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16년 6월 어느 일요일, 광화문 네거리 서쪽의 ‘경희궁 폐허공원’으로 향한다. 종로를 지나 신문로로 이어지다가 정면으로 크지 않은 기와대문이 다가선다. 신문로는 왼쪽으로 휘어져 서대문으로 빠지고, 대문 뒤편으로 우람한 모습의 서울역사박물관이 눈에 들어온다. 박물관이 개관한지 14년이 되는데, 20세기에 유행하던 모더니즘적 형태는 벌써 옛 감각으로 느껴진다.
대문의 이름은 ‘흥화문’, 옛 경희궁의 정문이다. 흥화문은 정말 기구한 운명을 겪었다. 한때는 도성의 제2 왕궁 정문으로 위용을 떨쳤으나, 일제강점기에는 뜯겨져 장충동 박문사 (침략원흉 이또오 히로부미의 신사)의 대문으로 쓰여지기도 했고, 해방 후에는 신라호텔의 정문으로, 다시 1990년대 어설픈 경희궁 복원사업으로 경내 엉뚱한 곳에 옮겨졌다가, 이제야 비로소 제 자리를 찾은 것이다.
흥화문의 수난은 경희궁의 모든 건축물이 겪은 왜곡의 역사이기도 했다. 일제기에 일본인중학교가 설립되면서 궁궐은 아예 존재조차 없어졌으니까. 그리고 90년대 복원사업 때, 대규모의 시립박물관을 신축하면서 땅 속에 묻혀있던 많은 건물터의 흔적들이 파괴되었다. 경희궁에 애착과 관심을 가진 것은 그때부터였다. 이 파괴적 복원 후에 뜻있는 이들이 힘을 모아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한 끝에 경희궁은 새롭게 태어났다. 오늘은 바로 그 재개관식 날이며, 광해군이 경희궁 창건공사를 낙성한지 딱 400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흥화문을 들어서면 양쪽으로 각각 70여칸에 이르는 기다란 행랑건물이 끝없이 뻗어있고, 그 사이로 임금이 행차했다는 어도가 놓여있다. 행랑 길의 끝에서 오른쪽을 바라보면 일군의 건축물들이 나타나는데, 90년대에 복원한 정전인 숭정전 일곽이다. 또 돌아온 길을 되돌아보면, 어도 끝 흥화문을 건너 신문로와 종로가 아련히 연속되고 있다. 도시의 가로와 궁궐의 어도가 하나로 연결된 모습이며, 경희궁의 옛모습을 기록한 <서궐도>에 그대로 표현된 원래의 모습이다. 이런 건축을 이른바 도시적 건축이라 부르고, 경희궁의 건축적 가치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행랑 건물들은 지붕이 없고 기둥과 벽만 서 있어서, 과거에 이 자리가 행랑터였다는 암시를 준다.
이외에는 어떤 건물들도 보이지 않는다. 단지 복잡하게 얽혀있는 담장과 계단과 길들만이 새로 단장되어 있을 뿐이다. 길에 놓인 계단을 올라가면 그 밑에는 정교하게 발굴된 건물의 기단과 초석들이 놓여져 있다. 계단이 내려가는 곳에는 관목과 화단으로 무언가 조성되었는데, 화단은 건물터의 모습으로, 관목들은 건물기둥이 있음직한 곳에 배치되어 있다. 흔적도 없어졌지만, 기록들을 따라 건물들이 있음직한 위치에 만들어진 가상 현실이다. 비록 지상에 건물은 복원되지 않았지만, 이런 폐허들을 지나면서 경희궁의 전체적인 모습을 그려보게 되고, 타임머신을 탄 듯 역사가 새롭게 태어나는 즐거움에 젖는다. 아마 보는 사람마다 그려보는 모습이 다를 것이다. 이 점도 폐허공원이 노리고 있는 상상의 다양성이기도 하다.
건물이 무너지는 순서는 건설되는 순서와 정반대 역순이다. 가장 처음 땅을 고르고 기단을 만들고 초석을 놓기 때문에, 우리의 폐허에는 기단과 초석만 남게 된다. 그 위에 세워진 목조건물의 일부라도 남기 어렵다. 그러나 그 시초의 평면적 폐허야말로 지상의 건축공간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틀이 된다. 따라서 폐허에 서면 선조들이 가졌던 애초의 생각들을 만날 수 있다.
경희궁의 폐허에는 조선시대의 유적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일본인 학교의 일부 흔적과 당시에 변형된 지형들, 그리고 역사박물관이라는 거대한 훼손의 증거도 남아있다. 진정한 폐허의 공원은 이 모든 시대의 역사적 지층들을 간직해야한다. 훼손의 역사도 역사다. 경희궁에는 일제 때 만들어진 거대한 방공호가 숨겨져 있었다. 이 치욕적인 구조물을 철거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그 역시 이 땅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소중한 폐허이기 때문에 내부를 디지털 입체극장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오늘 오후에는 경희궁의 역사와 서울시의 역사를 재현한 3차원 영상쇼가 공연될 것이다.
폐허는 완전한 것이 아니라 부족함의 최소한이다. 그 모자라는 부분을 보충해주는 것은 바로 상상력이다. 원래의 모습을 나름대로 그려보는 보물찾기와도 같은 즐거움을 준다. 완벽한 것은 더 이상의 상상력을 금지한다. 그래서 폐허의 복원은 건물의 복원이 아니라, 상상력의 복원이어야 한다. 경희궁 터를 폐허의 공원으로. 그래서 사라진 궁궐과 도시의 역사를 되살리는 낭만을, 잃어버린 시민들의 상상력을 되찾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