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가장 근본적인 건축
조선시대 지리서인 <擇里志>에 인간이 살기에 좋은 땅의 조건을 명시하고 있다. 이른바 明堂의 조건이란, 地理, 生利, 人心, 山水가 좋은 곳이라 했다. 지리란 산과 강의 지형적 이치를, 생리란 그 땅에서 나오는 산물들을, 인심은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심성을, 그리고 산수란 그 땅의 아름다운 경관을 의미한다. 명당의 조건 가운데 3가지가 바로 대지와 연관된 자연적 현상들이다. 그만큼 한국의 이상적인 삶의 터전은 자연 속에서 찾아져왔고, 자연을 떠난 한국건축이란 상상하기 어려웠다.
風水地理說은 비록 중국에서 체계화되어 수입된 것이기는 하지만, 중국이나 일본보다는 한국에서 가장 막강한 위력을 발휘했다. 風水(peng-sui)에서 중요한 요소로 다루는 것은 산과 강이다. 산은 바람을 잡는 도구이고, 강은 물을 얻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동양적 자연관에 따르면, 자연은 氣로 충만한 세계이고, 자연세계의 기는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변화한다. 바람은 하늘의 기를 운반하는 매체이며, 물은 땅의 기를 운반하는 전달자이다. 따라서 적절한 산과 강의 지형은 자연의 기를 모을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이며, 그 자연의 기가 모이는 장소가 바로 명당이라는 땅이다. 명당에 터를 잡고 집을 지으면, 그 집에 사는 사람들에게 자연의 기가 전파된다고 믿었다.
따라서 건축의 첫단계인 땅을 선택하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의 지형을 잘 읽어내고 해석하는 일이다. 결과적으로 뒤편에는 높은 산이 있어 바람을 잡을 수 있고, 앞에는 넓은 들과 강이 흘러 풍부한 산물을 얻을 수 있는 곳, 이른바 背山臨水의 지형이 좋은 건축지로 선호되었다.
터잡기 뒤에는 터를 고르고 정지하여 건물을 앉힐 준비를 하게된다. 이때 가장 주용한 것은 건물의 방향을 어느 쪽으로 앉힐 것인가하는 坐向의 문제다. 현대건축에서 선호하는 南向이란 그리 절대적인 기준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무엇을 바라볼 것인가하는 시각적 대상물이 좌향을 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기능적인 면보다는 심리적인 측면이 더 중요시됐다는 말이다. 건물이 바라보는 대상을 案對라고 한다. 안대는 흔히 잘생긴 산이 된다. 산만이 변하지 않는 자연적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안대의 위치에 따라 마을과 주택들의 형상이 달라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대성리학자인 李滉의 고향인 安東 土溪마을의 주택들은 모두 서향을 하고 있다. 서쪽에 중요한 안대인 陶山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유명한 안동의 河回마을은 마을을 감싸는 강물이 S자형으로 휘어져 흐른다. 강물이 휘어져 흐른다는 것은 주변의 산봉우리들이 여러 개이며, 나란하지 않고 방향도 일정하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하회의 주택들은 주변의 여러 산들을 안대로 택해 건물을 배치했다. 그러다 보니 주택들의 좌향은 일정하지 않고, 동서남북을 제각기 택해, 전체적으로 무질서하게까지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엄격한 질서가 숨어있다. 자연물을 기준으로 건물의 향과 위치를 정한다는 자연적인 질서가.
이처럼 풍수지리적 기준들이 터잡기와 건물 앉히기 과정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적절한 높이와 생김새의 산들, 그리고 구비치는 강들이 한반도의 전 국토를 메우고 있어서 풍수설의 규범들이 가장 잘 적용될 수 있는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풍수설이 한반도의 지형을 해석하기 위해 등장한 것 같이 여겨질 정도였다.
나무와 돌의 心性을 재현하는 건축
터를 잡고 건물의 방향을 정했으면 그 다음은 기초를 놓고 기둥을 세우는 일이다. 기초로 쓰기위해 개울가에 굴러 다니는 막돌들을 골라 공사장에 가져온다. 막돌을 애써 평평하게 가공하지 않고 자연석 그대로를 땅 속에 묻기 때문에, 지면 위에 올라오는 기초면도 울퉁불퉁 생긴 그대로다. 이 위에 나무 기둥을 얹으려면, 기둥의 밑둥아리를 초석돌이 생긴 그대로 깍아내야한다. 이를 ‘그렝이질’이라 하며, 특별히 고안된 장비로 나무 밑둥에 곡선을 긋고, 자귀를 사용하여 깍아낸다. 깍아낸 나무기둥을 초석 위에 얹으면, 마치 위아래 어금니가 맞물리듯이 돌과 나무가 하나의 부재같이 꽉 물리게 된다.
그렝이질이라는 어렵고 복잡한 가공단계를 거쳐 완성된 이 ‘덤벙기초’ 기법은 자연석 그대로의 형태를 보존한다. 겉보기만 한다면, 아주 원시적인 기술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기법에는 매우 과학적인 원리가 숨어있다. 돌로된 초석 위에 나무기둥을 올린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기술이 아니다. 기둥의 밑둥에는 흘러내린 빗물들이 고이기 때문에 그만큼 썩기 쉽다. 썩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초석을 지면 위로 높게 들어올릴 수밖에 없다. 또한, 초석과 기둥 사이에는 일절 連結材나 접착제를 쓸 수 없다. 그러면 그 사이로 습기가 들어와 나무 기둥을 부식시키기 때문이다. 결국 돌 위에 나무를 살짝 올려놓을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기둥을 옆으로 치는 힘들 -예컨데 사소한 지진이나, 태풍 등의 충격, 그리고 지붕에서 전달되는 수직력이 불균형할 경우-이 작용하면 기둥은 초석 위를 미끄러지면 쓰러지게 된다. 이 취약함을 막는 효과적인 구조기법이 바로 ‘덤벙기초’법이다. 기둥과 초석이 이빨이 물리듯 울퉁불퉁한 면들로 맞물리기 때문에, 옆으로 힘이 작용해도 안전하게 된다. 고도의 과학적이면서, 동시에 자연적이 기법이다.
초석 위의 구조체들은 모두 나무로 만들어진다. 나무라는 재료는 생명을 가진 유일한 건축재료다. 생명체이기 때문에 복잡하고 까다로운 성질을 가지고 있다. 흙이나 벽돌과는 달리 숨을 쉬고, 비를 맞으면 썩고, 햇빛을 쬐면 비틀어진다. 나무를 다루어 집을 짓는 목수들은 나무의 생명을 이해해야한다. 예를 들어 산의 남쪽에서 자란 나무는 건물의 남쪽면에 사용해야한다. 반대로 북사면에서 생장한 나무는 건물 뒤쪽 응달면에 세워야한다. 생전의 환경과 유사한 조건에서 목재는 자신의 장점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기둥이나 대들보와 같이 힘을 많이 받는 곳에 쓸 나무는 산마루에서 자란 것을 사용한다. 산마루의 혹독한 풍상을 이겨낸 나무만이 단단하고 견고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습기가 많고 온화한 골짜기에서 자란 나무는 벽체나 장식재로 사용한다. 무르고 부드럽기 때문이다. 나무의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는 생전의 호나경을 잘 알아야하기 때문에, 훌륭한 목수는 ‘나무를 사지 않고 산을 산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다. 실제로 대궐을 짓는 목수들은 공사하기 몇 년전부터 산을 지정하고, 산의 각부분에서 자라는 나무들의 성질을 관찰한 후, 건물의 어느 부분에 쓸 것인가를 결정했다고 한다.
한국의 소나무들은 곧고 굵은 것이 부족했다. 오히려 가느다랗고 휘어진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목수들은 항상 이 불규칙한 목재들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휘어진 소나무들을 억지로 깍아서 반듯하게 만든다면, 기둥이나 보로는 쓸 수 없을 정도로 가늘어지기 때문이다. 묘안을 찾아낸 것은 휘어진 나무를 휘어진 대로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겉보기에는 원시적이고 초라해 보여도, 이 기법은 매우 우수한 구조적 장점을 보장하게 된다. 대들보와 같이 수평으로 걸리는 부재에는 항상 지붕에서 내려오는 수직적 하중이 걸리기 마련이다. 따라서 대들보는 아래로 쳐지는 힘을 받게되고, 심할 경우 힘을 못이겨 부러지게 된다. 그러나 미리 위로 휘어진 나무를 사용하게 되면, 밑으로 처질 염려도 없고 부러질 위험도 없다. 또 시각적으로도 위로 휘어진 나무는 안전하게 보인다. 이러한 구조적 이유 때문에 한국건축에는 위로 휘어진 대들보를 많이 사용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의 미학으로 고착되었다. 직선적인 아닌, 곡선적이며, 정교한 것이 아닌, 투박하고 역동적인 미학이 전통건축의 아름다움이었다.
安城의 靑龍寺 大雄殿은 휘어진 나무들을 어디까지 사용할 수 있는지 실험한 작품과도 같다. 측면의 기둥들은 하나도 곧바른 것이 없다. 모두 구불거리며, 굵기도 위아래가 현저히 다르다. 상식적인 눈으로는 곧 쓰러져버릴 것 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이 건물은 200년이 넘도록 쓰러지지 않고 굳건하게 서있다. 이 건물을 만든 목수들은 나무의 성질을 꿰뚫고 있었고 그만큼 자신감이 있었다. 高敞 禪雲寺 萬歲樓의 대들보들은 아름드리 휘어진 나무들이다. 심지어는 두 개의 나무를 이어붙인 것도 있다. 실내로 들어가면 온통 휘어지고 거친 들보들로 아늑한 맛이라고는 없다. 그러나 여기에는 원초적이고 역동적인 감동이 가득하다. 섬세하게 단장된 다른 건물들과는 또 다른 미학이 존재하는 것이다. 자연을 인간의 모범으로 삼았던 老子(Laotzu)의 철학에 의하면 “크게 완성된 것은 마치 찌그러진 듯하며, 크게 곧은 것은 마치 굽은 듯이 보이며, 크게 정교한 것은 마치 서투른 듯이 보인다 (大成若缺 大直若屈 大巧若拙)” 했다. 자연의 모습이 바로 그런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전통건축이 가졌던 모습도 그런 것이었다.
환경을 극복하는 자연적 지혜
한반도는 사계절이 뚜렷한 지역이다. 여름의 더위와 겨울의 추위가 공존하는 것은 건축에는 매우 불리한 기후조건이다. 더위를 막기 위해 시원하게 집을 지으면, 겨울에는 춥고, 겨울에 대비하면 여름에는 덥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와 눈도 많이 오는 기후여서 지붕을 튼튼하고 경사지게 만들어야 한다. 지붕을 튼튼하게 만들면 지붕의 무게가 무거워지고, 기둥과 들보 등 구조를 두껍고 단단하게 만들어야 한다. 세계의 기후 가운데, 건축에 가장 불리한 곳이 바로 한반도와 같은 온대 계절풍 기후대다.
한국건축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온돌과 마루의 공존’을 꼽는다. 온돌은 추운 기후를 극복하기 위해 발달한 난방설비이고, 마루는 무더운 지역에서 서늘한 실내를 만들기 위해 발달한 구조다. 온돌과 마루는 너무나 대조적인 성격을 갖는다. 온돌은 불로 달구어진 돌이며, 온도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지면에 밀착되어야 한다. 반면, 나무로 만들어진 마루는 불을 멀리해야 하고, 습기를 피하기 위해 지면에서 높이 떠 있어야 한다. 서로 다른 재질과 높이 차이를 한 건물 안에서 동시에 수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어려운 작업을 갖은 시행착오 끝에 완성시킨 것이 바로 한옥이요, 한국의 건축이다.
온돌은 겨울을 나기 위해, 마루는 여름을 위해 필요한 시설들이다. 중국 북부지방의 집에는 ‘깡(炕)’이라는 부분적인 온돌은 있지만 마루는 없다. 온돌과 마루가 함께 있는 건축은 한국 밖에는 없다. 추위와 더위가 공존하는 기후를 극복하기 위한 고도의 기술이며 지혜다.
많은 강수량은 논농사를 위해서는 필수적인 조건이다. 그러나 화학적인 방수제가 발명되지 않았던 시절에, 완벽하게 방수가 되는 지붕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었다. 방수를 위해서는 지붕 속에 두터운 흙을 얹어야했고, 그 아래에 판자를 깔아야했다. 그만큼 지붕의 무게가 무거워지는 단점이 있었지만, 두터운 흙은 보온층의 역할도 겸해서 여름에 서늘하고 겨울에 따뜻한 실내를 만들 수 있었다.
방수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붕의 경사도를 적절하게 잡는 것이 필요했다. 경사가 너무 완만하면 빗물이 고여 지붕 속으로 스며들며, 너무 급하면 지붕의 기와장들이 흘러내릴 우려가 있다. 한국건축의 지붕 경사는 안으로 오목한 곡선을 이룬다. 여러 실험 끝에 이 곡선의 경사가 가장 방수에 유리하며, 동시에 아름답기 때문이다. 마치 하늘을 담듯이 오목한 곡선의 경사지붕은 처마 끝에서 살포시 들리게 된다. 이 또한 한국건축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처마 곡선을 이루게 된다.
직선적인 서까래들을 가지고 이처럼 우아한 곡선을 만들어내는 솜씨도 일품이지만, 하늘을 향해 들린 처마곡선은 기후 조절적인 과학적 효과도 내포하고 있다. 추운 겨울의 태양고도는 낮고, 더운 여름의 태양고도는 높다. 하늘로 살짝 들린 처마선은 겨울에는 햇빛을 집안으로 많이 끌어들일 수 있고, 여름에는 오히려 햇빛을 차단하는 효과를 거둔다. 결과적으로 겨울에는 실내를 따뜻하게, 여름에는 서늘하게 유지할 수 있다. 이처럼 한국건축의 처마선은 시각적으로 아름다울 뿐 아니라, 실내의 온도를 조절하는 설비장치로서도 역할이 크다.
온돌과 마루, 처마곡선 등의 기후조절 장치는 자연의 이치를 체험으로 깨닫고, 그를 극복하는 방법도 지극히 자연적인 원리에 의해 조절하고 있다. 기후환경을 극복하되 자연을 거스리지 않는 지혜를 발휘한 것이다.
자연을 호흡하는 건축
한국건축의 벽면은 흙벽과 창호로 이루어진다. 흙벽을 이루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벽의 앞뒤로 거푸집을 짜고, 그 사이에 흙을 다져넣어 굳히는 방법이 있다. 이 경우 벽의 두께를 40cm 정도만 유지해도 빗물이 스며들지 않는다. 그리고 겨울의 보온과 여름의 서늘함을 유지할 수 있는 두께다. 보통 황토벽은 대나무 발을 엮어 막을 구성한 뒤, 발의 앞뒤에 흙을 바른다. 이때 접착력과 강도를 높이기 위해 지푸라기를 잘게 썰어 혼합하기도 하고, 다시마 따위의 해초를 끓인물을 붓어 흙을 개기도 한다. 해초 끓인 물은 훌륭한 방수제의 역할을 한다. 현대 공법에서도 사용하는 천연 방수재로서, 빗물은 스며들지 않지만, 내부의 혼탁한 공기와 습기는 흙벽 사이의 미세한 틈을 타고 바깥으로 배출하는 이중 효과를 지니고 있다. 황토 입자가 해초물과 함께 다져지면, 입자들의 간격이 빗물방울보다는 작고, 수증기 보다는 크게 되어 벌어지는 과학적 현상이다.
벽에 창이 설치되는 목적은 실내에 자연채광을 하기 위해서, 실내의 공기를 환기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외부의 경치를 바라보기 위해서다. 창문이 나무판으로 만들어졌다면, 이 세가지 목적은 모두 창을 열었을 때만 달성할 수 있다. 그러나 창을 열어두면 실내의 공기가 밖으로 새어나가 겨울에는 몹씨 추워지게 된다.
실내의 온도를 보존하면서도 채광을 하고 환기를 할 수는 없을까? 이 까다로운 요구를 해결해 준 것이 창호지 창이다. 닥나무의 섬유질을 농축하여 만들어지는 두터운 한지를 문에 바르면 곧 창호지가 된다. 펄프판이라 할 수 있는 창호지는 햇빛을 반쯤 투과시키면서 산란시키는 역할을 한다. 반투명 재료라 할 수 있다. 창호지 창을 통해 실내로 들어오는 햇빛은 직사광선이 아니라 한번 걸러진 뿌옇고 적절한 온도를 가진 가공된 빛이다. 눈이 부시지도 않고 따갑지도 않다. 그러면서도 실내의 따뜻한 기운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준다.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한국건축의 실내공간은 바로 창호지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의 효과 때문이다.
창호지 섬유질 사이의 미세한 간격은 큰 바람을 막아주는 대신, 미세한 공기의 통풍을 가능하게 한다. 창이나 문이 잘 짜여진 한옥에서는 한겨울에도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 외기의 찬바람이 실내에 들어올 수는 없지만, 항상 신선한 공기가 창호를 통해 일정량 실내로 공급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연 채광과 통풍 효과는 창문을 닫아두었을 때 일어나는 현상들이다. 유리창을 닫아두면 채광은 되지만, 통풍은 불가능하다. 창을 닫아도 자연적인 채광과 통풍이 되는 것은 창호지 창 밖에는 없을 것이다.
한국건축의 자연관
이처럼 터잡기부터 구조틀 짜기, 지붕 덮기, 창문달기 까지, 건축의 전 과정을 통해 가장 중요한 기준은 자연에 대한 존중과 대응이었다. 한국건축에서 자연은 극복하고 정복할 대상이 아니라, 인간 세상의 모든 모범이요 이상적인 기준이었다. 道家에서 말하는 ‘無爲自然’은 원시상태의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말이 아니라, 자연의 이치와 같이 순리를 따르고 안정되고 깨끗한 세상을 이루자는 바램이었다. 또한 무작정 자연에 순응하자는 말도 아니었다. 性理學에서는 자연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天人合一’ 정신을 강조한다. 인공적인 건축을 만들더라도 자연의 이치를 따라 기술을 개발하고, 자연의 경치를 인공적인 실내로 끌어들여 자연과 건축이 하나가 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또한 성리학에서는 節儉의 정신을 강조한다. 모든 자원과 공간을 아끼고 절제하라는 윤리적 정신이다. 이는 곧 자연을 아끼고 존중하는 정신과도 상통한다. 풍수지리설에 따른 터잡기와 건물배치는 자연을 손상시키지 않고 이용하는 고도의 기술이요 가치관이었다. 휘어진 나무를 그대로 건물에 사용하는 것은 자연의 성질을 최대한 활용하고 절약하는 방법론이었다. 황토벽이라든가 창호지 창은 자연적인 재료의 특성을 극대화한, 환경과 공존할 수 있는 과학적 재료의 개발법이었다. 모두가 자연을 이용은 하되, 자연에 해를 가하지 않는 현명한 지혜요 지속가능한 기술들이었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이 환경을 파괴하고 있는 현대문명이 경청해볼만한 전통건축의 자연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