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의 지붕에는 처마가 달린다. 처마는 원래 벽면의 나무기둥을 비로부터 보호하려는 목적과 직사광선이 곧바로 실내에 쪼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처마 밑에 묘한 공간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지붕은 덮여있지만 벽체는 없고, 외부와 내부의 경계에 위치해 안도 바깥도 아닌 모호한 성격의 공간을 만든다. 이를 반내부 혹은 반외부 공간이라 부른다. 처마공간은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혹은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과정에서 하나의 공간을 더 거치게 만든다. 이를 건축학에서는 공간의 겹 (spatial layer)이라 부르고 매우 고급의 공간적 구성으로 평가한다. 껍질을 벗기면 바로 속살이 나오는 바나나는 서양집의 구조고, 처마가 있는 동양집은 벗겨도 또 한 겹이 나오는 양파에 비유할까? 벽면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조각적으로 서있는 한옥의 고풍스런 멋은 바로 처마가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아름다움이다.
중국이나 일본의 건축에도 처마가 달리지만, 한옥의 처마선이야 말로 우리 심성에 가장 잘 맞는 아름다움을 준다. 직선인 듯 곡선이며,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하늘을 향해 들린 처마선의 모습은 무거운 지붕의 무게를 가볍게 보이도록 만들어 준다. 만약 처마선이 수평선을 이룬다면, 사람들의 눈에는 지붕의 무게 때문에 처마 양끝이 땅으로 처져보이는 착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처마선 모양의 차이로 동양 삼국의 건축을 구별할 수도 있다. 중국의 처마는 짧고 직선적이거나 배머리의 용골과 같이 과장되게 휘어져 있다. 반면 일본의 처마는 길고 직선적이다. 비약한다면 세 나라의 민족성에 비유되기도 한다.
한옥의 처마와 하늘과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면, 그것은 하늘을 향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옥의 지붕은 앞에서만 들려있는 것은 아니다. 지붕면을 옆에서 보면 경사면이 직선이 아님을 금새 알아볼 수 있다. 경사면은 안으로 오목하게 파져있다. 또 한국지붕의 처마를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역시 안쪽으로 오목하게 파져있음도 발견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한국의 처마선은 위아래 앞뒤 좌우의 세 방향에서 휘어진 곡선들이 만나 이루어진 결과적인 선이다. 고도의 기술이 없으면 불가능한 선이다.
한옥의 바깥 모양을 특징짓는 것은 무엇보다 중후하면서도 날렵한 기와지붕이다. 그 아름다운 선은 하나 만으로 독립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지붕들이 겹쳐지는 중첩된 선들이다. 강릉에 있는 대저택 선교장은 그 집합적 아름다움을 잘 보여준다. 이 커다란 장원은 매우 다양한 여러 채의 건물들로 이루어지고, 각 건물의 성격에 잘 어울리는 모양의 지붕들을 가지고 있다. 공부하고 책들을 보관하는 열화당은 당당하고 엄격한 지붕을 가지며, 그 앞면에 이국적인 차양을 덧붙였다. 집주인의 진취적인 성향을 잘 나타내는 지붕이다. 경치를 즐기기 위한 활래정은 날렵하고 장식적인 지붕을, 안주인이 기거하는 안채는 정숙하고 단정한 모양의 지붕을 갖는다. 이처럼 다양한 지붕의 모습들은 길고 직선적이며 중성적인 행랑채의 지붕으로 통일화된다. 다양하되 난잡하지 않고, 개성적이면서 잘 조화되는 집합적 아름다움이야 말로 한옥이 보여주는 최고의 미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