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일
2001.01.01.
출처
이상건축
분류
건축론

21세기를 여는 2001년, 새해 아침. “대망의 새해가 밝았습니다”라고 인사하고 싶지만, 한국 사회는 우울한 한 해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다시 고조되는 국가적 경제 위기를 맞고도 정치계는 정쟁과 집안 싸움으로 파행만 일삼으니 사회적 불안과 방황이 증폭될 뿐, 어떤 희망이나 비젼을 찾을 수 없다. 탈출구 없는 위기이기 때문에 더욱 절망적이다.
건설 경기는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시공회사의 대명사요,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대주주였던 현대건설마저도 부도와 퇴출의 벼랑에 서 있다. 현대건설의 위기는 물론 방만한 경영과 과도한 부채 등 자업자득의 측면이 크지만, 사회 경제 전반의 구조적 위기라는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70년대 이후, 건설업이 국가 GN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줄곧 22%정도였다. 가히 국가의 기간 산업으로 큰소리칠만했다. 그러나 선진국과 같이 안정된 사회의 건설업 비중은 8%정도라 한다. 정부와 학계에서 내놓고 말을 못해 그렇지, 30년간 한국의 건설경기는 이상 과열경기였고 현재의 불황이 오히려 정상이라는 것이다.
건설물량에 목을 메고 있는 설계업계는 더 말할 나위 없다. 풍문이기는 하지만, 5000명에 달하는 올해 건축과 졸업예정자 가운데 설계사무소에 취직한 인원은 전국을 통틀어 30명 이내라는 비공식 통계가 떠돈다. 시공회사 취업자도 전무에 가깝다고 풍문은 아울러 전한다. 결코 사실이 아니었으면 좋으련만, 이미 폐업했거나 개점휴업 상태의 사무소들이 부지기수니 풍문이 그럴법하게 들린다. IMF 관리체제가 시작되던 1997년, 전국의 대학원들은 이상한 호황을 맞았다. 취업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2년 후에는 좀 더 상황이 나아질 것을 기대했던 졸업생들이 대학원에 진학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3년이 지나도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고, 많은 대학원들에 정원미달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내년에 대한 희망은 물론, 2-3년 후에 대한 낙관마저 사라진 처절한 현실이다.
사태가 이처럼 심각해지면서, 우려할만한 집단 아노미 현상의 조짐이 나타난다. 우선 기성세대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그들의 기득권을 원망하는 양상이 나타난다. 왜 기존의 명망있는 건축가들이나 선배들을 멸시하는 현상이 젊은 세대들에게 팽배해 있는가? 기성세대는 너무나 개인적이라는 것이다. 자신들의 고귀한 건축적 이상을 위해 노력할 뿐, 큰 물량을 수주해서 한 명이라도 더 직원을 채용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당장 일자리가 없는 당사자들의 절실한 심정을 이해한다. 그리고 기성세대에게 일말의 책임도 있다. 그러나 이 상황은 천박한 설계와 부정과 협잡으로, 그래서 전반적인 건축의 질을 떨어뜨리고 사리사욕을 채워온 부도덕한 기성세대가 자초한 것이다. 자신의 건축을 위해 꾿꾿하게 한 길을 걷는 소수의 건축가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숨겨진 거대한 부정과 죄악에는 눈감은 채, 드러난 사소한 결점만을 물어뜯는 제살 깍아 먹기에 지나지 않는다. 온갖 협잡과 뇌물이 판치는 추악한 현실 속에서 그나마 자신의 순수한 이상을 유지하려는 그들을 존경하지는 못할 지라도, 최소한 보호해야할 의무가 후진들에게 있다.
이 처참한 현실 속에서 개인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여러 갈래의 노력들이 나타나게 된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구조적 원인을 찾아내어 그 구조를 개선하려는 노력이다. 그 책임은 물론 건축계의 공식 단체들의 몫이다. 큰 시야를 가지고 인력의 재배치부터, 산업구조의 개선노력, 각종 제도의 정비를 통해 일자리를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어떤 단체나 협회도 조직도 노력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소아적 권력과 이익에만 관심을 둘 뿐이다. 제도적, 구조적 개선의 비전이 전혀 보이지 않는 현실은, 그래서 더욱 비관적이다.
구조적 개선은 개인의 힘으로, 특히 아무런 힘이 없는 사회적 초년생의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렇다고 제도의 탓만 하면서 개인의 생존을 포기할 수는 없다. 제한된 상황 속에서도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나라도 살자’고 왜곡된 길을 선택해서는 안된다. 경제적 어려움을 핑계로, 상대를 헐뜯으면서 로비와 뇌물로 경쟁에서 살아남는 추악한 기성세대들을 비판해오지 않았는가? 개인적 명성을 위해 주변의 소중한 노력들을 짓밟고, 온갖 독설과 편협한 비평으로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려는 지식인들을 경계하지 않았던가? 부정한 방법으로 취업을 꾀한다거나, 일확천금의 투기에 젊음을 소진한다거나, 모두를 부정하면서 자신을 알리려는 상극적 처신. 기성세대의 일그러진 가면을 다시 쓰려는가?
공자님 말씀 같지만, 세계를 투명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자신의 내공을 쌓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안된다. 젊은 시절의 1-2년 고생은 앞으로의 수십년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건강한 정신과 탄탄한 실력을 갖춘 이들만 세상에서 선택한다. 세상이 비록 어리숙해 보일지라도, 사실은 무척 까다롭고 정확하기 때문이다. 물론 비정상적 방법으로 세속적 성공에 도달할 수도 있겠지만, 그 성공의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 제도나 구조 역시 개인들의 노력과 실력과 올바른 가치관이 쌓이고 쌓여 고쳐질 수 있는 문제다. 타율적 구원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자성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