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일
2001.10.07.
출처
중국의 주거문화
분류
서평

문화적 측면에서 접근할 때, 중국의 주거건축은 매우 매력적인 대상이다. 수십개의 왕조가 교차했던 복잡한 역사와 57개의 민족으로 이루어진 다양한 민족지는 다채로운 지역문화권들을 형성해 왔다. 중국 주거의 유형별 문화지도를 그린다면 좁게는 4가지 유형, 좀 더 세분한다면 26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 기준에 맞추어 한국 주거를 분류한다면 좁게는 1가지, 세분한다면 3-4가지에 지나지 않으니, 중국 주거문화의 다양성과 포괄성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학문적 흥미가 끌릴 수 밖에 없다 하더라도, 그 방대한 양과 다양성에 기가 질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경원의 대상이기도 했다.
손세관 교수의 <중국의 주거문화 – 상,하> 두 권은 이러한 학문적 성역에 과감히 도전한 쾌작이다. 중국인도 시도하기 어려운 중국주거 문화의 양상을 총체적으로 정리했으며, 폭넓은 분석방법을 적용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외부적 관점에서 쓰여진 개설서 정도가 되기 쉬운데, 저자는 그 위험도 예지하고 있는 듯, 4개의 주거유형에 대한 자세하고도 내부적 관찰과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그래서 상,권의 책 이름도 <넓게 본 중국의 주택>과 <깊게 본 중국의 주택>이다.
상권에서는 주거문화의 배경들을 다루고 있다. 지리와 풍토, 주거의 역사, 전통적 공간개념, 민간신앙과 풍수, 가족제도, 그리고 도시 구조까지 광범위한 대상을 포괄적 관점에서 정리했다. 하권에서는 다양한 중국주거의 유형 가운데 대표적이라 생각할 수 있는 4개의 유형 – 북경의 사합원(四合院), 휘주의 천정식(天井式) 주택, 황토 고원의 요동(窯洞), 복건성의 토루(土樓)에 대한 사례연구를 시도했다. 넓고도 깊으니 중국주택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루고, 얻고자 한 야심작이기도 하다.
건축학계의 분류에 따르면, 저자는 동양건축사 전공자가 아니다. 미국에서 서구 학문을 연구했고, 중국주택에 대한 관심도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서 키웠다. 중국에서 공부한 적도 없고, 중국어를 잘 하는 것도 아니니, 학계의 시각에서 본다면 비전공자인 셈이다. 그러나 지난 세기의 전공중심주의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번 저작을 통해 중국건축 또는 주거사 분야의 독보적 위치를 확보했다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미 저자는 <도시주거 형성의 역사>와 <북경의 주택>이라는 기념비적 저서를 출간한 바 있기 때문에 그의 학자적 전문성과 성실성은 더욱 빛나는 것이다.
이번 저작은 현장체험과 조사를 바탕으로 한 연구가 아니라, 중국과 일본, 서구학자들의 기존 연구를 해석하고 정리한 문헌연구의 성격이 강하다. 그렇다고 해서 특정한 기존 연구에 의지하고 있지 않다는 점, 저자 고유의 관점과 기준에 의해 기존 연구성과들이 재정리되었다는 점에서 이 책의 독자성이 있다고 보인다. 저자는 주거문화를 다섯 가지 관점, 즉 사회구조와 가치체계 등 문화론적 관점, 환경조직의 일부로 주거를 파악하는 도시집합론적, 주거의 기본형과 변형에 대한 유형학적, 생활의 구체적 모습들에 관심을 갖는 주거학적, 그리고 구축방법에 대한 기술적 관점을 유지하려 했다.
그러나 이 모든 의도가 충족된 것 같지는 않다. 유형학적 방법이나 주거학적 방법은 구체적이고 방대한 현장조사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번 저작의 성격과는 거리가 있다. 또한 사례연구로 선택한 4가지 형식은 저자의 개인적 관심에 기반하여, 사합원을 제외하면 주로 설계적 흥미를 유발하는 특별형식을 고른 것으로 판단된다. 남방형식으로 중요한 가치를 갖는 고상식 주거들이나 전혀 다른 재료의 석조주택들이 제외된 까닭일 것이다. 굳이 아쉬운 점을 꼽으라면, 기존 연구에 대한 크레딧을 명확히 밝히지 않은 점이다. 여러 학설들, 사진과 도면들에 대한 원전을 생략함으로써, 마치 모두 저자 자신의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그러한 착각이 없더라도 이 책은 충분히 훌륭하며 저자는 충분히 뛰어날 것이다.

김봉렬 약력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공학박사. 영국 AA건축대학원 수료.
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 겸 교학처장. 서울시 문화재위원. 월간 <이상건축> 주간.
저서 : <한국의 건축> <서원건축> <시대를 담는 그릇> <앎과 삶의 공간> <이 땅에 새겨진 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