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일
1996.12.05.
출처
건축가지
분류
건축론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제 곧 동양권이 세계를 주도하리라는 희망에 부풀었었다. 상명하달의 위계질서에 충실한 일본주식회사의 경이로운 경제력이 미국을 압도할 것 같았고, 가족주의 경영으로 성공한 아시아의 용들이 곧 선진대국이 되어 세계의 경제와 문화를 이끌어나갈 것은 명확관화한 사실이었다. 한국도 덩달아 장미빛 희망에 가득했고, 동양권 국가의 이러한 성공의 핵심은 곧 유교문화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졌다. 특히 가부장적 가족주의, 가족의 발전은 곧 나의 발전이 된다는 공동체적 의식은 훌륭한 하나의 가치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21세기를 바라보는 이 시점에서 동양은 더 이상 세계의 주도권을 갖지 못한다. 전세계를 인터넷의 열풍으로 몰아넣은 정보통신 기술의 급속한 확산은 분명 미국의 일방적인 주도 아래 이루어지고, 유럽인들이 만들어왔던 기계적 산업시대의 패러다임을 그들 스스로 폐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추상적 관념적인 차원에서만 논의돼 왔던 포스트 모더니즘의 상황이 일상의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전 지구촌이 하나의 네트웤으로 연결되는 사회, 경제적 문화적 차원에서도 국내 시장만으로는 더 이상 생존해 나갈 수 없는 열린 국제사회가 되어버렸다. 폐쇄된 사회에서 사회유지의 수단이 되었던 가족주의적 경쟁방식은 이제 더 이상 생존의 방법이 될 수 없다. 건축계 최대의 가족주의는 관행화되다 시피한 학벌과 학연주의다. 인근 미술계 만큼 심각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일이 벌어질 때마다 ‘○씨네, ○씨네, ○씨네’ 하는 집단 이기주의가 꿈틀댄다. 단체장은 몇학교 출신 순서로 순환되고, 중요한 현상설계나 공모전이 있을 때마다 ‘어느 대학 교수가 심사위원이며, 어느 대학 출신이 당선되었는가’로 촉각을 곤두세운다. 건축학계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특정 대학 출신의 선임교수가 있는 학교에 다른 대학 출신자가 후임교수로 들어가면 그 자체가 학계의 화제가 될 정도다. 학연적 집단의 특징은 선배와 후배, 스승과 제자 사이의 철저한 위계 질서와 서열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풍토에서는 실력보다는 이른바 ‘인간성’이 평가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비판적인 성품은 경망스러운 철부지일 뿐이며, 얌전하고 고분고분한 것이 지선의 미덕이 된다. 순종형 인물이 출세하여 학연집단의 리더가 되고, 스승과 선배로부터 물려받은 노우하우를 바탕으로 학연 가문주의를 확대 재생산하게 된다.
폐쇄적 가족주의는 당연히 세대별, 연령별 집단화로 이어진다. 각 가문의 원로들이 모여 가문별 지분을 조절하며, 원로층의 의견이 곧 건축계 전체의 방향이 된다. 중년층들은 차기의 집권을 위해 은인자중하면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미치며, 비교적 가문별 교류가 활발한 소장층들 역시 가문의 비밀은 간직한 채 스트레스 발산용의 모임을 가지게 된다. 마치 중세적 씨족구조에서 파생된 ‘동갑계’를 연상케한다.
90년대에 새롭게 나타난 가족주의의 양상은 진짜 ‘건축가족’의 출현이다. 원로층의 2세들 가운데 다수가 건축계에 투신함으로써, 아니면 2세의 결혼을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건축패밀리들이다. 가업을 계승하고 같은 직업끼리의 결혼과 유대는 극히 자연스러운 인간사다. 문제가 되는 것은 모든 정보의 공급과 사용을 형성된 가족 내부에만 한정하려는 자급자족적 태도다. ‘건축가족’이 이러한 배타적 이기주의에 오염된다면, 그 역기능은 학연 가문주의에 비할 바가 아니다. 혈연적 가족주의에서 내부적인 비판이란 기대할 수 없고, 객관적인 시각을 갖기 조차 힘들어진다. 패밀리의 이익을 위해서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정당화할 위험성이 있다. 패밀리의 수익이 곧 개인의 수익으로 정확하게 배분되기 때문이다.
혈족 간의 헌신과 사랑, 선후배의 우애와 도움, 사제간의 신뢰와 지도 등 가족주의가 갖는 순기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또한 이미 형성되어 있는 인간적 관계는 더욱 소중한 자산으로 가꾸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순수한 가족적 관계가 배타적이고 집단이기주의로 흐를 경우, 단기적으로는 가족의 성장을 가져올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모두의 공멸을 초래할 것이다. 전체적인 안목과 대안보다는, 누가 어느 단체 혹은 어느 프로젝트의 주도권을 쥐는가에 관심을 기울이는 한, 건축계 전체의 발전과 국제적인 경쟁력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가족주의의 역기능을 우려하는 까닭은 그 당사자 집단들이 한국 건축계의 핵심적 위치를 점하고 있기 떄문이다. 중심이 바뀌지 않는 한 전체는 바뀌지 않는다. 세계는 이미 수평적 교류와 정보의 공유화를 통한 경쟁체제로 재편되고 있다.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유교적 이념을 넘어서 보편적이고 개방적인 가치체계로의 전환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