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일
1995.07.13.
출처
경상일보
분류
건축론

삼풍백화점 건설에 관련되었던 기성세대 가운데 단 몇명의 의인만이라도 있었더라면. 개발 신드롬에 사로잡혔던 사회의 분위기부터, 국민적 인기에 연연한 정책적 과욕부터, 몇푼의 공사비를 아끼려던 악덕 기업주부터, 부정한 메카니즘에 굴복한 건축가부터, 대충 한탕주의의 시공회사부터, 무너지지만 말아라던 관리자부터,… 뇌물이 당연한 공무원과 시간 때우기의 말단 기능공까지. 어느 한 부분만이라도 제대로 역할을 했다면, 500명의 사망 실종자를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그들을 비판하는 내 자신 역시도 파렴치한 기성세대이다. 철저한 윤리관의 기술인을 교육시키지 못한 죄, 수많은 불법과 부정의 현장을 고발하지 못한 무기력증, 건축인 사회로 하여금 무책임한 집단으로 전락하게 방조한 공범이다. 온 나라가 분노하고, 정치가들이 사과하는 마당에 실제로 책임을 지어야할 인간들은 서로 발뺌하기에 급급하다. 어찌 몇백만, 몇천만원의 뇌물을 먹은 구청장들만의 잘못이겠는가?
사고 후에 기성세대들이 보여 준 파렴치는 더욱 가관이다. 며칠전 중앙일간지에 <건축계 원로와의 대화>에 초청된 원로분 왈, 모든 잘못은 악덕 기업주에 원인이 있고, 설계와 시공 감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원인은 기업주의 자본력과 공무원의 권력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렸고, 그 분이 설계하고 감리한 어느 건물의 예를 들어 – 물론 그 건물은 지나치게 안전하다 – “모름지기 건축이란 이렇게 하는 것이다” 라고 자신을 자랑하기에 바빴다. 건축계의 원로치고는 일말의 자책감이나 반성이 없는 너무나 파렴치한. 삼풍백화점의 설계자가 바로 그 원로교수 겸 건축가, 바로 자신의 직계 제자임을 잊고 있었다.
반면 극적으로 구출된 두 명의 신세대 – 최명석군과 유지환양 -의 용기와 낙천성, 대담함은 국민 모두에게 큰 감명과 용기를 주었다. 물론 이들에게 달라 붙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려한 기성세대의 파렴치와 대조를 이루며. 구조대를 젖히고 인터뷰를 하려는 언론사들, 구조 하루만에 쇄도한 CF 출연 제의와 영화 제작 제의들. 구체적인 액수마저 제의되었다니, 돈이라면 영혼도 팔아먹겠다는 천민자본주의 상업주의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러한 기성세대의 탐욕과 몰염치를 최군은 점잖게 꾸짖고 있다. “수많은 희생자 가족들이 가슴에 한을 품은채 살아갈텐데, 내가 무슨 영웅이라고 선전과 영화로 돈을 벌 수 있나요? 친구들하고 맥주 한잔 마시고 악몽의 순간을 잊고, 새롭게 태어난 생명 열심히 사는 것으로 행복합니다.” 콘크리트 더미에 깔려있으면서도 구조대 오빠들을 향해 “아직 어려서 데이트도 못할텐데요” 농담을 던진 유양의 순수함도 신선하다. 그들은 어느 누구를 원망하지 않고, 보상을 바라지도 않으며, 비극의 체험을 인생의 교훈으로 삼을 줄 아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 이 사회를 부정과 악행으로 부터 구원해 줄 의인은 바로 그들, X-세대다. 기성세대 어느 누가 그들을 유약하고 향락적이고 무책임하다고 비난할 수 있는가. 신세대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