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일
2014.12.02.
출처
한국일보
분류
기타
원문 링크

루이 14세와 효명의 예악정치

예술을 왕권강화의 계기로

품격 갖춘 예술정치 그리워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을 달래듯 다양한 예술작품들이 무대에 오른다. 그 중 가장 사랑받는 스테디셀러는 발레극 ‘호두까기 인형’일 것이다. 겨울 밤 난로가에서 듣는 듯 아름다운 이야기, 화려한 복장의 무용수들이 펼치는 황홀한 춤과 음악. 이들은 각박한 현실에 찌든 몸과 마음을 순수한 동화의 세계로 이끈다. 발레라는 장르는 인간의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예술이다. 그러나 발레의 시작은 그다지 순수하지 않았다.

발레를 주류 예술로 격상시킨 이는 프랑스의 절대군주 루이 14세였다. 6세의 나이에 왕위에 올라 22세에 실질적인 왕권을 쥘 때까지 섭정들이 정치를 대신하면서 어린 왕은 예술에 심취했다. 그는 여러 차례 무용극의 주인공으로 출연했는데, 15세 때 출연한 ‘밤의 발레’가 특히 유명하다. 저녁에 시작해 새벽까지 장장 13시간 동안 공연한 이 작품에서 루이 14세는 아폴로 역을 맡았다. 아침 해가 뜨는 시간에 맞춰 설정된 클라이맥스에서 태양의 신으로 분장한 그가 나타나 신의 춤을 췄다. 이 배역으로 그는 ‘태양왕’이라는 호칭을 얻었으며, 최초의 발레 스타가 됐다. 초기의 발레 명작들을 궁중에서 공연했을 뿐 아니라 최초의 교육기관인 왕립 발레 아카데미를 설립해 발레의 중흥조로 자리 잡았다.

온 국민을 전쟁과 폭압의 구렁텅이로 빠뜨린 루이 14세가 발레를 비롯한 화려한 궁중 문화를 꽃피워 근대 예술의 맹아가 된 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역사였다. 귀족들과 종교계의 견제 속에서 발레를 통해 “왕은 곧 신”이라는 ‘왕권신수설’을 상징화하고, 절대 왕권을 구축하려 했던 영리한 왕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예술이 갖는 정치적 힘을 직시한 것이다.

효명세자는 조선조 23대 임금인 순조의 맏아들이었다. 아버지 순조는 11세에 왕위에 올라 의붓 증조모 정순왕후의 수렴청정과 외척인 안동 김씨 일파의 세도정치에 휘둘렸다. 영조와 정조가 통치했던 18세기는 정치가 안정돼 사회 각 방면의 발전과 문예가 부흥했던 시대라면, 순조의 19세기 초는 유래 없는 기근과 민란에 휩싸인 퇴행의 시대였다. 무력한 왕실의 유일한 희망은 효명세자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할아버지 정조의 환생”이라 부를 정도로 총명한 자질과 탁월한 문학적 재능을 보였고, 왕실을 부흥시킬 재목으로 기대를 모았다.

18세가 된 효명세자는 순조를 대신해 정사를 총괄하는 대리청정의 임무를 맡았다. 효명은 당시 조선사회의 모든 모순은 왕실의 약화와 세도가의 전횡 때문이라 생각했다. 왕권을 강화할 수단으로 ‘예악정치’의 길을 선택했다. 3년이라는 짧은 청정 기간 동안 효명세자는 순조의 등극일이나 왕후의 생신을 기념해 여러 차례 궁중 잔치를 벌였다. 이들은 먹고 마시는 단순한 잔치가 아니라 예법에 맞춰 순서를 정하고, 음악과 춤을 새로이 정비하고, 무대를 마련하고, 공연의 의상과 소품들을 제작하고, 출연진을 훈련시킨 일종의 종합 공연이었다.

이 종합 공연은 ‘궁중 정재’라는 예술 장르가 됐는데, 현존하는 정재 53종 중 26종이 효명세자가 직접 만들거나 정비한 것이다. 효명이 직접 작곡한 여러 악무 중 춘앵무가 특히 유명하다. 희망의 봄을 우아하고 절도 있게 그려낸 춤인데, ‘봄날의 꾀꼬리’라는 이름답게 암울한 정치 현실을 종식하고 강력한 왕실을 부흥시킨다는 정치적 해석도 가능하다. 한 나라의 세자가 이처럼 예술 창작에 몰두한 것은 예악을 통해 군신간의 위계질서를 재구축하고, 예술의 힘을 통해 사회적 모순을 치유하려는 의도였다.

루이 14세와 효명세자는 예술 작품을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했다. 루이 14세는 태양왕이 돼 전 유럽을 호령했다. 반면 효명세자는 22세에 급서해 뜻을 펼치지 못한 채 ‘봄날의 꾀꼬리’가 돼 미완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 발레를 창조하고 궁중 정재를 완성한 예술적 업적을 남겼다. 마치 “인생은 짧지만 예술은 영원하다”라는 격언과 같이 정치와 역사는 변했지만 예술은 남았다. 직설적 폭력과 냄새나는 음모가 판치는 동서고금의 정치사 속에서 두 사람의 예술 정치는 그래도 품격을 갖춘 창의적 정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