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일
2004.03.06.
출처
부산일보
분류
기타

지난 주 4일과 5일, 중부지방을 강타한 폭설로 경부고속도로가 마비되면서 만 24시간을 꼬박 눈 속에 갇힌 2만여 대의 차량은 추위와 배고픔에 떨어야 했다. 100년 만에 찾아온 3월의 ‘게릴라성 폭설’이어서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이 당국의 설명이다.
항상 이런 류의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그것이 천재(天災)냐, 인재(人災)냐를 가지고 논란을 벌인다. 단순히 하늘 탓으로 돌리기에는 고통과 피해가 너무 커서 책임을 물을 누군가가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그 책임 전가하기가 광기에 이르면 로마대화재 후의 기독교도 박해나, 칸토대지진 후의 조선인 대규모 학살 등 잔학한 집단 범죄로 번지기도 한다. 이번 폭설 사태에도 ‘당국의 늦장 대응’이나 ‘재난 구조체계의 미비’ 등을 구조적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물론 미리 고속도로 진입을 통제했다면 만 하루 동안 차안에 갇히는 불상사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속도로 진입을 불허하면 국도가 막히고, 지방도로에 갇히게 되니 상황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는다. 제설차를 투입한다고 해도 이미 도로를 가득 메운 정체차량 때문에 효과적인 제설은 불가능하고, 여러 관계기관의 협조를 얻어야하는 현재의 재난구조 시스템 상 조기제설작업도 어렵다. 비상장관회의를 백번 소집한다 해도 별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교통을 정리하고 눈을 치우는 것은 장관의 임무가 아니라 경찰과 도로공사의 몫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시스템이 발달한 선진국에서도 급작스런 폭설은 매우 골치 아픈 재앙이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민간인들이 제설차와 장비들을 가지고 있다. 눈이 오면 제설장비 주인들은 자신의 담당 구간에서 밤새워 눈을 치우고 나중에 당국에 신고하면 실적에 따라 보상비를 받는다. 뉴욕주의 경우는 자기 집 앞의 눈을 치우지 않으면 일정액의 벌금까지 부과된다. 철저한 자본주의적 민간주도형 시스템이기 때문에 ‘늦장’이나 ‘미비’ 등은 있을 수 없다. 자연 재해 정도는 이런 상설 시스템에 의해 예방되고 치유되어야지, 큰 눈 오고 큰 바람 불 때마다 장관이나 대통령이 나서야한다면 그 얼마나 취약한 사회인가?
무엇보다 이번 재해의 특징은 봄이 오는 춘삼월에 한꺼번에 큰 눈이 내렸다는 매우 이상한 기후현상이다. 지난 2월에는 섭씨 18.8도까지 오르는 겨울 더위가 며칠 계속되더니, 여름 장마철을 방불케 하는 78mm의 집중 호우까지 내렸다. 바로 여름이 되는가 싶은 이상기후였다. 이런 이상기후는 점점 심해지기는 하지만, 매년 계속 반복되는 최근의 현상이다. ‘50년만의 최고 더위’니, ‘100년만의 최대 홍수’니 하는 이변이 매년 반복된다.
기상학자들은 최근 이상기후 현상의 주원인은 바로 계속적인 지구의 온난화현상 때문이라 설명한다. 실제로 19세기 산업화 이후에 지구 표면 온도는 0.6도 상승했는데, 이는 그 이전 몇 십만 년의 온도변화의 3배에 해당한다. 지난 200년간 해수면은 10~25Cm 상승했는데 이 추세라면 2050년에는 대서양 연안의 국제도시들이 다 물속에 잠길 판이다. 산업화 이후에 이산화탄소량은 30%가 증가했는데, 100년 후에는 현재보다 3배가 증가하리라는 추산이다. 그때가 되면 숨쉬기도 어려운 지구가 될 것이다.
지구가 인간을 포함한 생물들의 터전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지구의 ‘항상성’ 유지 시스템 때문이다. 수억년 동안 온도와 산소를 일정하게 유지했기 때문에 생태계의 생존이 가능했던 것인데, 최근 1~2세기에 그 항상성이 깨져버렸다. 지구과학자인 제임스 러브록은 “지구는 생태계 생존의 최적 조건을 유지해주기 위해 자기 스스로를 조정하며 변화하는 거대한 생물체”라는 가설을 ‘가이아 이론’으로 주장했다.
지구온난화 현상이란 가이아 지구가 감염된 심각한 열병이며, 지구는 질병을 스스로 치유하기 위해 폭우와 폭설, 태풍 등 자가 치료기능을 가동한 것이다. 이 열병은 산업화로 인한 오존층 파괴가 주범으로, 인간들이 감염시킨 질병이다. 아직은 감기 정도이기 때문에 지금의 폭설과 수해는 재채기나 오한 정도일 것이다. 지구 생명체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지구에 기생해 사는 벼룩 같은 존재이다. 기생충이 숙주에 심각한 피해를 입히기 시작하면 숙주는 자기 보호본능에 따라 기생충 박멸작업에 나선다. 현재 겪는 환경재해는 그 작업의 초기 단계인지도 모른다. 인재를 방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자연보호와 환경회복을 통해 지구와 인간이 공존할 길을 스스로 마련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