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까지 새천년 건설환경 디자인 세계대회가 성대하게 열리더니, 지금은 2000년 건축가 축제가 진행 중이다. 불과 몇달 전, 세계의 국가원수들이 모여 다자간 정상회의를 열었던 아셈 컴플렉스의 바로 그 회의장에서 50여명의 국내외 건축계 석학과 대가들이 디자인을 주제로 국제대회를 열었다. 파올로 솔레리나 안트완 프레독 같이 이름만 들었던 대가들이 수도 없이 초청되어서, 누가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최고의 시설에서 최고들이 모였다. 예술의 전당에서 벌어지는 건축가 축제의 일반 공모전에는 1400여 작품이 응모하여 100여 작품이 입선 전시 중이고, 초대 작품전에는 50여 기성 건축가들이 서로의 기량을 뽐내고 있다. 바야흐로 건축의 세기, 건축의 계절이 도래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대학 졸업자들을 받아주는 건설회사나 설계사무소는 열에 하나도 되지 못하고, 현재의 20%까지 건설회사가 줄어들어도 무방하다는 경기 예측이 나오는가 하면, 절반 정도의 설계사무소가 이번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문을 닫으리라는 비관적 전망에 우울하다. 하늘에는 새천년의 장미빛 무지개가 걸려 있는데, 건축의 터밭은 가뭄과 냉해에 말라 터지고 있는 꼴이다.
정말 우울한 사건이 하나 더 발생하고 말았다. 노동부에서 입법 예고한 ‘자격의 관리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다. 이에 따르면, 변호사 의사 회계사 법무사 등 60개의 국가자격은 현행대로 개별법에 의해 관장하고, 건축사 부동산중개사 주택관리사 손해사정사 안경사 등 117개 자격은 통합하여 관장토록 한다는 내용이다.
우리는 그래도 건축사의 입지가 변호사나 의사만은 못해도 법무사 정도는 되리라 생각했다. 4년제 교육도 모자라서 5년제냐 4+2년제를 논의하고 있고, 가협회 사협회 학회 등으로 나뉘어 건축의 예술적 기술적 학술적 주도권 다툼을 벌일 정도로 활발한 건축계라 생각했다. 그러나 당국과 세상은 건축가를 여전히 설계사로 부르고 있으며, 복덕방 아저씨나 관리사무소장과 구별하지 못하며, 보험설계사나 안경사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인정하는 전문직은 의사 변호사 건축사(가)다. 이들 3대 직종은 별도의 교육체제를 가져야하고, 별도의 시험을 통해 면허를 받아야 한다. 그만큼 중요하기에 국제인증이다, 상호 개방이다 하는 압박이 있지 않은가? 건축사협회에서는 당연히 이 입법에 반대하고 관계기관과 담당 공무원들을 설득해야 한다. 그러나 이 말도 안돼는 법안이 수정되어 건축사법에 따라 건축사 자격이 관리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는가? 이처럼 건축의 위상이 추락해버린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건축의 사회적 제도적 위상은 건축계 내의 제도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 가협회 사협회 학회는 내부 결속과 주도권 다툼에만 익숙했지, 변화하는 국제상황과 국내 정세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탄력도 여력도 없는 듯이 보인다. 교육의 국제 인증과 자격 시장의 개방 등 중요 사안을 3단체가 서로 책임을 미루다가 결국 급조된 시안으로 양해를 구할 수밖에 없었던게 바로 작년이었다. 그후, 건축단체연합(가칭 FIKA)을 결성하고, 건축인증원을 설립한다더니, 아직 아무런 가시적 움직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몇개의 건축잡지들이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내 건축계에는 리더십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고, 존재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건축사 자격이라는 전문직에 속한 한, 그리고 건축허가라는 제도적 장치가 존재하는 한, 또한 교육인증이라는 국가적 제도가 작동하는 한, 건축계의 제도적 리더십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의 혼란이 제도적 리더십의 부재에서 출발한 것이라면, 그 해결책도 다름 아닌 리더십의 문제이다. 정치권과 행정부를 설득하여 건축계의 위상을 공고히 하고, 국제적 활약으로 한국적 교육 인증을 인정받고, 언론과 사회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로 건축의 문화적 사회적 역할을 제고시켜야 한다. 그 일을 누가 하겠는가? 아직은 건축 3단체로 대표되는 제도권 조직이 담당할 수밖에 없다.
우물 안 개구리는 하늘을 알지 못하며, 여름의 베짱이는 겨울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건축인들이 건축계라는 영역 안에서 아웅다웅하고 있는 사이에, 또는 세계대회다 새천년이다 자위하고 있는 사이에, 우물은 메워져가고 여름은 끝이 나고 있다. 이 공멸의 위기, 추락의 늪에서 헤어나기 위해서는 리더십이 절실하다. 이제는 도덕적 권위나 학술적 존경이나 디자인의 실력을 갖춘, 그런 이상적 리더십은 바라지도 않는다. 정치적 역량만이라도 갖춘 리더십만이라도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