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일
2002.08.08.
출처
중앙일보
분류
건축론

도시는 생명을 가진 유기체다. 끊임없이 진행되는 도시의 변화가 꼭 건강한 방향으로만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 몸의 피부병 같이 도시의 특정 부분이 낙후되기도 하고, 암세포와 같이 도시 전체를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따라서 부분적인 또는 전면적인 도시 계획을 통해 생명력을 잃어 가는 도시를 재생시키고 재활시키려는 시도도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문제는 도시 개조에 대한 제안들의 적합성과 시의성이다. 광장을 조성하고 공원을 확대하는 것은 도시에 대한 일종의 성형수술이다. 기형의 신체부위를 바로잡기 위한 성형은 도시 전체에 생기를 불어주는 것이지만, 단지 예뻐지기 위해 콧날을 세우는 수술은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어 심사숙고를 요한다. 더 우려할 만한 상황은 노쇠한 신체에 특정 기관만 생생한 장기로 이식한 경우에 발생한다. 예컨대 시청 앞이나 광화문 앞에 보행자 전용광장을 설치했을 때, 서울 도심부에 발생할 교통 체증과 혼잡은 도시 전체의 기능을 마비시킬 수도 있다.
현재의 주된 관심이 경제와 사회문제에서 문화와 환경문제로 옮겨갔다고 해서, 기존의 경제 사회문제들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심각하게 번지고 있는 내과 질환은 외면하고 외형적 성형수술과 다이어트 운동만 한다면 그 환자의 건강을 더욱 악화시키게 된다. 서울의 주택문제, 교통문제, 남북간 격차, 동서지역의 방기 등 점점 더 심각해지는 거대한 난제들이 쌓여있다. 시민광장, 도심공원, 문화벨트 계획이 시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주인의식을 심어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서울 안에서 곪아가고 있는 내과 질병들이 치료되는 것은 아니다.
생명체는 진화하기도 하고 퇴화하기도 한다. 더욱 살만한 서울을 만들기 위한 여러 가지 계획과 제안들에 기대를 걸기도 하지만, 내과질환의 치료를 전제로 한 수술이 되기를 바란다. 아니면 적어도 부분적인 수술을 통해 도시 전체의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합목적적 계획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