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일
1995.06.09.
출처
경상일보
분류
건축론

요즈음 고속도로 입구의 신복로타리를 지나기가 겁이 난다. 시도 때도 없이 차가 막혀서 로타리를 빠져나오는데 심할 때는 2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예고없이 일어나는 차량정체이기 때문에 시내 약속은 물론 학생들의 등하교 시간도 지키기 어렵다. 게다가 조금이라도 먼저 빠져나가기 위해 차머리를 들이미는 통에 접촉사고가 겹쳐 정체현상을 더욱 부채질한다. 정체의 근본적인 원인은 고속도로 재포장 공사로 진입차선이 1차선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며, 이 현상은 적어도 올 추석까지 계속될 것이라 한다.
공업탑 로타리는 경남도에서 두번째로 잦은 차량사고를 자랑하고 있다. 신호등 체계도 도입해 보았지만 정체만 가속시켜 시행 몇주만에 중단한 채, 운전자들의 인내에 방치해 둔 상태이다. 대다수 운전자와 승객들은 이 지점을 지날 때마다 한마디 씩 푸념한다. 시당국을 원망하고 상대편 운전자에게 가벼운 욕설도 퍼붇는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일단 이 교통지옥을 빠져나오면 어느 누구도 조금 전의 고통을 잊어버린다는 사실이다. 더이상 행정당국을 욕하지도, 근본적인 대책이 무엇인지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 뿐인가. 30%를 웃도는 전국 최고의 결항율을 자랑하는 울산공항을, 읍소재 터미날보다도 못한 고속터미날의 화장실을, 하루 몇번 없는 철도편을 이용하면서도 큰 불평들이 없다. 이제서야 공항을 확장한다, 복합 터미날을 신축한다 하지만 거기에도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어렴풋이 “지금보다야 나아지지 않겠는가?”하는 기대만 있을 뿐이다. 역사도시 경주를 파괴하면서까지 노선을 신설하면서도 100만 도시 울산을 비껴 지나가는 고속전철에 대해서도 아무런 요구를 하지 않는다. 소나무 숲이 산성비로 말라죽는 대신 미국자리공이 번성해도, 매연과 먼지로 기침이 나고 골치가 아파와도, 일년 내내 오페라 한편 볼 수 없어도 시민들은 그 누구를 원망하지 않는다. 시장에서 길거리에서 주차장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성미 급한 울산시민들은 다 어디가고, 참을성 많고 이해심 많은 시민들만 있는 것일까.
지자제 시행을 앞두고 지역이기주의를 걱정하지만, 울산은 지역이타주의로 표창받을 만하다. 시민들은 급속한 산업화의 피해와 개발의 부작용을 이해할 만큼 수준이 높고, 우리 지역의 환경개선보다는 나라 전체의 발전을 걱정하고 있다. 울산의 행정을 책임질 시장과 관료들이 없었다는 이유 때문에 시민들도 시민의식도 실종한 것은 아닌가. 며칠 후 시장과 시의원을 잘 뽑아 숙원의 “울산광역시”를 성취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들이 해결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