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열면 정갈한 앞마당에 처마에서 떨어지는 깊은 그림자가 드리우고, 한바탕 비라도 내리면 후드득하는 빗소리와 함께 뜰 안의 화초가 촉촉이 젖어가는 집, 무더운 여름날 대청마루에 큰 대(大)자로 누워 낮잠이라도 잘 수 있는 그런 집에 살고 싶다.
이 땅에 근대화가 시작된 지 한 세기가 넘는 동안, 한옥에 대한 인기도가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바로 요즘 몇 년간이다. 이미 사라질 대로 다 사라져 이제 종족 보존 상태에 이른 한옥의 운명이지만, 비록 최근의 관심조차 극소수 문화인이나 상류층의 여유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뇌사 상태의 중병에서 깨어나 회복의 가능성을 조금이나 보이고 있어서 큰 다행이다. 그러나 왜 한옥에 살고 싶은 것일까? 잊혀진 과거에 대한 낭만적 향수일까?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라는 한국적 애국심일까? 아니면 호사가 취미의 일시적 유행인가?
주택은 인간의 삶을 담는 그릇이다. 그렇다면 한옥은 한국인의 삶을 담은 집이다. 삶의 모습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옥은 불변의 고정된 모형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적응하는 살아있는 생명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옥은 조선시대의 삶의 모습, 그것도 흔히는 19~20세기 해방 전이라는 비교적 가까운 과거의 모습을 담았던 집이다. 주선시대의 한옥은 남녀유별에 의해 안채와 사랑채가 나뉘고, 상하구별에 의해 살림채와 행랑채로 나뉜다. 그러나 고려시대의 한옥은 사뭇 모습이 달랐다. 주인부부는 늘 하나의 침실에서 같이 잤으며, 안채는 주인들의 생활공간이며 바깥채는 손님들을 위한 접대공간이었다.
흔히 한옥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온돌방이다. 온돌이야 말로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민족만이 창안하고 사용해왔던 가장 효율적이고 위생적인 난방시설이라 자랑한다. 물론 자랑할만한 온돌이다. 그러나 전국에 걸쳐 보편적으로 보급된 것은 17세기 경이라 추정한다. 심지어 제주도에는 19세기까지 온돌이 사용되지 않았다. 적어도 고려시대의 상류층들은 온돌을 사용하지 않았다. 신발을 신고 방안에 들어왔으며, 의자에 앉아 생활했으며 침상을 깔고 잠을 잤다. 온돌이 없다고 고려시대의 주택은 한옥이 아닐까? 아니다. 고려시대에는 고려적 한옥이, 조선시대에는 조선적 한옥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20세기에도, 21세기에도 한옥은 존재할 것이다. 그렇다고 현대 한국인의 대다수가 거주하는 아파트도 현대적 한옥의 하나일까?
가족제도가 변하고, 생활양식이 바뀌고, 새로운 재료와 기술이 출현했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한옥이라면 변하지 않는 내용을 가지고 있어야한다. 이 시대에 생활에 불편하기까지 하는 한옥을 굳이 찾는 이유는 아파트나 주상복합건물이 주지 못하는 정신적이고 정서적인 풍족함을 한옥에서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계절과 자연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고, 아늑한 마당에서 풍요로운 여유를 즐기고, 환경친화적인 목조 구조체의 틀 속에서 차분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집을 한옥이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 시대의 한옥이란 지극히 정신적인 집이라 할 수 있다.
우선 한옥은 여유가 있는 집이다. 아무리 작은 한옥이라도 마당을 갖고 있다. 아파트 문화가 저지른 문제 중에 하나가 이른바 ‘전용면적’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다. 전용면적의 크기대로 주택 가격이 매겨지고, 한 평의 실내면적이라도 더 확보하는 것이 부유하고 편리한 삶을 보장한다는 관념이 은연중에 자리 잡았다. 그래서 모든 발코니를 막아 방을 확장하고, 심지어 복도의 전실까지 내부공간으로 바꾼다. 이런 식의 생각이라면 30~40평의 좁은 땅에 마당까지 둔다는 것은 매우 비실용적인 낭비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당의 지붕을 덮어 실내 홀로 바꾸기도 하지만, 마당이 사라지는 순간 한옥 역시 사라지고 만다. 마당이 있어야 좁은 방들이 보상을 받는다. 한옥의 좁은 방들은 창을 여는 순간 넓은 마당으로 확장된다. 한 방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마당에 면한 모든 방에서 공통적인 효과를 거둔다. 그런 면에서 안마당을 가진 한옥은 공간적으로 가장 여유가 있고 경제적인 집이 된다.
흔히 한옥을 “온돌방과 마루를 공유하는 집”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온돌과 마루는 극히 상반되는 시설들이다. 온돌은 추운 북쪽지방에서 발달하여 불을 좋아하며 가급적 지면에 가까울수록 효율적이다. 반면 마루는 더운 남쪽 해양지대에서 발달하여 땅 위에서 높을 수록 시원해지며 불에 매우 취약한 시설이다. 이 극단적인 두 시설물이 바로 옆에 나란히 붙어있는 집이야말로 한국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위대한 성취이다. 그런데 마루는 여름 한철 밖에 소용이 없는 공간이며 개인적인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개방적인 공간이다. 그래서 한 때 마루를 걷어내고 온돌방으로 바꾸는 집들도 있었다. 그러나 별 필요가 없어 보이는 마루를 없애버리는 순간, 한옥의 여유는 사라지고 만다. 모두가 비좁은 온돌방들만 연속되어 마치 싸구려 여인숙같이 조악한 집이 된다. 비울수록 여유가 생기는 묘한 집이 바로 한옥이기 때문이다.
한옥은 환경과 함께 사는 집이다. 한옥을 이루는 재료들 -나무, 돌, 흙, 종이-은 원래 자연을 물리적으로 가공하여 얻은 것들이다. 비록 인공물을 이루고 있지만, 자연물의 성격을 그대로 유지한다. 더운 여름에는 약간 부풀어 오르고, 건조한 겨울에는 줄어든다. 그래서 재료의 성질부터 자연 환경과 같이 호흡을 한다. 큰 판유리가 발명되어 건축물에 적극 쓰여지기 전, 다시 말해서 산업사회 이전에는, 전 세계 모든 주택 가운데 한옥이 가장 밝고 위생적인 집이었다. 특히 나무라고 하는 재료는 건축 재료 가운데 유일한 생명체였다. 식물의 생명이란 죽었다고 끊어지지 않는다. 마치 살아있는 나무와 같이 기둥은 틀어지고 서까래는 처지며 세월이 지나면 썩기도 한다. 그래서 한옥은 계속 수리하고 손을 보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지속적인 보살핌을 통해서 인간과 집은 하나가 되어가며 마치 가족들의 외투와 같이 완벽한 주거 환경을 이루어간다. 거주자들은 한옥의 몸을 보살피지만, 한옥은 반대로 거주자들에게 웬만한 추위에는 감기에도 안 걸릴 건강을 주며, 자연환경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정서적인 풍요로움을 준다. 전원주택을 찾아 굳이 도시 바깥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 도시 속의 한옥에서도 전원생활을 충분히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한옥은 기품 있는 삶을 가능하게 한다. 아버지가 아들을 만나려면 신발을 신고 마당을 가로질러 아들방의 문을 열어야한다. 그 사이에 아들에게 할말을 생각하고 전해줄 사랑을 가다듬을 수 있다. 가족간의 대화란 이런 공간적 체험에서 자연스레 발생한다. 딸이 안방에 들어가려면 대청을 건너가며 삐걱거리는 발소리를 내고 방문 앞에서 부모를 부르기도 한다. 프라이버시는 물론 가족 간의 예의도 절로 생겨날 것이다.
한옥은 물건을 쌓아 과시할 수 있는 집이 아니다. 가구를 설치할수록 집안은 좁아지고 한옥의 실체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의 가구를 놓더라도 여러모로 심사숙고해야하고 불필요한 물건과 가구는 치워버려야 한다. 하얀 벽면 위에 그림 한점도 생각 없이 걸기 어렵다. 무엇을 소유하고 감상하려면 그만큼 깊은 고려가 앞서야하는 집이다. 그러면서 넓어지고 풍요로워지는 것이 있다. 바로 정신적인 깊이와 삶의 존엄함이다. 비울수록 채워지고 나눌수록 커지는 묘한 집이 한옥이다.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고, 조금만 천천히 살고, 눈에 보이는 소유물에 대한 욕심을 덜어낸다면 한옥은 더없이 넓고, 쾌적하고, 가족적이며 풍요로운 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