 현실인가?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장막은 대답한다. 가끔은 꿈을 꾸고 가끔은 일탈하는 삶이 더 행복하지 않은가? 어떤 장소로 움직일 수 있고, 어떤 순간 사라질 수 있는 건축이 더 건강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