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집과 지금 집은 생김새도 다르고 재료도 다르다. 또, 현대 주택의 재료와 형태가 서양에서 들어왔다고 해서 우리는 이제 모두 서양주택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잠실과 분당의 아파트들은 세계 어느 곳에도 없고 이 땅에만 존재하는, 이른바 한국형 아파트들이다. 아파트문화가 수입된 지 30여년 만에 한국의 주택사업자들은 부단히 우리 생활에 맞는 아파트 형식들을 개발해 왔다. 여전히 획일적인 단지계획과 외부공간은 방치되어 있지만, 적어도 실내 평면만은 한국인의 생활에 가장 잘 맞는 집이 되었다. 따라서 지금 지어지는 아파트의 구조를 잘 들여다보면, 우리 주거문화의 변하지 않는 전통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우리 아파트들은 모두 신발을 벗고 들어가도록 현관과 신발장이 구비돼 있다. 서양의 아파트 설계를 그대로 따랐던 초기의 아파트들에는 -예를 들어 남산 외인아파트나 영동 AID아파트에는- 없었던 시설이다. 아파트의 모든 방들은 거실을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다. 거실은 모든 가족들에게 개방되어 있으며 손님접대와 가족 모임의 장소로 쓰인다. 서양 주택에도 거실이 있지만, 이처럼 다용도로 쓰이는 것이 아니고 벽과 문이 달려 독립된 방과 같이 구성된다.
아마도 가장 한국적인 특징이라면 모든 아파트가 바닥에 난방 파이프를 깔아 바닥을 덮히는, 현대판 온돌이라 할 수 있는 ‘패널 히팅’ 시스템을 선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온돌과 아파트의 만남이라는 현상은 서양은 물론, 이웃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찾기 불가능한 현상이요, 우리만의 고유한 전통이다. 엄청나게 변화한 것 같은 주생활 속에서 여전히 변하지 않고 남아있는 끈질긴 생명력, 그 변하지 않은 부분들은 주거의 가장 기본이 되는 시설이며 구조라는 점을 생각하면, 주생활만큼 변하지 않는 분야도 없는 것 같다.
한국의 전통주거를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온돌과 마루가 함께 있는 집’이라 할 수 있다. 너무나 당연한 현상으로 여기지만, 사실 온돌과 마루는 서로 상극을 이루는 요소들이다. 온돌은 불을 지펴서 바닥을 달구는 난방용 시설로 추운 북쪽지방에서 유래한 요소다. 반면 마루는 지면에서 떨어진 허공에 바닥을 걸어 무더위를 피하려는 남방지역에서 유래한 요소다. 추위를 피하기 위한 온돌은 될 수 있는 대로 지면에 밀착되려 하고, 더위를 피하려는 마루는 지면에서 높아지려 한다. 또한 마루를 이루는 나무 판자들은 온돌 아궁이의 불과는 상극인 재료다. 이처럼 위치와 유래와 기능과 재료가 상반되는 온돌과 마루가 한집에서 동시에 쓰여지고 있다는 것은 위대한 발명이요 유산이다. 특히 온돌의 끈질긴 생명력은 현대 아파트에도 부활하여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 기후에 맞추어 필연적으로 개발될 수밖에 없었던 현상으로 치부할 수만도 없다. 왜냐하면 비슷한 기후의 중국과 일본에는 이런 집이 없기 때문이다. 중국에는 온돌 비슷한 ‘깡’이라는 난방시설만 있고 마루가 없다. 일본에는 마루만 있을 뿐 온돌 비슷한 것도 없다. 그렇다고 중국에 무더운 여름이 없거나, 일본에 추운 겨울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한국집은 비록 규모가 작고 화려하지도 않지만, 가장 발달된 요소와 시설을 구비하고 있는 과학적인 주택이었다.
한국 주거의 모습은 시대별로 변화가 있어서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다. 현대인들이 흔히 ‘한국적’이라 생각하는 것은 조선시대, 그것도 임진왜란 이후에 정착된 것으로 길어야 400년을 넘지 않는 것들이다. 바로 앞에서 말한 온돌과 마루의 결합도 17세기 이후에 전국적으로 보편화된 현상이다. 또 지금 남아있는 한옥들의 99.99%는 모두 이 시대의 주택들이다. 이 시대 주택에만 한정해 말하자면 몇가지 한국주택의 특징들을 말할 수 있다.
우선 어디에 집을 짓는가하는 집터 잡기가 중요했다. 건물과 인구가 밀집된 지금의 도시환경과는 달리, 예전의 주택들은 대개 농촌의 자연환경 속에 자리를 잡게됐다. 따라서 집자리의 주변을 둘러싼 산과 강, 내와 들의 성격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했다. 산이 없고 들만 터져 있으면 바람이 세서 견디기 어렵고, 반대로 너무 높은 산이 가로막으면 바람이 안 통해 무덥고 답답한 등, 자연 조건은 주거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자연환경의 조건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합리적으로 대처하다보니 생겨난 것이 ‘풍수지리설’이었다. 풍수설에는 비록 미신적인 측면도 없지 않지만, 당시로서는 최선의 과학적 지식이었고, 최고의 집자리 잡는 법이었을 것이다.
조선시대는 양반-중인-상인으로 구성되는 신분사회였다. 당시의 신분이란 자신들의 직업과 학력, 소득까지도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양반은 고등교육을 받으며 세습된 토지의 재력과 노비의 인력을 바탕으로, 자신은 아무런 생산활동없이도 일생 먹고살 수 있었다. 그러나 경제적 여유가 있다고 해서 호화 살림집이나 고급별장을 짓지는 않았다. 금욕적인 유교교육을 받은 양반들은 절제와 청빈을 이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최소의 필요한 공간에도 만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록 작고 소박한 집이라 하더라도 항상 우주의 질서와 인간의 도리를 생각했던 그들은 자신들의 주택에 그처럼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공간을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한옥은 규모는 작지만 의미는 큰 집이었다.
중인층과 일반 서민층의 주택은 보다 실용적이고 기능적이었다. 양반층에 비해 일상적인 생활이 바로 자신들의 존재근거였기 때문이다. 밥먹고 잠자고 일하기에 적합한, 그러면서도 가장 경제적인 구조와 규모를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양반층 주택에 비해 규모도 작고 모습도 초라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생활과 밀착된 생생한 진실이 담겨져 있다. 양반들의 주택에서 형이상학적인 우주의 개념들을 읽어낼 수 있다면, 중인 서민들의 민가에서는 생활 속에서 우러나온 삶의 지혜를 읽을 수 있다.
계층을 불문하고 유교적인 규범이 모든 사회의 도덕이 됐던 조선시대의 주택들에는 뿌리깊은 유교적 위계질서가 자리잡게 되었다. 첫째는 상하간의 계층적 질서였다. 같은 집안에 거하는 사람들이지만, 주인과 하인 간의 관계는 엄격할 수밖에 없었다. 노비들은 행랑채에 거하면서 항상 주인가족의 부름에 응해야 했다. 둘째는 남녀간의 구별이었다. 잘 알려졌듯이 남자들은 사랑채, 여자들은 안채라는 건물을 아예 따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습이었다. 셋째는 장유유서, 다시 말해 어리고 나이많음에 대한 위아래 질서였다. 여자들의 안채에서도 시어머니는 안방을, 며느리는 건넌방을 차지한다. 남자들의 사랑채에서도 위아래 관계는 마찬가지로 아버지는 큰사랑방, 아들은 작은사랑방을 차지한다.
따라서 웬만한 집들은 안채-사랑채-행랑채 등 여러 채의 건물로 이루어졌다. 이를 ‘채의 나눔’이라하여 한국 주택의 큰 특징으로 꼽는다. 일본만 하더라도 커다란 한 채의 건물 안에 모든 방이 들어가지만, 한국 주택은 여러 채의 다른 성격을 갖는 건물들이 모여서 살림집을 이룬다. 채와 채 사이에는 당연히 마당이 생긴다. 마당은 그 자체로 쓰임도 있지만, 건물과 건물 사이의 관계를 맺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진짜 권세 높았던 큰집들은 이른바 ‘여섯 마당집’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마당이 중심을 이루며, 그보다 훨씬 많은 수십채의 건물들이 마당을 둘러싸고 있었다.
안채의 안방-건넌방, 사랑채의 큰사랑방-작은사랑방과 같이 방들 사이의 관계도 발달했다. 예를 들어 안방은 서쪽에, 건넌방에 동쪽에 위치해야 규범에 맞고 그 사이에는 대청마루가 놓여서 두 방 사이의 프라이버시를 어느 정도 높여주었다. 이러한 과정은 ‘방의 나눔’이라 할 수 있고, ‘채 나눔’과 ‘방 나눔’이 동시에 일어나는 집이 바로 한국집이었다.
현대는 유교적 질서를 거부하는 민주적이고 실용적인 사회다. 따라서 주택 안에 상하 남녀의 구별을 둔다는 것은 정말 우스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과거 한국주택의 전통이었던 ‘채 나눔’과 ‘방 나눔’은 현대 주택에서도 여전히 살아있다. 종교적 사회적 의미는 없어졌다 하더라도, 채와 방이 분화되면서 얻어진 공간적 건축적 아름다움과 감동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아파트의 경우에도 안방-마루-건넌방의 공간적 배열과 관계는 여전히 살아남아 이른바 ‘한국형 아파트’의 평면을 주도한다. 서구의 아파트들은 거실과 침실이 완전히 분리되지만, 한국의 아파트는 거실과 안방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를 이룬다.
최근 ‘전원주택단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일산 신도시에는 많은 수의 단독주택들이 지어졌다. 신세대 풍의 인기 트렌드 드라마의 배경이 되기도 하고, 현 대통령의 사저가 있어서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그러나 이들 주거단지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국적불명의 목조주택들이고, 아니면 산 속 호젓한 곳에나 있어야할 별장풍의 주택이다. 그러나 일산단지는 전원이 아닌 전원주택지다. 옆집과 앞집이 바로 붙어있으며, 도로와 길들로 둘러쌓인 곳이다. 여기에 주변환경과는 관계없이 캐나다풍 영국풍 스위스풍의 잡동사니 주택들이 서로 화려함을 뽐내고 있으니 또 다른 명소(?)를 만들고 말았다.
그러나 이 잡동사니 속에서도 보석같은 몇 개의 주택들이 빛을 발하고 있다. 조병수나 권문성과 같은 신진 건축가들부터 중진들까지 역량있는 건축가들의 ‘작품주택’이다. 이들은 주변의 통상적인 주택들과는 발상부터가 달라 확실히 구별된다. 일산주거지의 상황을 명확히 인식하여 주변 주택들로부터 프라이버시를 확보하면서도 진정한 전원주택의 분위기를 유지한다. 천편일률적인 국화빵 평면을 벗어나 집주인 가족의 구성과 특별한 요구에 맞도록 다양하고 변화있는 내부구조를 만들어준다. 하나하나가 모두 개성있는 작품들이어서 한마디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예외없는 공통점이 있으니 모두 채나눔의 기법을 응용했다는 점이다. 비록 옛집같이 안채와 사랑채가 분리된 것은 아니지만, ㄱ자나 ㄷ자로 길게 구부러진 건물이 안마당을 감싸고 있다. 방의 창문들은 바깥을 향하지 않고 안마당을 향한다. 옆집과는 독립적이며 동시에 집안의 방들 사이에는 시선들이 교류되어, 가족간의 진정한 우애와 화합의 커뮤니케이션을 증진시킨다. 모두 ‘채 나눔’의 전통을 따랐기에 가능한 현대적 소득들이다. 비록 재료와 공법이 달라졌지만, 이런 의미에서 과거에 얻어진 우리 살림집의 건축적 전통은 여전히 현대주택에도 살아남아 있고, 외국의 어떤 주택들보다도 훨씬 우리의 정서와 생활을 행복하게 한다. ((끝))
사진
1-1. 올림픽 선수촌 아파트 내부 – 거실과 안방 사이의 관계 (거실-안방 사이에 달린 한식창호를 넣어서 촬영)
1-2. 남산 한옥촌 중 한집 골라서 안방-대청-건넌방 사이의 관계를 촬영
2-1. 일산의 ㄱ자집 (조병수 설계) 이나, 일산 마두동의 224-12호 주택 (권문성 설계)의 외관 촬영 (안마당을 중심으로 여러 건물이 겹쳐있는 것과 같은 모습을)
2-2. 남산 한옥촌에서 사랑채-안채가 어울어진 모습 / 또는 안마당을 중심으로 건물들이 에워싸고 있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