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일
2000.04.25.
출처
건축가학교
분류
건축교육

건축가협회에서 주관하는 건축가학교는 교육의 목표와 성과에 대한 확실한 방향정립이 필요하다. 설립목표(안)을 보면 4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세계적 건축가를 양성하고, 실무건축가에게 재교육기회를 부여하며, 건축교육의 전문화와 국제화를 이룩하고, 한국건축문화 창달의 주체적 학파를 형성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두 번째 목표에서 알 수 있듯이, 아마도 실무 건축가에 대한 재교육기관을 염두에 둔 듯하다. 재교육은 건축가 자격 인증의 중요한 요소로서, 기존의 건축사 보수교육과는 다른 수준의 프로그램을 의미하며, 아직 국내에는 이를 전담할 기관이 없기 때문에 건축가협회와 같이 공신력있는 기구에서 재교육을 담당한다면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나머지 세가지 설립목표는 재교육기관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오히려 상충되는 목표가 아닌가 한다. 세계적 건축가란 극히 일부 엘리트 건축가에게만 열려있는 가능성이며, 보편적 수준의 대량교육을 요구하는 재교육의 목표로는 합당치 않다. 세계적 건축가란 목표한다고 성취되는 것은 아닐 것이며, 재교육으로 달성될 대상은 더더욱 아니다. 또, 재교육이란 전문교육이라기 보다는 대학에서 교육된 건축기초를 다시 다지고 상기시키는 것으로 충분하다. 모두 첨예한 기술과 현실이 부딪히는 현장에서 일하는 실무건축가들은 이미 전문인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전문지식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건축가로서의 기본적 윤리요, 인문적 지식이 아닐까. 건축가학교가 재교육기관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교육목표 보다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해야 할 것이다.
올해 시행되는 프로그램이 건축가학교의 궁극적 모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학에서 4년 이상의 교육을 받고, 현장에서 수년간 설계실무를 익힌 전문가들에게 다시 설계스튜디오를 요구한다는 것은 과잉교육이요, 중복투자다. 더욱이 장기계획에 들어 있는대로, 3년제의 전문과정은 기존 건축대학원과 다를 바가 없는 계획으로 보인다. 실무계의 중진에 있는 이들이 생업을 3년간 유보한채 다시 교육에 전념해야 한다면, 실무계 전체의 심각한 인력 손실을 유발하고, 개인적 피해를 강요하게 된다.
교육계에서 현재 추진하고 있는 건축교육 개혁작업이 정착하여 5년제 학부 등 설계 전문교육이 자리를 잡는다면, 이미 학부만으로 최종 교육이 인정될 것이다. 교육은 완성이 아니라 실무를 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며, 창의적 생각과 세계관을 키워주는 것으로 족하다. 그 위에 다시 3년간의 설계교육을 요구한다면 총 8년 이상의 교육연한을 의미하게 된다. 교육에만 치중된다면 실무는 누가하는가?
건축가협회는 특정한 대학이나 건축가그룹과는 다른 공공적이고 보편적인 기관이다. 건축계의 위상정립과 효율성 증대를 우선으로 생각해야할 공익적 기관이다. 건축가학교 역시,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효과를 거두는 중간 수준의 목표와 시행 전략이 있어야 한다. 현재와 같은 형태의 교육기관은 이미 충분히 존재하고 있다.
우선 재교육 대상을 명확히 설정하는 것이 좋겠다. 이미 건축사 자격을 획득한 이들인지, 아니며 실무경력 2-3년 이상의 중반층을 대상으로 할 것인지. 현재와 같이 ‘대학원 재학생, 건축실무 초년생 등, 건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가능……’하다는 기준을 설정하고 재교육기관이라 하는 것은 무리가 많다. 이는 약식 대학원 과정이며, 이벤트성의 워크샾에 불과하다. 이처럼 대상을 개방하려면, 재교육기구가 아닌, 사회교육의 개념에서 출발하는 것이 합당하다.
이미 전문가인 학생들을 모아 놓고 무엇을 교육할 것인가? 두 차원의 전략이 요구된다. 실무작업을 통해 무뎌지고 망각하기 쉬운, 건축의 기본개념들과 사회적 역할 등에 대한 비판적 인문교육이 기초적 내용이라면, 최신의 국제정보나 경향, 신기술 습득 등 그야말로 전문적인 내용이 동시에 요구된다. 그 사이의 어정쩡한 설계 스튜디오나 이론 강좌는 효율성이 적다고 보인다.
교육년한이나 시스템에 대한 신중한 고려도 요청된다. 실무건축가임을 전제로 할 때, 3년제와 같은 장기적 년한은 불가능하다. 한달 또는 길어야 한학기의 프로그램, 또는 한주 단위의 여러 차례에 걸친 학점은행식 운영, 야간과 주말 과정의 개설 등 실무계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다양한 학제를 연구해야 한다.
교육목표, 교육년한, 교육내용 등 모든 학제에 대해서는 자세한 시장조사를 토대로 효율적인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건축가협회의 교육이란 일반 대학이나 사립학교와는 달리 공익성, 보편성을 최대의 가치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건축가학교는 교육기관이라기 보다는 공공 실무기관으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 재교육이란 전문실무의 변화된 형태이기 때문이다.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