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일
1994.03.05.
출처
미확인
분류
기타

힌두교의 나라, 그래서 아직도 캐스트제도가 엄격하고 시커먼 소들이 대접받는다는 나라. 간디와 타고르와 부처의 나라. 절대 가난과 핵폭탄과 인공위성이 공존하는 나라. 타지마할과 행복한 도시(City of Joy)의 나라, 인도. 지난 겨울 그 많은 얼굴을 가진 나라, 내 동경의 미지의 나라를 다녀올 수 있었다.
한국 건축계의 개혁과 발전을 주도하는 집단 중에 4.3그룹이 있다. 실력있는 40대 건축가들이 모여 많은 신선한 활동을 벌리고 있는데, 이번 여행 팀도 그들이 주축이 되어 뜻이 잘 통 하는 다른 건축가들과 교수들로 조직되었다. 물론 이팀에는 민현식(건축가, 24회), 김광현(서울대교수, 29회) 선배 등 8명의 건축학과 동문들이 참여했다. 인도는 불교와 힌두교 무슬렘들의 세계적인 전통건축으로 유명하여 이들 명작을 감상하는 것도 이번 여행의 목적 가운데 하나이지만, 무엇보다 20세기의 위대한 건축가였던 르 꼬르뷔제와 루이 칸의 기념비적 건축을 찾아보는 것이 최대의 목적이었다. 경제적으로 우리보다 훨씬 빈곤한 나라, 그렇지만 인류 문화의 진원지가 되었고 아직도 깊은 정신의 세계를 이끌고 있는 나라의 건축은 어떠할까. 진한 호기심과 설레임의 출발이었다.
인도에 가려면 세가지를 버리라고 했다. 시간 계획과 여행용품, 그리고 무엇을 얻겠다는 마음. 전체적으로는 인도 사회의 후진성을 빗댄 말이지만 인도의 현실을 요약한 것이기도 하다. 우선 시간. 하루를 24시간으로 쪼개고 분 단위 시간 단위로 진행해나가는 기계적인 시간은 전혀 무의미했다. 아니나 다를까 홍콩에서 델리로 가는 인도항공은 7시간을 지연 -지연이 아니라 아예 결항이었고, 다음 비행기를 이용한 꼴이 되었다-한 끝에 새벽 4시에 드디어 인도에 도착했다. 국내 항공편은 더욱 형편이 없어서 도시간 항공이 언제 있을지 예측불허였다. 심할 때는 예고도 없이 결항한 것을 장거리 전화로 항의한 끝에 4시간 연착 후 겨우 얻어 탈 수 있었다. 비교적 정확한 교통편은 열차인데, 운행 편수가 많지 않아 별 도움이 못되었다. 마지막 방법은 버스 이동. 이 편이 인도에서는 가장 확실한 이동 수단이란다. 그러나 고속도로 -인도에서는 아스팔트 포장이 된 2차선 도로를 의미-는 좁고 순인도산 버스의 성능도 좋지 못해 평균 시속이 50km에 불과해, 200km쯤 떨어진 도시를 이동하는 데는 보통 4-5시간이 걸린다. 그 이상은 버스 이동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처럼 불안한 교통 사정에도 불구하고 계획한 일정을 그런대로 모두 소화한 것은 부처님인지 알라신인지 혹은 시바신인지의 가호였다.
두번째 버리고 가라는 것은 잘 지켜지지 않았다. 특히 맵고 지독한 냄새로 악명 높은 인도 음식 때문에 참가자들 대부분이 김치 라면 따위의 생존식을 한보따리 씩 들고 갔다. 필자는 먹거리에 관한 한 가리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전혀 대비가 없었지만. 그러나 우리가 접한 음식들은 고급스럽고 꽤 국제화된 것들이어서 많은 분들이 절반도 소비하지 못하고 짐으로 남았다. “인도에는 공중화장실이 없거나 있어도 휴지를 쓰지 않는다. 뒤처리는 손에 물을 묻혀야한다.”는 경악스러운 사전 정보 때문에 준비한 3통의 두루마지 휴지도 진짜 휴지가 되고 말았다. 우리가 이용한 화장실들은 최고급 호텔 아니면 국제공항에 있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의미의 인도 여행은 못한 셈이다. 실제 인도인들은 소유물이 거의 없다. 석가 당시 승려가 가질 수 있는 것은 걸레조각 옷과 밥그릇 한 세트였는데, 지금도 그 이상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여행 중 보통 농촌 살림집의 내부를 엿 볼 기회가 있었는데, 가재 도구라고는 사제품인 침대 하나와 솥과 그릇 열댓 개가 전부였다. 이런 무소유의 나라에서 여행을 위해 특별히 마련한 용품이란 걸맞지 않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역시 호사스런 여행객이었고 이방인에 불과했다.
마지막으로 버리고 가라는 여행 목적에 대한 욕심. 인도의 진수를 보겠다거나 꼬르뷔제와 칸의 교훈을 얻겠다거나 하는 욕심을 버려라. 이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여행을 가지 말라는 이야기나 같으니까. 아마 예상한 것과 너무나 차이가 나는 인도 현실에 대한 주의 환기일 것이다. 돌이켜 보면 개인적으로 이번 여행에서 얻은 것, 혹은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인도의 건축이 아니라 인도의 자연과 사람들이다. 갠지즈 강변의 바라나시는 힌두교의 성지로 추앙받는 도시이다. 여기에는 인도 전국에서 모인 힌두교도들 그리고 그들을 보려는 관광객들로 북적거린다. 여기서 죽어 갠지즈 강에 뿌려지면 일생의 죄가 깨끗해져서 내세에 더욱 높은 계급의 인간으로 윤회한다는 힌두교의 믿음 때문에 강의 상류 쪽에서는 하루 종일 화장한 가루들이 강 위에 뿌려진다. 바로 아래 쪽에서는 그 물을 성수로 여겨 마시고, 목욕하고, 빨래하는 사람들로 북적된다. 바라나시에는 150여 군데의 가트 (화장터 겸 목욕탕)가 있는데, 화장되기 위해서는 500루피 (한국돈 12,000원 정도)가 필요하다. 인도의 서민들에게는 적지 않은 돈이다. 인도 전역에서 몰려 온 죽음을 앞둔 힌두인들은 미리 500루피를 예탁하고 죽을 날을 기다린다. 문제는 이들이 언제 죽을지 자신도 모른다는 점이다. 가난한 이들이 죽는 날까지 대비해 생활비를 갖고 있을리 만무하다. 때문에 이들 거의 대부분은 ‘박시시 (布施, 동냥)’로 연명할 수 밖에 없다. 바라나시 시내에서 강가로 나가는 1.5km의 좁은 거리는 늙고 병들어 죽음을 기다리는 이들의 구걸 행렬로 즐비하다. 아직 힘이 남아있는 이들은 걸어다니며 구걸을 하지만, 거의 내세가 가까운 이들은 길가에 누운 채로 손만 벌리고 있다. “박시시! 박시시!”를 외칠 힘마저도 없다. 그야말로 반송장이다. 오늘 동냥을 얻지 못하면 내일 아침쯤은 곧바로 화장터로 향할지도 모른다. 삶과 죽음이 일상 속에서 얽혀있고,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인도인들. 죽음의 예절과 동냥의 치부마저도 관광 상품으로 내놓고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들. 그들의 세계는 과연 무엇이기에 이처럼 우리와는 다를까. 내가 인도에 태어났다면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 나라에서 건축이란, 예술이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등의 심각해지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인도인들은 “인도는 나라가 아니라 대륙이다”는 말을 자주 한다. 동서유럽을 합친 것만큼 넓고 6억이 넘는 인구를 가지고 있으며,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문명을 가지고 있는 나라를 짧은 지식으로 단정하지 말라는 경고다. 우리가 여행한 지역은 북부 인도의 몇 개 주에 지나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 아니면 건축사에 중요한 챤디갈과 암다바드 정도이다. 이들 지역은 인도에서도 가장 부유하고 서구화된 곳들이라 한다. 그것도 열흘간의 짧은 일정이었다. 그러니 드라비다인 (인도 원주민으로 북부 아리안족의 침입으로 남하함)들의 남인도나, 데칸고원의 중인도, 서인도에는 또 어떤 세계가 있을까. 인간 생존 이하의 가난과 최고의 문명이 공존하는 불가사의의 나라. 귀국한 후에 울산으로 내려오는 비행기 속에서 신문에 난 책 한 권의 광고문안이 잊혀지지 않는다.
“풍요로운 세계를 보고 싶습니까? 그러면 유럽으로 가십시오. 싸면서도 호화로운 물건을 사고 싶습니까? 그러면 동남아로 가십시오. 이도 저도 싫고 사는게 무엇인지 사색하고 싶습니까? 당신이야말로 인도로 가십시오. 인도 여행에서 돌아오는 이들의 얼굴은 모두 부처를 닮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