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일
1997.08.01.
출처
선경 사내지
분류
건축역사

창은 3가지 기능을 만족시켜야 한다. 첫째는 어두운 실내에 빛을 전해주는 채광의 역할이다. 실내를 밝힌다고 무작정 벽을 뚫으면 추위와 비바람이 불어닥친다. 외부와 내부를 차단하면서도 빛을 투과시켜야 하는 상충되는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투명한 재료가 필요했다. 현대라면 유리라는 신기한 재료가 있지만, 과거에는 창호지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투명한 유리와는 달리 반투명한 창호지를 통해서 들어오는 빛은 간접광선으로 바뀐다. 우리네 집안의 분위기는 이 간접광선의 양과 방향에 따라 크게 좌우됐다.
둘째는 내부와 외부의 공기를 통하게 하는 환기의 기능이다. 특히 무더운 여름철에는 실내에 바람이 통하게해 더위를 식힐 수밖에 없었다. 바람을 통하게 하려면 창을 열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창을 열고 닫는 장치들이 여러 가지로 고안되었다. 그러나 부엌이나 창고와 같은 작업공간에는 항상 환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늘 열려진 붙박이 창을 만들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창은 실내에서 바깥을 내다볼 수 있는 전망의 기능을 가져야 한다. 유리창이라면 곧바로 바깥을 내다볼 수 있지만, 반투명한 창호지창이나 불투명한 판자창의 경우는 꼭 열어 제껴야만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을 방안으로 끌고 들어올 수 있다. 주위 환경 중에서도 볼만한 것을 선택해야 하기 때문에 창의 위치와 크기를 정하는 데 큰 배려가 필요하다.
창호지를 붙이기 위해서는 창살이 필요하다. 우리의 창들은 이 창살 문양의 형태와 크기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보여왔다. 일반적인 격자살창부터 대각선으로 구성된 빗살창, 꽃무늬로 장식한 꽃살창, 문자를 도안한 완자살창 등. 창이 붙는 방의 기능과 성격에 따라 창의 재료와 모양도 달라진다. 사람이 거주하는 일반적인 거실에는 창호지를 바른 살창들이 쓰이지만, 부처님을 모신 법당에는 화려한 꽃살창도 흔히 쓰인다. 반면 하인들이 음식을 만드는 부엌이나 보안을 요하는 창고 등에는 튼튼하고 불투명한 판자창도 자주 쓰인다. 창의 모습을 잘 읽으면 건물이나 방의 성격도 알 수 있다. 그래서 창은 건물의 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