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억 인구가 넘는 중국이 한 세기 동안의 긴 잠에서 깨어났다. 인구의 1%만 백만장자라 하더라도 1300만 명에 달하는 나라, 2020년에는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고 경제대국을 이미 예약한 나라. 그 거대한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도시가 바로 샹하이(上海)다. 등록인구 1700만, 추정인구 2500만 명에 이르는 샹하이 시민들의 1인당 년 평균 소득은 이미 6,000달러에 육박한다. 10,000달러에 못 미치는 한국과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 개방 20년간 고도 성장을 거듭하여 10배가 넘는 발전이 있었다. 그 급속한 발전을 증명이라도 하듯, 샹하이는 지금 전 도시가 공사판이다. 전 세계 타워크레인의 1/2이 아시아에 있고, 그 1/2이 중국에, 그리고 중국 크레인 1/2이 샹하이에 몰려있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샹하이는 세계 최대의 건설도시가 되었다.
한 세기 전에도 샹하이는 현재와 같은 전성기를 맞았다. 아편전쟁 이후, 중국이 서구 열강의 침략 앞에서 쩔쩔 매고 있을 때, 중국의 자존심을 지키고 구원의 도시로 등장한 곳이 바로 샹하이였다. 큰배들이 오갈 수 있는 강과 바다를 동시에 가지고 있어, 천혜의 지리적 이점을 가진 이 도시는 중국을 대표하는 무역항으로 커나가기 위해 도시 중심부를 영국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에 조계지로 제공했다. 서구 자본과 기술을 유치하기 위해 선진 제국에 온갖 정치적 경제적 특권을 부여하면서 자유무역도시, 개방도시를 만든 것이다. 유럽 각국은 앞 다투어 은행과 호텔을 건립했고, 많은 건물을 지어 자국민들을 이주시킴으로써 중국 속의 유럽을 만들었다. 현재 구도심에는 이들이 남겨 놓은 천여동의 건물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와이탄 거리에는 59개의 서구 양식주의 건물들이 줄지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 거리는 아시아권 최대의 양식건축 집단지구이며, 높은 건축적 가치를 가진 것으로 일본과 한국학자들의 중요한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와이탄의 우람한 석조건물들은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유럽에서 벌어졌던 혼잡스런 여러 건축경향을 모두 받아 들였다. 후기 바로크와 신고전주의, 민족적 낭만주의와 신고딕주의, 비엔나 쎄제션, 암스테르담 학파, 그리고 초보적인 데스틸까지 온갖 양식과 경향이 총집합된 모습이다. 설계는 유럽에서 직접하기도 했고, 샹하이에서 근대적 교육을 받은 중국인 건축가에 의해 진행되기도 했다. 그러나 건축사적으로 손꼽을만한 건축가는 발견하기 어렵다. 그리고 차분히 뜯어보면, 어느 한 건물도 양식적 규범에 충실하지 않음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순수 창작을 위한 치열한 고민도 읽을 수 없다. 적당한 어휘를 동원하고, 유행하는 스타일을 흉내내면서 그 안에 담겨질 상업공간의 용적만 확보한 것들이다. 서구적 자본의 우월함을 외형적 형태를 통해 웅변하고 있다. 유럽건축가에 의한 유럽자본의 건축은 그렇다 치더라도, 중국인 건축가들이 설계한 중국은행 건물마저 덩달아 이들을 따르고 있다.
와이탄(外灘)은 황포강의 서쪽 강변을 따라 형성되었고, 황포강 동쪽은 푸둥(浦東)지구라 하여, 자유 무역과 국제금융을 유치하기 위해 한창 개발 중인 지역이며, 중국 고도 성장의 상징적인 구역이다. 전망탑인 동방명주탑은 그 높이가 세계 3위라고, S.O.M.이 설계한 88층의 하이야트호텔 (金茂빌딩)은 세계에서 3번째로 높은 건물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고 있다. 그 옆에는 수십채 3-40층 고층건물들이 기기묘묘한 형태로 서있고, 앞으로도 계속 건설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푸둥의 자랑인 동방명주탑은 거대한 3알의 진주알을 바늘로 꿴 형상으로 직설적 이미지만 강조된 형태이고, 나머지 고층건물들은 1/400 모형을 그대로 뻥튀기한 것 같은 조야한 건물들이다.
황포강을 사이에 둔 양안(兩岸)에 세워진 건축물들은 비록 한 세기 이상의 시간적 차이가 있지만, 유사한 점이 너무나 많다. 두 곳 모두 당시 구미에서 유행하던 모든 양식과 취향과 기술을 도입하여 지어진 첨단적 지구들이지만, 그 수많은 건축물 속에서 진정성이란 찾아보기 어렵다. 단지 빨리, 우람하게 또는 높이, 크게 지어서 투자한 자본을 회수하고 이익을 남기는 시간을 최대한 줄이려는 상업주의적 논리에만 충실하고 있다. 그 수많은 건물들 가운데 이른바 실험작이나 창작품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가? 오히려 세계 건축계의 현란한 식탁에서 떨어뜨린 부스러기들의 집하장에 가깝다고 보인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한 세기 전에도 그랬듯이, 지금도 이런 외형적 발전을 자랑스러워하고, 나머지 아시아는 샹하이라는 국제 도시를 부러워하고 발전모델로 삼으려 한다.
와이탄의 건축 양식들이 유럽에서는 근대 직전, 또는 초기 근대의 건축이라 하더라도, 샹하이에서는 제국주의 양식이 된다는 것을 그들은 몰랐을까? 푸둥지구의 하이테크 초고층건물들이 국제적 상업주의나 신자유주의와 결합하면 현대의 식민주의 건축이 된다는 것을 아시아는 눈치채지 못하는가? 푸둥을 바라보면서 서울의 여의도와 테헤란로가 연상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신나게 발전하는 샹하이를 여행하면서 서글픈 아시아건축의 운명을 생각한다. 아니, 화려한 발전을 발전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의 처지, 아시아 지식인의 복잡한 심성이 서글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