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일
1999.05.03.
출처
문화일보
분류
건축론

<A> 아젠다

김진애 (서울포럼 대표)

다양하고 복합적으로 펼쳐질 예측불허의 21세기 사회.
분야간 벽이 허물어지고 분야간의 교차로 창조적 에너지를 이룰 사회,
세계화의 파도 속에서 여러 문화권을 넘나들며 펼쳐질 실무,
정보통신, 공법, 재료, 환경의 첨단기술 경쟁이 드세질 사회,
사람들의 스타일이 다양해진 만큼이나 다양해지는 건축 프로그램,
문화가 다양해진 만큼 다양한 건축 스타일의 요구 등.
과연 어떠한 자질과 소양과 투지를 가진 사람들이
21세기의 건축을 리드할 것인가?

<B> 본문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

만능인, 그러나 전문직으로서의 건축가
건축가는 만능인이다.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는 2,000년 전에 이미 건축가가 갖추어야할 소양을 규정했다.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는 예술적 감수성, 편리함을 설계할 수 있는 인문학적 통찰력, 튼튼함을 계산할 수 있는 공학적 기술이다. 이른바 미․용․강(美用强)이라는 삼위일체설은 건축가에게 다양한 능력을 요구해왔고, 근대사회 이전에는 이 역할을 중세의 사제들이나 정약용과 같은 파워 엘리트들이 담당할 수밖에 없었다.
20세기 건축가들의 모범은 프랑스 건축가 르 꼬르뷔제(1887-1965)였다. 역사와 미래에 대한 사회학적 비젼을 가졌으며, 주택의 공업생산 시스템을 제안할 정도로 공학기술에 정통했고, 동시에 ‘퓨리즘’이라는 유파를 개척했던 뛰어난 예술인이었다. 그러나 이 초능력자의 직업은 화가도 기술자도 아니었고, 역사가나 사회학자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는 건축설계를 통해 돈을 벌었던 직업적 건축가였다.
현대사회에서 건축가는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과 함께 전문직으로 분류된다. 전문직에게는 까다로운 자격요건이 부여된다. 세계무역기구(WTO)나 국제건축가연맹(UIA)은 이들 전문직에 대한 국제 자격기준을 제정하여 모든 나라에 적용하려 한다. 그들은 전통적 삼위일체 능력에 더해서 역사와 인간에 대한 인문사회학적 지식, 자연환경의 재생가능성과 지속성을 위한 환경적 이해, 그리고 자본주의적 경영 기술까지 요구한다.

‘건축슈퍼’ 교육의 파행과 위기
이처럼 건축가가 되기 위한 길은 복잡다난해서 전문적인 교육과 수련없이 불가능하다. 그 까다로운 교육과정을 다른 분야의 교육에 포함시킬 수도 없다. 공과대학에 있자니 인문적 예술적 교육이, 예술대학에 있자니 공학기술이, 경영대학에 넣자니 전문성이 부족해진다. 전국 116개의 4년제 건축 관련학과 가운데, 89%인 104개 학과가 이공대에 속해있다. 건축과가 공대 안에 있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뿐이다. 다른 나라들은 독립된 건축대학이 있던가, 아니면 예술대학이나 인문사회대학에 속하기도 한다. 건축교육의 전문성과 종합성 때문이다.
외국의 건축과들이 전문점이라면, 국내 건축학과들은 수퍼마켙이다. 예전 동네 구멍가게들이 너도나도 ‘○○슈퍼’로 간판을 바꾼 것 같이, 안파는 것 없이 모든 것을 취급하지만 분야별 전문성과 재고가 부족하다. 한국의 건축과들은 건축설계가도 시공기술자도 구조공학자도 도시계획가도 키워낸다. 한학년 평균정원 83.9명에 전임교수 1.8명이 이 모든 분야와 교육을 책임지고 있다. 이 ‘건축슈퍼’의 주인들은 그야말로 ‘수퍼맨’이지만, 배출되는 인력이란 건축교양인에 불과하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지만, 그 어느 것도 잘할 수 없는.
한국적인 건축교육 제도는 드디어 일대 위기를 맞고 있다. 국제기구들이 한국의 교육과 그 교육의 결과로 배출된 건축가들을 인정할 수 없다고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이른바 국제적 인증을 받지 못하면 유학과 해외 취업이 몹시 불리해지며, 외국의 설계에 참여할 자격을 잃게된다. 자칫 국내교육은 국내용으로만 그칠 위험이 있다.

21세기 건축가, 세 갈래 길
제도적 위기 뿐 아니다. 건축을 둘러싼 사회환경은 엄청난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정보통신의 급속한 발달로 누구나 자신의 컴퓨터에서 원자폭탄 제조기술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게 됐다. 하물며 건축이야. 도시계획 도면에서부터 창문의 디테일까지 얼마든지 정보를 구할 수 있는 시대, 대형 할인점에서 재료를 사서 손수 만들 수 있는 조립식 가구와 같이, 누구나 건축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할지 모른다. 더 이상 전문적 지식을 독점할 수 없는 시대에도 과연 건축가라는 전문직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어떤 역할이 가능할까?
제1의 길은 약간의 전문성과 세련성을 가진 충실한 봉사자의 역할이다. 누구나 화장하고 요리할 수 있지만 더 고급의 질을 위해 뷰티샵과 레스토랑을 찾듯, 숙달된 노하우를 가진 설계자를 찾을 것이다. 건축가로서 독선과 오만을 버리고, 고객의 주문과 취향을 존중하여 고객 참여의 친절한 건축이 가능하다. 그러나 자칫 자본주나 권력의 요구에 순응하는 시녀로 전락할 수 있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낼 혁신은 기대하기 어렵다.
제2의 길은 널려진 정보와 자료, 다양한 미디어, 사이버 공간을 소재로 끝없이 새로운 환경을 실험하는 전위 예술적 건축가다. 이때의 ‘창조성’이란 새로이 만드는 능력보다는 다양한 소재들의 조합능력을 의미한다. 기존 건축적 주제를 재해석하는 ‘리메이크 건축’, 흘러간 옛 건축들을 조합하는 ‘샘플링 건축’, 가상 현실의 공간에서 온갖 상상을 구현하는 ‘사이버 건축’, 타 장르를 넘나들며 끝없는 변종을 만들어내는 ‘헤테로 건축’ 등 가능성은 끝이 없다. 그러나 전위는 전위로만 그치기 쉽다. 사회와는 괴리된 건축을 위한 건축일 뿐이다.
제3의 길은 없는가? “나는 디자이너, 너는 시공자, 그들은 소비자” 식의 현재와 같은 분화된 전문직 구조를 고수한다면 건축가의 설 땅은 없어진다. “시공자는 관악기, 기술자는 타악기, 디자이너는 현악기, 소비자는 합창단, 그리고 나는 작곡자” 식의 자리매김이 필요하다. 또한 각 분야를 조정하고 연출하는 지휘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작곡 과정에는 모든 파트의 특성과 의견을 수렴해야하고, 지휘 과정에는 부단한 교육과 조언이 필요하다.
작곡 지휘자로서의 건축가는 총체적 지식인이다. 이론과 실제, 인문학과 공학, 기술과 예술, 전통과 첨단, 한국과 세계, 인공과 자연, 대중과 전문가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가치있는 건축, 행복한 건축, 인간적 건축을 완성시켜나가는 사회적 코디네이터이기도 하다. 이 종합적 건축가는 어떻게 길러지는가? 역시 의지할 곳은 교육이다. 현재와 같은 진열식 구멍가게 교육이 아니라 건축가 양성만을 위한 특성화된 전문점, 또는 반대로 모든 건축 분야를 다루면서도 각 분야가 엄청난 재고와 깊이를 갖는 대형 백화점 교육만이 그 확률을 높여줄 것이다. (끝)

이 글을 위해 인터뷰에 응해준 박흥균 (PCK건축), 김헌 (예다건축), 임재용 (OCA건축) 소장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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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11과 12 / 13과 14는 합성해도 좋습니다.
(12, 14의 그림은 크게, 11, 13의 사람사진은 작게)

11. 20세기 건축가의 표상인 르 꼬르뷔제
12. 르 꼬르뷔제의 인체 과학적 비례이론인 ‘모듈러’ 그림. 수학과 미술, 인체와 건축공간을 통합하려는 이상이었다.
13. 또 다른 거장 건축가 루이스 칸
14. 루이스 칸의 유럽 여행 스케치. 아테네 아크로폴리스라는 역사적 고전에서 자신의 건축 이론을 찾았다.
15. 1919년 바우하우스 선언문 표지그림. 근대 건축교육의 기틀을 마련한 바우하우스는 수공업과 예술, 건축과 미술의 통합교육을 시도하여 별과 같이 빛나는 예술을 추구했다.
16. 바우하우스 수업광경.
17. 건축교육 대안기관으로 설립된 서울건축학교의 1998년 제주도 현장 워크샾 광경.
18. 사이버 건축의 한 예. 젊은 건축가 조택연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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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박스글

함인선 (인우건축 대표)

‘건축가 없는 건축’의 세상이 온다
많은 이들이 앞으로 20/80의 세계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전 인구 중 20%의 노동으로 모든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고, 나머지 80%는 최소한의 주택, 식량배급표 등으로 목숨만 유지하는 세상이 되리라는 것이다. 반면 부의 분배는 80/20이 될 것이다. 실제로 미국 상위 0.5%의 재산은 하위 90%의 총 재산보다 많다.
이는 자동화, 전산화에 의해 기계가 인간 노동을 대체하기 때문이다. 건축이라 하여 예외일 리가 없다. 필자의 사무실을 예로 들면 10년 근속한 직원의 월급은 15배 오른 반면 10년 전에 비해 설계비는 오히려 내렸다. 인력을 기계로 대체하고 싶은 유혹을 떨칠 수 없는 대목이다. 건설 자본이 이를 눈감아 줄 리가 없다. 설계 품수가 적게 드는 시스템 설계, 인력투입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기계화 공법 개발에 엄청난 연구개발비가 투여된다.
일례로 아파트 설계는 거의 완벽하게 전산 설계(CAD)화 되어있다. IMF이후에는 평당 설계비 1만원에라도 하겠다는 설계업체가 수두룩하다. 십 년전과 비교하여 5분의 1 가격이다. 그만큼 사람 손이 필요 없게 되었다는 얘기이다. 심지어 장인의 손때가 보존되어 오던 단독주택과 중소형 건물까지 건설 자본은 눈독을 들이고 있다. 현재로는 수지가 맞지 않는 철골주택에 POSCO가 지극한 애정을 쏟는 것도 장차 주택시장을 독식하려는 원모심려(遠謀深慮)이다.
기성복에 의하여 양복점, 양장점이 줄줄이 도산했듯 건축의 시스템 설계, 대량 생산에 의해 중소 설계업체들의 설자리는 점점 없어진다. 물론 맞춤복 집이 있듯이 여전히 건축공방의 수요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나마의 공방도 재벌 산하 대형 설계사무소들과의 물량싸움에서 번번이 백기를 든다. 잘 알려졌듯이 우리 나라에서 주요한 현상 설계에 당선되기 위한 요건은 실력보다는 로비 능력, 비싼 투시도를 그릴 수 있는 자금력이기 때문이다. 건축 계에도 20/80은 시작되고 있다.
위대한 건축창작의 꿈을 지닌 채 한 해 1만 5천명씩 건축과 졸업생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그 중 0.1%조차 그럴 기회를 얻지 못한다. 그럼에도 학교에서는 공방식 설계교육을 하고있고 설계사무소에서는 도제식 훈련을 하고 있다.
새천년 건축의 직능은 더 이상 예술창작도 고도기술도 아니다. 갈수록 익명화, 물질화되는 건축에 인간의 손길이 계속 남게 하는 것, 건축의 사회적 맥락을 회복시키는 것이 임무이다. 그리고 이는 저마다 스타건축가가 되려는 노력하는 것만으로 될 일이 아니다. 밤무대 가수를 견뎌야 조용필도 될 수 있다는 신화는 자본에게 놀아나는 착취논리일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