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기술이 아니다. 가구와 실내부터 도시와 조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수많은 부분들을 선택하여 전체를 설계하는 창조 행위이다. 방들과 복도, 계단(부분)들이 모여서 한 동의 건물(전체)을 이루지만, 도시적 차원에서 본다면 건물들은 오히려 도시를 이루는 부분이 된다. 부분과 전체의 관계는 고정된 체계가 아니라, 상대적이며 변화하는 것이다.
부분과 전체의 관계에는 자동차와 숲에 비유할 수 있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자동차는 수천 개의 부품들이 정교하게 조립된 집합체이지만, 모든 부품들은 오로지 달리기 위한 하나의 목표를 위해 존재한다. 또한, 전체가 완결되지 않으면 그 수많은 부품들은 고철 덩어리에 불과하다. 반면,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루고, 다시 숲들의 집합은 산이라는 더 큰 전체를 이룬다. 자동차의 부품과는 달리, 나무도 숲도 산도 모두 독립되고 완결된 생명체이다. 따라서 자동차를 기계적 집합체라 한다면, 숲이나 산은 유기적 집합체라 할 수 있다.
20세기의 선각자들은 건축을 통해 인류의 해방과 생활의 혁명을 꿈꾸었지만, 불행하게도 그들은 건축과 도시를 정교하고 거대한 기계로 만들어왔다. 도시를 상업지역, 주거지역, 녹지지역 등으로 나누고 각각의 기능에만 충실하면 빛나는 도시가 만들어질 줄 알았다. 그러나 1세기의 실험을 통해서 그 기계론적 도시가 결국은 집값 상승, 교통 체증, 에너지 소비와 공해를 유발하는 거대한 공룡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21세기의 도시는 건강한 숲이나 산이 되기를 희구한다. 그러려면 건축과 도시, 부분과 전체 사이의 새로운 관계 정립, 새로운 집합의 사고가 필요하다.
건축과 도시의 이론은 과학적 실험과 증명이 불가능하다. 건축적 실험에는 막대한 건설비와 장구한 시간이 소요되며, 그 실험과정에서 인간 생활의 피해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적 유추를 통해 건축 도시 이론을 생산하고 검증할 수 있다. 역사 속의 건축은 그 시대 건축가들이 치열한 정신활동과 노력을 다한 결과이며, 역사적 여과장치를 통해 남겨진 현재이기 때문이다.
한국건축 역사를 통해 집합적 건축론을 추론하고 전개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그러한 역사적 신뢰성에 있다. 경복궁의 근정전은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졌는가? 우선, 북악과 남산, 삼청골 개울과 청계천 등 자연물과의 관계 속에서 왕궁의 위치를 정했다. 그 정해진 영역을 정무영역, 왕족의 생활영역, 정원공간 등, 커다란 영역으로 나눈다. 그런 후에 근정전, 경회루 등의 개별 건물의 위치와 규모와 형태를 정해 나갔다. 전체에서 부분으로, 커다란 전체에서 작은 전체로 진행되었던 설계과정이었다.
어느 문명권에도 전체와 부분의 관계는 존재하지만, 유독 한국 건축에는 그 집합의 과정이 독특하며 중층적이다. 전체 속에는 작은 전체들이 존재하고, 그 작은 전체들은 다시 더 작은 전체들로 이루어진다. 방이나 마루와 같은 단위 공간부터 산이나 강이라는 자연물까지 그 집합의 차원과 관계가 여러 겹으로 겹쳐서 짜여져 있다.
역사적 건축들은 여기에 시간이라는 차원까지 집합되어 있다. 예컨대 양산의 통도사는 1000여 년에 걸친 오랜 시간 속에서 변화하고 확장, 축소되어 온 결과이다. 현존 통도사의 건축은 역사 속의 많은 생각들과 시대적 사상들이 지층처럼 적층된 집합체다. 종묘도, 해인사도, 창덕궁도, 불국사도 그러하다. 따라서 우리가 역사적 선례에서 읽어야 할 것은 처마곡선이나 배흘림 기둥과 같은 부분적 형태와 요소가 아니라, 그 내재된 집합적 관계이고, 집합적 역사이다.
건축을 집합으로 정의한다면, 다른 차원에서 한국 건축의 정체성을 모색할 수 있다. 서구의 건축과 한국 건축은 재료와 형태만 다른 것이 아니라, 자연과 전체화되는 방식, 마당과 건물의 관계, 방과 방의 관계 등, 근본적인 집합적 체계가 다른 것이다. 한국과 중국, 일본 건축의 차이는 처마선이 얼마나 휘어졌는가 따위의 부분적인 차이가 아니다. 건물의 차원에서만 본다면 세 나라의 건축은 그다지 큰 차이가 없지만, 건물과 건물, 건물과 마당이 집합되는 방식에는 차원을 달리하는 차이가 있다. 기와지붕을 씌우거나, 완자살창을 단다고 한국적 전통이 계승되는 것이 아니라, 집합적 관계를 복원하고 발전시킬 때 비로소 한국성의 실체가 잡힐 것이다.
역사에 대한 인식도 달라진다. 형태나 재료에만 연연한다면, 한국건축은 삼국시대부터 조선말까지 2000년 동안 변화가 없었고, 현대건축은 전통과는 완전히 단절된 것으로 인식될 것이다. 그러나 집합의 역사에 주목한다면, 역사상 여러 차례의 근본적인 변화를 발견할 수 있고, 현대건축은 그 변화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할 수 있는 개념적 고리는 바로 여기에 있다.
현대의 건축은 도시와 건축 사이의 단절, 건축 개발은 곧 환경 파괴라는 모순, 세계화와 지역성의 갈등이라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 이들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기계론적이고 기능적이었던 근대의 세계관을 유기체적이고 전일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도시와 건축 사이의 집합적 관계를 회복하고, 건축이 환경과 전체화하는 방법을 깨달아야 하며, 지역이라는 부분과 세계라는 전체 사이의 문화적 상보성을 구축해야 한다. 건축의 역사적 탐구를 통해서 추론되는 집합적 이론들은 중요한 해법을 제시할 수도 있다. 또한, 집합적 건축론은 건물과 공간이라는 물리적 집합성을 넘어서, 도시와 환경이라는 영역적 관계로, 더 나아가 세계와 지역의 문화적 집합성으로 확장될 여지가 충분하다. 관계와 전체, 통합에 관심이 있는 이 이론은 어느 차원이나 대상에 대해서 열려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