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일
1997.06.18.
출처
건축사지
분류
건축비평

1. 프로그램에 대해서

인간이 인간에 대한 봉사 – 서비스를 돈으로 사는 가장 자본주의적인 행태를 즐기는 곳이 호텔이다. 여기에는 돈낸 만큼 대접받고 즐기겠다는, 그래서 일상에는 가능하지 않는 우아함으로 가득하다. 특히 전주같이 크지 않은 지방도시의 특급호텔이란 숙박보다는 호텔에 딸린 식당과 커피숖, 사우나와 연회장, 특히 밤 유흥의 꽃인 나이트 클럽이 더욱 중요한 기능으로 자리잡는다. 지방도시에서 특급호텔이란 ‘고급 대중문화’의 상징이요, 특별한 체험이 일어나는 가상현실의 장소가 된다.
전주 리베라호텔은 지방도시의 특급호텔로서 충실한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객실 164실의 규모에 비해 지하의 나이트클럽과 1층의 연회실들은 크고 풍부한 공간을 가지고 있다. 저층부의 식음료부는 마치 마방진 퍼즐을 풀 듯이 한치의 오차와 여유도 없이 치밀하게 짜여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시설들은 비교적 여유있는 공간을 확보했고,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효과적인 전망을 얻었으며, 품위를 잃지않은 인테리어 디자인으로 고급스러운 실내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1층의 연회부 부분은 2개의 대소연회실이 매우 유연하게 분할될 수 있도록 계획됐으며, 넓은 복도는 리셉션 공간으로 활용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 호텔이 품위를 지킬 수 있는 또 다른 비법은 숨겨진 서비스 부문에 대한 각별한 배려다. 대지의 앞 뒤 레벨 차이를 이용해 지상층이 된 뒷면의 반지하1층부터 1-2층에 이르는 부분은 호텔의 관리부와 주방, 서비스 동선부분이다. 보통 호텔의 관리부란 어두운 지하공간에 박혀있기 일쑤지만, 이 호텔은 별도의 그럴듯한 현관을 둔 정식의 사무공간이며, 효율적으로 설계된 서비스 복도는 각 주방과 식당들을 연결하고 있다. 보통을 넘는 수준의 종업원용 라커실이나 샤워시설, 종업원용 식당시설 들은 여기서 근무하는 200여 종업원들에게 긍지와 자부심을 주기에 충분하다. 프라이드를 가진 종업원들은 호텔 손님들에게도 당당하면서도 품위있는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건축가는 고급스런 서비스를 판매하는 곳이라는 호텔건물의 기본적 프로그램을 명확하게 인식했으며, 각부분 공간들은 충실하게 프로그램을 실현하고 있다.
호텔과 여관의 차이는 무엇일까? 침실의 평면만 본다면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둘다 트윈침대가 있고 독립된 욕실이 있으며, TV와 간단한 소파 세트가 놓인다. 실내장식적인 면에서도 그다지 차이가 없다. 그러면서도 숙박비는 최소 3배 이상이다. 호텔의 식당과 시중의 패밀리 레스토랑의 차이는 무엇일까? 같은 음식 메뉴, 오히려 더 호화스러운 시증 식당의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호텔 청구서에는 세금과 봉사료가 더 부가된다. 그만큼 비싼 까닭은 무엇인가?
호텔은 각종 서비스 시설들이 모여있는 위락의 도시적 집합체다. 이점이 근본적으로 숙박업을 주종으로하는 여관이나, 요식업만을 하는 시중 식당과 차이다. 도시에는 주거와 상업시설과 위락시설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을 연결하는 길이 있고, 자유롭게 서성일 수 있는 광장이 있으며, 스스럼없이 쉴 수 있는 공공 공원이 있다. 마찬가지로 호텔 안에는 품위있는 숙박 요식공간 말고도 도시적 맥락을 갖는 가로공간이 있어야하고, 공공적인 로비와 정원이 있어야 한다. 호텔 이용자는 자신이 이용하는 부분시설의 이용료 뿐 아니라, 호텔이 소유한 인프라 시설의 사용료까지 부담해야 한다. 호텔 이용료가 비싼 이유다. 또한 특급호텔이란 공공적인 인프라 시설을 충분히 구비하고 있는 호텔의 등급이리라.
프로그램의 측면에서 리베라 호텔은 개별적이고 상업적 프로그램을 밀도있게 실현하고 있지만, 공공적인 프로그램은 누락되었거나 약화된 것으로 보인다. 부분시설들의 수요를 충족시키는데 주력한 결과 복도는 최소화됐으며 로비는 축소되었다. 전면과 후면의 레벨이 한층 차이가 나기 때문에, 적어도 로비가 두 레벨의 차이를 수용할 수 있도록 입체적으로 변화될 만도 한데, 다분히 평면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또한 일층과 이층을 연결하는 주계단은 비상계단 같이 옹색하게 처리되었다. 결과적으로 매우 공공성이 큰 저층부 – 지하1층부터 지상2층까지-를 시각적으로 연결시켜주는 주공간이 부재하게 되었다.
저층부에서 공공적인 주공간은 물론 인프라 공간도 발견하기 어렵다. 설계부터 완공까지 주어진 시간은 20개월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몇 달이 채 안되는 설계기간은 지하의 주차공간부터 시작된 구조체계의 한계 속에서 요구되는 모든 위락 편의시설을 효과적으로 배열하고 삽입하는데 만도 부족한 기간이었을 것이다. 이나마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시설을 배분한 것을 성공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혹시 공공공간의 축소라는 프로그램이 건축주 혹은 건축가의 의도적 선택은 아닌가? 지방도시에서 호텔이란 아직 공공적 인프라 공간보다는 부분적인 단위시설들의 질만 보장되면 된다고 본 것은 아닌가? 만일 그렇다면 이는 단기적인 안목일 것이다. 현재 전주에서 리베라 호텔이 최고급인 것은 사실이지만, 언제까지 최상일 수는 없다. 전주의 발전과 더불어 더 크고 호화로운, 혹은 풍부한 공간을 가진 호텔이 앞으로 들어설 것이다. 장기적인 눈으로 본다면, 리베라호텔의 건축적 경쟁력은 물론 상업적 경쟁력도 저하될 것이다. 관광지에 서는 리조트 호텔은 급변하는 시류에 따라 일시적인 명성만을 갖기 일쑤다. 리조트의 행태와 요구되는 시설의 질이 매우 빠른 속도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시에 서는 비즈니스 호텔은 경우가 다르다. 오히려 오래된 호텔들이 그 도시의 명소로 각광받고 가장 비싼 사용료를 받아도 당연시 하는 것을 외국도시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단지 오랜 전통만 있다고 명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선 서비스의 질과 호텔 경영에 대한 고유한 노우하우가 축적되어야한다. 그에 못지않게, 그 호텔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공공공간이 존재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리베라 호텔의 도시적 생명력을 낙관하기는 어렵다.

2. 도시의 해석에 대해

리베라 호텔은 전주 도심과 남원을 잇는 6-8차선의 큰 도록변에 위치한다. 주변에는 오목대를 비롯해 전동 한옥군과 전주향교 등 전주를 대표하는 명소들이 포진해 있다. 호텔 앞면 도로는 원래 전주역 (현 시청사)을 출발하여 남원 여수로 향하는 전라선 철도가 깔렸던 곳이다. 전주시청 후면을 지난 남북로는 호텔 부근에서 큰 곡선을 그리며 남원 쪽으로 휘어진다. 앞으로는 남북로가 뒤로는 전동 한옥군이 둘러싼 가운데 남북으로 좁고 긴 대지를 가진다. 역사환경적 측면에서 뿐 아니라 지리적 위치에서도 전주를 대표할 장소에 서있다.
건축가가 중요시한 주변환경은 남쪽 오목대와 뒤편의 한옥주거군이었다. 오목대를 향해서는 남측 모퉁이의 객실 창을 열어 경관으로 끌어들인다. 뒤편 한옥주거군은 최근 한옥보존지구의 규제가 풀려서 앞으로 급속히 사라질 것으로 예견했다. 전주의 역사적 집합적 명소가 사라질 아쉬움과 함께, 입자가 작은 주거지역에 대응해 고층부의 매스를 둘로 분절시키고, 저층부의 입면을 3부분으로 변화시켰다. 특히 저층부 앞면을 매시브한 벽면으로 처리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뒷면은 많은 창으로 내어 표정을 달리했다. 앞으로 조성될 근린상가들의 분위기를 예상한 처리다. 물론 뒷면 저층부가 호텔의 관리와 서비스부분이기 때문에 기능적으로도 적절한 처리였다.
호텔 건물의 위치잡기에는 의문이 있다. 건물은 앞면에 최대한의 전정을 만들고 뒷면 주거지역에 바짝 붙어있다. 그러나 앞면 남북로는 충분히 넓어서 전정의 규모는 부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남북로에 바싹 붙어 세우고 주거지역 쪽으로 후정을 열었으면 도시와의 연계가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앞면은 자동차의 스피드에 맞게 도시의 시각적 기념물로 존재하게되고, 뒷면은 보행자의 스케일에 맞는 중요한 옥외 공공장소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됐다면, 현관 2층에 달린 케노피와 돌출된 칵테일바의 매스도 더욱 도시적인 요소로 환원됐을 것이다. 뒷면 주거지역과의 만남은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매스를 분절하고 입면을 작은 입자로 나누었다 하지만, 뒷면 도로에 너무 바짝 붙음으로써 좁은 인도는 옹색해졌다. 또 앞으로 뒷면 도로가 자잘한 상업몰로 바뀔 것을 예상했다면, 지하 중층의 처리도 약간 셑백시켜서 상가의 표정을 수용할 수 있었으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전주’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조선왕조 전주이씨들의 본향, 그리고 다른 어느 도시보다도 비교적 많이 남아있는 역사적 유구들이다. 따라서 전주에 세워지는 건물들은 이른바 ‘전통적 요소’에 대한 압력과 유혹을 쉽게 받는다. 옛 철도역사에 세워진 전주시청사는 풍납문의 이미지를 차용한 패스티쉬다. 그래서 남한의 시청사 가운데 시민들이 가장 애착을 갖는 건물이라는 평가도 뒤따른다. 특히 한옥군이 밀집한 전동과 교동에 세워질 건물들은 한옥지붕에 대한 압력에서 해방되기 어렵다. 자세히 살펴보면 90년대 이 지역에 지여진 건물들 대부분이 압력에 순응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리베라 호텔에 적어도 한옥지붕을 씌우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다. 도시의 건축물이 과거 역사의 흔적을 기억해야 함은 정당한 논리다. 그러나 기억에 사로잡혀 새로운 도시의 지층을 만들지 못한다면, 건축의 생명력은 물론 도시적 생명도 단절시키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기억들을 어설프게 재현하고 있는 건축들로 전주가 채워진다면, 적어도 20세기 후반의 전주의 건축사는 공백기가 될 것이다. 그 공백을 메꿔줄 건축의 하나로 리베라 호텔이 기록될 것이다. 건축가는 이 호텔의 형태가 한국의 목가구의 이미지를 따르고 있다고 설명하고, 앞면 캐노피가 한옥지붕의 형상을 추상화한 것이라고 부연하지만, 그런 배경설명은 심의용에 가깝다. 이른바 전통적 형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때만이 새로운 전통을 축적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호텔은 ‘전통적 요소 운운’ 하는 변명이 없더라도 충분히 전주적이며 충분히 새롭다. 전주로서는 큰 행운이다.
총 9층의 매스는 넓적하고 평평하다. 주변에서의 경관 확보나 인식성을 위해서 좀더 고층화하고 층면적을 줄여서 타워형으로 세우는 것도 유력한 대안이었다고 한다. 특히 저층부를 2층에서 마무리하다 보니 둔탁한 매스가 됐다고 아쉬움을 표한다. 그러나 오히려 지금의 결과가 더 전주라는 도시에 어울린다고 보인다. 이 지역, 이른바 백제계 건축이 가져왔던 매우 중요한 전통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충청 전라지역의 지형적 평탄성은 수평적 건축물들을 만들어왔다. 평활한 대지에 밀착되도록 기단을 낮게 하고, 칸살이도 옆으로 길게 잡아 전체적으로 수평적인 형상들을 추구해왔다. 경상도 지역의 수직적 건축들과는 대조를 이룬다. 비록 우연의 결과이기는 하지만, 리베라 호텔의 수평적 형상은 이 지역 건축의 전통, ‘평지성’을 새롭게 구현한 하나의 가능성이다.

리베라 호텔에서는 어떤 매력적인 내부공간이나, 강렬한 도시적 메시지를 발견하기 어렵다. 같은 작가가 보여주었던 인터컨티넨탈 호텔의 원형 아케이드나, 도시 환경과 밀접하게 만나고 있는 몬트레이 쉐라톤 호텔과 같은 도시적 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단아하고 세련된 형태,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맞추어진 시설군의 배열, 상업적 목적을 충족시키는 가운데서도 군데군데 삽입된 작가의 목소리들 만으로도 건축가 김병현의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김병현이 건축 설계를 대하는 태도는 지극히 합리적이다. 우선 건축주의 사업적 목적을 충족시켜야 하고, 그 속에서 개념화 시켜 나간다. 건축가의 과도한 욕심은 절제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계획과 시공과정에서의 완결성을 추구한다. 깜짝 놀랄만한 새로움을 보여주기 보다는 하나하나 성취된 텍토닉한 건축이 그의 이상이다. 그의 건축적 개념 속에서 전주 리베라 호텔은 그다지 큰 흠없는 작품으로 자리매김될 수 있다. 또 생경한 개념이나 이론에 사로잡힌 미완성 건축들의 치기에 비한다면, 질적으로 훨씬 풍부하며 전주라는 도시의 품위를 한층 높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는 완숙한 경지에 들어선 중진 건축가에 대한 기대는 본인의 생각과 다를 수밖에 없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