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이란 내부공간을 갖는 구조물을 말한다. 내부공간을 이루는 요소로 흔히 바닥면 벽면 지붕면을 꼽을 수 있는데, 이 가운데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바로 지붕이다. 시골집의 헛간과 같이 맨 흙바닥 위에 지붕을 얹어도 내부공간이라 하고, 원두막과 같이 벽이 툭 터진 건물도 지붕이 있기 때문에 내부공간을 갖는다. 반대로 아무리 훌륭한 바닥과 벽면을 가진 구조물이라 하더라도 지붕이 없으면 외부공간만을 만들 뿐이다.
건축술이란 결과적으로 지붕을 만들고 그를 지지하는 기술이다. 지붕을 얹음으로써 비와 눈을 피할 수 있고 햇빛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지붕을 만드는 기술보다는 지붕을 지지하는 기술이 더욱 어렵다는 점이다. 중력이 존재하는 한, 지붕은 무게를 가질 것이고 그 무게를 받치기 위해서는 든든한 기둥이나 벽을 적절히 설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삼풍백화점과 같은 붕괴의 참사를 맞게된다. 그러나 지붕을 튼튼히 받치기 위해 기둥과 벽을 너무 촘촘히 세우면 그 사이 공간의 쓰임새가 불편하게 된다. 내부공간을 위해 얹혀진 지붕이 거꾸로 내부에 장애가 되는 셈이다. 건축술의 발전은 곧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구조와 공법을 고안해 낸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중요한 요소가 바로 지붕이다.
한국건축의 바깥 모양을 특징짓는 것은 무엇보다 중후하면서도 날렵한 기와지붕이다. ‘동양의 파르테논’이라는 극찬을 받은 서울의 종묘는 지붕이라는 요소가 얼마나 강력한 형태인지를 잘 보여준다. 종묘건축은 기단과 지붕만으로 이루어진 모습이지만, 단조롭지 않으면서 신비한 긴장감을 자아내는 명건축이다.
동양목조건축의 지붕은 서양의 것과 여러가지로 차이가 난다. 우선 같은 목조의 경사지붕이지만 서양의 것은 그리이스의 파르테논 신전과 같이 짧은 면이 정면이 된다. 반면 동양의 것은 긴면이 정면으로 온다. 더 큰 차이는 동양지붕에는 처마가 달린다는 점이다. 처마는 원래 벽면의 나무기둥을 비로부터 보호하려는 목적과 직사광선이 곧바로 실내에 쪼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서양의 건물은 돌을 깍아 벽체와 기둥을 만들었기 때문에 처마는 흔적으로만 남아있다. 동양건축에 나타난 처마는 그 아래에 묘한 공간을 만들어냈다. 지붕은 덮여있지만 벽체는 없고, 외부와 내부의 경계에 위치해 안도 바깥도 아닌 모호한 성격의 공간을 만든다. 이를 반내부 혹은 반외부 공간이라 부른다. 처마공간은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혹은 안에서 밖으로 나오는 과정에서 하나의 공간을 더 거치게 만든다. 이를 건축학에서는 공간의 겹 (spatial layer)이라 부르고 매우 고급의 공간적 구성으로 평가한다. 껍질을 벗기면 바로 속살이 나오는 바나나는 서양집의 구조고, 처마가 있는 동양집은 벗겨도 또 한 겹이 나오는 양파에 비유할까? 벽면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조각적으로 서있는 한옥의 고풍스런 멋은 바로 처마가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아름다움이다.
한국건축의 모습을 이루는 요소는 땅에 붙어있는 기단과 하늘에 맞닿은 지붕, 그리고 그 사이의 벽면이다. 지붕-기단-벽체의 삼분구성은 흔히 하늘-땅-사람 (天-地-人)의 전래적인 삼재신앙으로 비유된다. 기단은 건축물을 땅에 고정시키는 역할을 하며, 지붕은 하늘에 매다는 역할을 한다. 그 사이 공간이 사람들이 생활할 수 있는 내부공간이 된다.
한국 지붕의 특징인 처마선은 하늘과 매우 깊은 관계가 있다. 직선인 듯 곡선이며,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하늘을 향해 들린 처마선의 모습은 무거운 지붕의 무게를 가볍게 보이도록 만들어 준다. 만약 처마선이 수평선을 이룬다면, 사람들의 눈에는 지붕의 무게 때문에 처마 양끝이 땅으로 처져보이는 착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처마선 모양의 차이로 동양 삼국의 건축을 구별할 수도 있다. 중국의 처마는 짧고 직선적이거나 배머리의 용골과 같이 과장되게 휘어져 있다. 반면 일본의 처마는 길고 직선적이다. 비약한다면 세 나라의 민족성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한국건축의 지붕만이 하늘을 향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한국 지붕은 앞에서만 들려있는 것은 아니다. 지붕면을 옆에서 보면 경사면이 직선이 아님을 금새 알아볼 수 있다. 경사면은 안으로 오목하게 파져있다. 또 한국지붕의 처마를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역시 안쪽으로 오목하게 파져있음도 발견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한국의 처마선은 위아래 앞뒤 좌우의 세 방향에서 휘어진 곡선들이 만나 이루어진 결과적인 선이다. 고도의 기술이 없으면 불가능한 선이다.
한국지붕의 선은 어느 방향에서든지 안으로 혹은 아래로 오목하게 파져있어 그릇을 연상케 한다. 무엇을 담기 위한 그릇인가? 그것은 하늘을 담기 위한 것이다. 하늘을 담아서 무엇하려하나? 하늘의 기운(天氣)을 집안에 받아들이기 위함이다. 거짓말이 아니다. 중요한 건물에는 생기기둥이라는 기둥이 세워진다. 이는 땅에서부터 지붕의 가장 높은 점인 용마루까지 세워진 높은 기둥인데, 그 이름(生氣기둥)에서 알 수 있듯이 하늘의 기운을 집안으로 끌어들여, 그 안에 사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 위한 장치다. 오목한 지붕들은 눈비의 피해는 막되 하늘의 기운을 받아 들인다. 한국의 건축은 하늘을 담는 그릇들을 머리에 이고 있었다. 참으로 멋진 생각들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