卽興性’의 멋은 전통적인 한국예술 전반에 흐르는 특징이다. 음악으로 치자면 정해진 악보나 약속없이 연주자의 기분과 마음에 따라 연주되는 시나위를 들 수 있고, 畵法을 무시하고 뛰어넘어 그리는 文人畵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예술의 분위기는 비규범적이라는 면에서 ‘自然美’라 불려지기도 하고, 예술가 혹은 장인들의 재량과 개성이 발휘된다는 면에서 ‘任意的인 멋’이라고도 불려진다.
건축에도 즉흥적 자연적인 멋은 여실히 나타난다. 한국 건축물을 연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형태는 날렵하게 휘어진 처마와 지붕의 곡선미다. 중국과 일본의 건축 처마선이 수평적인 직선에 가까운 반면, 한국의 처마선은 일정한 규칙이나 공식없이 휘어져 하늘로 향한다. 그야말로 지붕을 만드는 木手 마음대로 곡선을 잡는다.
비단 지붕 뿐이 아니다. 조금 더 큰 시야로 본다면, 경북 영주의 부석사와 같이 여러 동으로 이루어지는 사찰이나 주택의 경우, 건물과 건물 사이의 간격이 평행이나 직각으로 만나지 않는다. 이른바 ‘기하학적 배치’ 기법은 한국 건축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이 건물과 저 건물이 서로 어긋나고 비틀린 채로 배열된다. 古代로 올라갈수록 오히려 건물들은 평행과 직각을 정확하게 맞추는 기하학적으로 배치되고, 오히려 近世로 내려올수록 기하학적 규범을 깨뜨리고 있기 때문에, 건축술이나 측량기술이 부족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단지 꼭 미리 정해진 규칙과 규범을 따를 필요를 느끼지 않았고, 匠人(master)들의 의도와 감각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화를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즉흥적 멋’ 속에는 일정한 법칙이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건축물은 무엇보다도 견고해야 한다. 따라서 목수들은 건물을 짓기 전에 무거운 지붕의 荷重을 어떻게 견디도록 부재들을 설계할 것인가, 폭풍이나 지진에 견디도록 기둥을 세울 것인가를 예측한다. 이를 ‘構造的 安定性’이라 부른다.
벽돌이나 콘크리트 건물의 경우에는 수학적 계산에 따라 기둥의 크기나 바닥의 두께를 거의 정확하게 예측하고 공사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건축은 木材를 주된 재료로 삼았다. 건축 재료 가운데 목재는 거의 유일하게 살아있는 생명체를 잘라 사용하는 재료다. 따라서 광물질인 흙이나 시멘트나 철제와는 달리 생명체가 가지는 특성을 유지하고 있다. 나무에는 충격을 가하면 부러지기 전에 휘어진다. 특히 한국의 소나무들은 휘어지고 구부러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또 벌레가 먹기도 하고, 비에 맞아 썩어들어가기도 한다.
이러한 점에서 목재라는 건축재료는 역학적으로 不均質 재료로 취급된다. 아직도 목조의 역학적 성질이 명쾌하게 규명되지 못하여 재료의 강도나 허용응력도도 가정치만 있을 뿐이지, 정확한 실험치를 규정할 수 없다. 벽돌 콘크리트 철골과는 달리 나무는 획일적인 물리적 성질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무로 만든 목조건물은 하중을 받으면 휘어지거나 줄어드는 변형이 있게된다. 나무 속에 있던 樹液들이 빠져나가면서 뒤틀리거나 갈라지는 自體變形도 발생한다. 특히 소나무를 주종으로 하는 한국의 목재는 그 변형의 정도가 가장 심하다.
예전의 장인들을 괴롭힌 것이 바로 목재의 변형이다. 여덟자(8feet) 길이로 자른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틀을 얹으면 심할 때는 기둥이 두치 (2inches)가량 줄어들게 되고, 기둥에 걸린 여러 가지 部材들의 위치도 따라서 변하게 되어 집 전체의 구조틀이 흔들려 버린다. 따라서 유능한 장인이라면 완성 후에 일어날 변형까지도 염두에 두고, 여유있게 부재를 가공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변형이 일률적으로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여유를 두어야 하는지 종잡기 어려운 점이다. 일본의 히노끼나 캐나다의 참나무와 같이 목질이 단단하고 곧은 목재라면 비교적 변형이 심하지 않지만, 한국의 소나무는 아무리 곧고 정확히 가공해도 몇 년만 지나면 휘어지고 만다. 일본과 캐나다의 목수들은 한국 목수에 비한다면 대단히 편한 직업이었다. 한국의 목수들에게는 경기 안성 청룡사의 대웅전과 같이 아예 처음부터 휘어진 나무를 골라 기둥으로 삼는 것이 속편한 일이었다.
변형에 대한 예측 불확실성은 완성 후에 정확한 수직이나 수평성을 보장하지 못한다. 아무리 뛰어난 솜씨를 가진 장인이라도 목질의 불균질성과 변형의 불확실성을 극복하여, 영원히 변치않는 목구조를 만들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목구조의 기법은 애초부터 불확실한 변형을 인정하는 범주에서 개발되어야 했다.
한국 목조건축에서 수직과 수평선은 공사의 기준일 뿐, 지켜져야할 형태적 규범이 아니다. 한옥의 처마는 시간이 갈수록 처짐이 일어나지만, 영원히 수평선을 이루지는 않는다. 애초부터 수평선을 포기하고 위로 휘어놓았기 때문에 처짐이 일어나도 항상 휘어진 채 변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원리를 ‘視覺的 安定性’의 원리라고 부르자. 두 점을 잇는 선 가운데 직선은 단 하나지만, 곡선은 수없이 많다. 수직선은 하나지만 수직이 아닌 선은 무한히 많다. 직각은 하나이지만, 직각이 아닌 각은 무한하다. 한국건축에서 직선이나 직각을 택했다 하더라도 이내 변형되어 버린다. 직선과 직각을 포기한다면 휘어지고 뒤틀린 채로 변하지 않는다는 逆說(paradox)을 발견하게 된다. 불가능한 하나에 어렵게 도달하기 보다는 무한히 많은 가능성을 택하는 造形的 原理 – 이것이 바로 시각적인 안정성이다.
시각적 안정성의 원리는 한국 목조건축 전반을 지배한다. 전북 부안 내소사의 僧房인 적묵당 출입구는 아래로 심하게 휘어진 목재를 문턱으로 삼았다. 30여명의 승려들이 뻔질나게 드나드는 이 문턱에 수평재를 사용했다면, 일년이 못가 갈아대야 할 것이다. 수많은 발길들에 금방 닳아 수평선이 변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휘어진 문턱은 아무리 닳아도 계속 휘어진 채로 영원할 수 있다. 지붕틀을 받치는 위로 휘어진 들보의 역할은 방향만 반대일 뿐 동일한 원리를 갖고 있다. 시각적 안정성은 곧 구조적 안정성이기도 하다.
부석사 무량수전 기둥에서 볼 수 있듯이, 기둥의 가운데를 볼록하게 만드는 기법을 배흘림이라 한다. 그리이스 건축의 entasis에 해당하는 기법이다. 그러나 그리이스의 엔타시스는 기다란 기둥의 가운데가 오목해 보이는 錯視를 矯正하기 위해 고안된 기법이지만, 한국의 배흘림은 착시교정용이 아니다. 배흘림이 있는 기둥을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배가 들어가지 않는다. 배흘림 기둥은 애초부터 기둥의 단면이 일정한 圓筒이기를 포기한 기둥이다. 이 기둥은 휘어지고 비틀려도 배흘림인 채로 남아있을 것이다.
기둥에 대한 몇 개의 대표적인 기법들만 들어보자. 예의 배흘림과 함께 보편화된 것은 민흘림이다. 기둥의 밑둥을 크게하고 위를 작게하는 직선형 기둥이다. 이 역시 평행 기둥이기를 포기했다. 배흘림 기둥은 원래 나무의 상당부분을 깍아내야 하지만, 민흘림은 위로 갈수록 줄어드는 목재의 형상을 응용한 가공법이기 때문에 조선시대에 널리 채용되었다.
모퉁이 기둥을 안쪽 기둥보다 약간 높게하는 ‘귀솟음’ 역시 기둥들의 수평선을 포기했기에 가능한 기법이다. 완공 후에 약간의 변형이 있기는 하지만, 영원히 귀가 솟은 채로 있을 것이다. 아울러 모퉁이 기둥을 수직선 보다 약간 안쪽으로 기울여 세우는 ‘안쏠림’ 기법이 있다. 매우 어려운 기술이지만, 추녀의 하중 때문에 기둥이 바깥으로 벌어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초부터 안으로 기울여 놓는다.
그런데 이 기법들에는 정해진 수치적 기준이 없다. 얼만큼 기울일 것인지, 높일 것인지, 휠 것인지 정해진 기준이 없다. 모두가 장인의 경험과 감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엿가락 치는 것이 엿장수 마음이듯이, 흘림과 솟음과 쏠림의 정도는 목수 마음인 것이다.
배흘림 기둥은 아래부터 1/3되는 지점이 가장 배가 부르고, 배부른 정도는 직경의 1/10이라고 한다. 그러나 배흘림 기둥을 마름하는 현장을 본 사람이면 이러한 통계적 공식이 별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알게된다. 배흘림의 곡선은 목수가 먹줄 튕기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기둥 아래 위 두점에 먹줄을 고정해 놓고 중간점을 손으로 집어서 비스듬히 들었다가 놓으면 먹줄은 활처럼 휘어지면서 나무에 곡선의 궤적을 그리게 된다. 이때 1/3 지점을 잡아 들어올리면 그 지점이 가장 배가 부르게 되지만, 궤팍한 목수가 2/5 지점을 잡는다면 배부른 위치가 바뀌게 된다. 또 기분에 따라 힘을 주는 강도나 비스듬한 각도를 달리하면 다른 곡률의 곡선이 생길 수밖에 없다.
기둥 뿐이 아니다. 건물의 모든 무게를 땅에 전달해주는 기단과 초석의 경우에도 동일한 원리가 적용된다. 부석사에 가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경관은 크고 작은 돌들을 불규칙한 형태로 쌓은 大石壇과 基壇들이다. 피상적으로 생각하면, 일정한 규격으로 자른 반듯한 돌들을 가지런히 쌓으면 보기에 좋을 것 같지만, 오히려 구조적으로 불안정하게 된다. 한번의 충격에도 와르르 무너질 위험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석사와 같이 크고 작은 돌들을 깍아가면서 이를 물려 쌓으면, 각 돌들 사이에 입체적인 지지력이 생겨서 마치 톱니바퀴들이 물려있듯이 구조적으로 견고하게 된다. 그리고 보기에도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창출한다.
대부분 건물들의 기둥礎石 역시 반듯하게 가공되어 있지 않다. 자연석의 생김 그대로 울퉁불퉁한 돌들을 골라 礎石으로 삼고, 기둥의 밑둥을 초석의 생김새에 맞추어 울퉁불퉁하게 깍은 다음 역시 이를 맞추듯이 초석 위에 올려 놓는다. 이렇게 결합된 초석과 기둥은 두 재료 사이의 마찰력을 극대화 시키기 때문에 웬만한 태풍이나 충격에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사실 초석을 평평하게 가공하고 기둥 밑둥을 직선으로 잘라 세우는 작업이 훨씬 간편하고 수월하다. 울퉁불퉁한 초석에 맞추어 기둥을 깍는 작업은 비경제적이고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자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구조적인 안정성을 얻기 위함이고, 동시에 고도의 자연미를 이루기 위함이다.
시각적 안정성의 원리가 만들어낸 아름다움의 극치는 하늘을 향해 날아갈 듯이 휘어진 처마의 곡선이다. 처마선을 정확한 수평선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할지라도, 지붕을 받치고 있는 서까래들은 지붕의 무게 때문에 이내 처지게 된다. 애초부터 위로 들린 처마선을 만들어 놓으면, 서까래들이 약간 처진다 할지라도 휘어진 곡선은 곡선인 채로 변하지 않는다. 수평선을 만드는 것은 쉬운 작업이지만 하늘로 들린 곡선을 만드는 것은 무척 어려운 기술이다. 직선의 서까래들 수백개를 모아서 하나의 곡선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치밀한 계산과 기술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휘어진 처마선을 만드는 것은 구조적인 안정을 위해서였고, 이 기법이 한국건축을 대표하는 시각적 아름다움으로 전환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처마선을 얼마만큼 휠 것이고, 기둥을 얼마만큼 솟고 배불릴 것인가였다. 여기에는 일정한 법칙이 없다. 오로지 커다란 원칙 – 시각적 안정성의 원리만 존재할 뿐, 구체적인 곡선의 형태는 목수의 솜씨에 달렸다. 정해진 manual없이 아름다고 튼튼한 구조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수십년에 걸친 경험과 훈련이 필요하다. 보통 건축계의 장인이 되려면 15년 정도의 철저한 徒弟敎育을 받아야 했다. 그 수많은 세월동안 다른 장인의 휘하에서 피눈물나는 수련을 거친 뒤에야 비로서 장인으로 독립할 수 있었다. 그렇지 못한 섣부른 목수들이 만들어 놓은 집들은 처마가 지나치게 휘어져 경박해 보이던가, 기둥의 선이 둔탁해서 불안해 보인다. 시각적으로 불안한 집들은 구조적으로도 허약해서 오래 가지 못한다. “보기에 나쁜 떡은 맛도 없다”는 속담과도 같다.
韓屋의 線은 그야말로 목수들 마음이다. 그러나 훈련된 장인들이라면 그 마음들의 편차가 그다지 크지 않다. 그리고 수많은 부재들 하나하나를 전체적인 건물의 아름다움에 맞추어 다듬어나가고 결합한다. 그들을 名匠이라 부른다. 한옥의 선을 이해하려면, 그래서 한국의 건축을 이해하려면 목수들의 마음과 장인정신을 이해해야 한다. 名將이 만든 건물은 名作이 되며, 拙匠이 만든 건물은 拙作이 된다. 명장들은 기교를 부리되 화려하지 않고, 자연스럽되 초라하지 않다. 한국건축의 즉흥적인 멋이란 정교한 솜씨를 가진 뒤에야 가능한 것이고, 자연스러움이란 치밀한 계산 끝에 나올수 밖에 없다. 임의적인 멋 역시 수십년의 시행착오 끝에 나오는 장인 기술의 頂點이다. 이 모두는 시각적 안정성의 원리를 추구한 끝에 나온 멋들이다. 그리고 시각적 원리는 구조적인 까닭 때문에 나온, 극히 합리적인 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