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상사에게 칭찬이라도 받으면 기가 살고, 아랫사람에게 푸대접을 받으면 기가 막힌다. 기가 살면 온몸의 기운에 강해져 건강해지고, 계속 기가 막히면 울화병이 도져 몸을 망치게 된다. 기가 쇠해지는 병이 감기(感氣)이며, 감기는 만병의 근원이다. 한의학에서는 인체의 건강과 질병을 기의 흐름 여부로 판별하며, 기가 막힌 혈을 찾아서 침을 놓아 막힌 기를 흐르게 해야 질병이 치료된다고 봤다.
동양사상에서는 기의 존재가 인체 뿐 아니라 만물의 소생과 변화를 일으키는 근원으로 여겨왔다. 산과 강과 같은 자연환경을 해석하는 거대 이론인 풍수지리설은 이러한 생기설(生氣說)을 바탕으로 형성되었다. 하늘에는 천기(天氣)가 있고 땅에는 지기(地氣)가 있다. 천기와 지기는 모든 자연물을 변화시키는 근원인데, 인간도 예외가 아니어서 자연의 기를 받으면 건강하고 부유해지고, 기를 빼앗기면 쇠약하고 가난해진다. 천기는 바람을 타고 이동하며, 지기는 흐르는 물을 따라 움직인다. 따라서 천기와 지기를 얻으려면 바람과 물의 흐름을 잘 이용해야하고, 바람을 잡으려면 산맥과 강 등 지형의 생김새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천기와 지기는 대지의 한점에서 서로 소통하는데, 바로 그 점이 땅의 혈이다. 혈에 집을 지으면 자연의 기가 쌓여서 결국 집주인의 기를 보강해준다. 그런 땅이 바로 명당이다. 이처럼 풍수의 원리는 간단하고, 좋은 집의 원리도 간단하다.
명당 터를 잡았다고 좋은 집이 되는 건 아니다. 집의 구조 역시 기가 쌓일 수 있도록 口자형으로 건물을 배치한다. 앞에 놓이는 사랑채와 뒤의 안채 사이에 비어있는 마당이 만들어지는데, 이곳이 다시 집안의 명당이 되어 기가 쌓이게 된다. 서양이나 일본집 같이 한 동만 달랑 들어서면 기가 쌓이기보다 앞뒤로 다 흩어져버리게 된다.
기의 존재를 믿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한옥은 자연환기 장치가 완벽한 건물이고 공기가 고여 있지 않고 흐른다는 사실만으로도 건강한 집이라 할 수 있다. 한옥은 공간 구조상, 내부의 공기와 외부의 공기가 서로 순환할 수 있도록 세심한 환기장치가 되어있다. 한옥의 방들은 마루와 온돌로 구성되는데, 이 둘은 서로 상반되는 성질을 가진다. 온돌방에 불을 지피면 바닥이 달구어져 뜨거워지지만, 불이 꺼지면 서서히 식어서 차가와진다. 반면 마루는 나무로 만들고, 나무는 돌에 비해 열전도율이 낮기 때문에 비교적 일정한 온도를 유지한다. 온돌방과 그 옆의 마루는 항상 서로 다른 온도의 차이를 가지게 된다. 보통 마루와 온돌방 사이에는 한지를 바른 문이나 벽으로 나뉘어 지는데, 한지는 양쪽의 공기가 서로 통하는 숨쉬는 재료이다. 따라서 문을 열지 않아도 온도가 높은 방에서 낮은 곳으로 공기가 흐르게 되어 자연적인 환기가 일어난다.
온돌방 안에서도 공기는 끊임없이 흐르게 된다. 전통적인 온돌방에는 아랫목과 윗목의 차이가 뚜렷하다. 불을 지피는 아궁이 쪽이 아랫목이 되어 윗목보다 바닥 온도가 높게 된다. 높은 아랫목 쪽에서 따뜻해진 공기는 상대적으로 차가운 윗목 쪽으로 이동을 하게 된다. 한 방안에서 온도 차이에 의한 대류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한국의 아파트 난방방식이 거의 다 바닥에 온수 파이프를 까는 바닥판 난방방식으로 바뀐 것은 여러모로 환영할 일이다. 가장 열효율이 높은 방식이며 이불을 깔고 자는 취침문화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온수파이프를 방바닥 전체에 균일하게 설치하기 때문에 바닥 모든 점의 온도가 동일하게 된다. 그러면 방 안의 대류는 일어나지 않고 공기는 고여 있게 된다. 아파트 감기와 호흡질환의 원인이다.
한옥에 사용되는 재료는 나무와 돌, 그리고 흙이다. 가장 인공적인 것으로 문이나 창호에 바르는 한지를 들 수 있는데, 한지 역시 나무를 삶아 섬유질만 추출한 자연재료이다. 한옥의 모든 재료는 자연에서 추출된 자연적인 재료이다. 반면 현대건축에 쓰이는 콘크리트와 철, 유리 등은 모두 공장에서 만들어진 인공재료이다. 자연재료의 단점으로 인공재료에 비해 수명이 짧고 자주 변형되는 점을 들고 있다. 그러나 그런 단점이야 말로 자연재료가 가지고 있는 최대의 장점이다. 인간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수명을 다하면 죽는 것과 마찬가지로, 변화하는 자연재료는 한마디로 생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옥의 주재료가 되는 나무야 말로 한때 생명을 가졌던 식물이며, 건축 재료가 되어서도 그 생명은 계속된다. 무리한 힘이 가해지면 휘어지기도 하고, 숨을 쉬면서 공기와 수분을 흡수했다가 내뿜기도 한다. 건강이란 살아있는 생명체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며, 자연재료 최고의 장점인 생명력은 바로 건강한 주생활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현대의 인공적 재료들은 내구성이나 안정성, 밀폐성 등에서 전통적인 자연재료에 비할 수 없게 우수한 성능을 지니고 있다. 유리창 한 장으로 초고층 건물의 거대한 벽체를 지지하고, 뜨겁고 차가운 외부와는 관계없이 완벽한 인공 냉난방으로 늘 일정한 실내 온도를 보장한다. 외기와 옆방의 공기를 완벽히 차단하기 때문이다. 쾌적한 온도는 얻기 위해 자연적인 환기를 포기하게 된다. 고여 있는 공기는 생명을 잃은 것이며, 기가 막힌 것이다. 이런 환경은 당연히 건강을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
건강을 위한 최고의 방법은 운동이라 한다.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운동부족에 빠져 건강을 잃는 까닭은 무엇일까. 귀찮고 바쁘기 때문이다. 운동은 일정한 시간적 육체적 고통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기가 흐르고 숨을 쉬는 건축이 좋은 건축이요 건강한 건축이라는 건 상식에 속한다. 그럼에도 현대건축은 이를 회피한다. 여름에도 긴팔정장을 입고, 겨울에도 런닝셔츠 만으로 지내고 싶기 때문이다. 건강을 위해 운동의 고통을 즐겨야 하듯이, 건강한 집을 가지고 싶으면 숨쉬기의 불편함을 행복으로 여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