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철을 맞아 전국에서 몰려든 피서객들이 부산의 바닷가를 가득 메웠다. 주말 해운대에는 70만의 인파가 몰리고 년간 1,500만의 관광객이 부산을 찾는다니, 한국 최대의 관광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름답고 넓은 해안을 가진 천혜의 자연조건에 감사해야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부산을 가꾸어온 부산시민들의 노력도 평가되어야 한다.
되짚어 보면 부산은 관광의 메카 뿐 아니라, 우리나라 대중문화와 여가산업에 크게 기여해온 도시다. 일본에서 수입된 가라오케를 한국식으로 발전시켜 노래방을 발명한 곳은 다름 아닌 광안리의 한 오락장이었다 한다. 술집의 노래반주기쯤으로 발명된 기계를 이용하면서 여러 개의 작은 방들을 마련하고 술을 없앤 노래연습장을 개발했다. 이곳은 전국을 노래방 열풍에 휩싸이게 한 진원지로서, 현재도 전국 노래방 관계자들이 순례하는 노래방의 성지라고 한다.
동래의 한 대형 목욕탕은 목욕에 오락과 휴식, 음식을 결합하여 동네 목욕탕을 가족 단위의 종합위락시설로 격상시켰다. 부산시민 뿐 아니라 외지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은 부산의 명소가 되었다. 이런 원스톱 목욕시설은 전국에 확산되어 대형 사우나 붐을 일으키더니 급기야 한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휴식처라는 찜질방을 낳았다. 노래방이나 찜질방이 얼마나 많은 한국의 가족들과 청소년들을 화합시키고 위안을 주었던가?
그 뿐 아니다. 통기타 생음악을 도입한 해운대 포장마차는 전국의 선술집 분위기를 문화적 수준으로 격상시키는 선도적 역할을 했다. 최근 부산시내 주요 관광지의 밤을 밝혀주는 트럭을 개조한 카페 역시 새로운 부산발 대중문화시설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부산발 문화가 꼭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부산의 발명품들은 주로 소비와 위락시설에 집중되어 있고, 노래방이나 생음악포차와 같이 시설과 시스템에만 치중되어 있다. 놀고 즐기는 위락문화는 자칫 향락산업으로 왜곡될 수 있고, 자체 조정력을 잃으면 부산 특유의 개방성으로 인해 퇴폐산업화 될 위험이 많다. 문화적 하드웨어는 발명했지만, 그 내용을 채우는 컨텐츠를 생산하지 못했다. 노래방에서 불려지는 노래 가운데 부산에서 창작 생산된 곡이 없어서 일반 국민들은 노래방의 원산지가 부산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최근 부산시는 부산비엔날레 등 국제적인 문화행사 개최에 심혈을 쏟고 있다. 이를 위해 수영만에 미술관과 벡스코 등 문화시설을 집중시키고 있고, 대규모 수변공원도 계획 중이라 한다. 부산은 이제 국내용의 위락 대중문화 뿐 아니라, 국제적이고 고급한 문화까지 수용하고 발전시키려 한다. 수영만 단지와 같은 하드웨어 시설들을 마련해야하는 것이 순서일 수 있다. 또한, 부산시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지원해야할 필요도 있다. 노래방이나 사우나와 같은 대중시설은 민간에서 개발하고 보급이 가능하지만, 미술관이나 컨벤션센터는 정부 차원이 아니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가장 성공한 문화행사라고 평가되는 부산영화제의 경우를 보면, 관 주도의 대규모 시설투자가 성공의 필수요건은 아니다. 기존의 민간 영화관들과 도시공간을 잘 활용하여 세계적인 행사를 치를 수 있음을 입증했다. 부산영화제를 성공으로 이끈 원인은 무엇보다 부산시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열광적인 분위기를 만들었고, 관계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세계적 수준의 작품들을 초청 상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노래방과 사우나가 시설과 상업적 시스템 운용으로 성공했다면, 부산영화제는 컨텐츠 확보와 시민들의 참여로 성공했다. 부산은 문화적으로 특유의 개방성과 진취성이란 풍부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도시이다. 지리적으로는 산과 바다로 갇혀있는 입지적 불리함을 안고 있고, 경제적으로는 제조 운송업의 사양화로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 부산만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과 돌파구는 도시적 일상적인 관광 문화산업에 있다고 보인다. 무엇보다도 창의적이고 열성적인 시민들이라는 소중한 자산을 가지고 있다. 한 개인이 자신의 역량을 파악하고 진로를 결정해야 하듯이, 도시 역시 자신의 잠재력을 직시하고 계획을 추진해야 성공할 확률이 높다. 부산시민의 기질과 의식과 역량에 승부를 걸어보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