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앞, 가로수길, 북촌 한옥촌, 경리단길은? 근 10년 동안 떠 오른 서울의 핫 플레이스들이다. 일제기에 서울에서 떠오른 지역이 명동과 종로 일대였다면, 개발시대였던 20세기 후반은 신사동이나 강남역 일대, 방배동 카페촌 들이었다. 당시에는 신흥지역이었지만, 이제는 오래된 상권으로 자리 잡았고, 계속 새로운 명소들이 등장하면서 도시는 발전해 나간다. 거대한 숲의 변화와 마찬가지로, 도시의 생태계 역시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성장과 변화를 통해 소득을 창출하고, 시민들의 삶을 담아왔다.
글머리에 언급한 신흥 명소들은 공통적인 성장 과정을 밟아왔다. 이들은 각각 젊은 예술, 작은 디자인, 전통과 역사, 다문화 상권 등 강력한 잠재력을 개화시킨 곳이다. 대규모 개발에서 소외된 채 작은 상점들과 주택들이 가득하여, 소형 상업이나 문화시설을 수용하기에 적합한 곳들이다. 클럽 데이와 같은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형성되고, 개성 넘치는 스몰 패션 스트리트가 만들어졌으며, 특색 있는 동네와 작은 식당가들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들 거리와 동네는 극심한 변화의 와중에 휩싸였고, 도시적 생태계가 파괴되어 생존마저 어려울 지경이다. 홍대앞은 더 이상 새로운 젊은 문화의 발신지가 아니며, 가로수 길에는 패션 샵이나 거리 식당이 사라졌고, 북촌 역시 고즈넉한 동네 분위기가 없어졌다. 그 대신 대기업의 프렌차이즈 업소나 프래그 샵이 자리를 잡았다. 모두 마찬가지 모습이다. 그 파괴의 과정은 전형적이다. 명소가 되면 인파가 꾀고, 이를 수용할 군소 상권이 형성된다. 상권의 이익이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면, 임대료는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이 불균형을 부채질하는 이들은 기업화된 프랜차이즈 업소들이다. 이들은 더 큰 이익을 위해, 또는 기업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비싼 임대료를 아낌없이 지불하고, 아예 땅을 사서 건물을 신축하기도 한다. 버틸 수 없는 군소 상권은 인근 동네로 이주할 수밖에 없고, 새 장소에서도 동일한 성장과 파괴의 과정을 반복한다.
홍대앞은 10년간 임대료가 5배 이상 올랐고, 인근 연남동이나 합정동으로 이주한 군소 상권 때문에 새 동네의 집값도 2년 만에 2배로 뛰었다. 가로수 길에서 밀려난 이들은 뒷골목을 파고들어 ‘세로수길’을 만들고 있다. 북촌의 지가는 10배 이상 뛰어 서촌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는데, 서촌마저 1년 새 2배의 임대료를 내야한다. 군소 상권이 이주하여 비워진 터들은 어김없이 대자본과 그 동족들의 차지가 되었다. 이러한 도시 생태계 파괴의 기간이 급속히 단축된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홍대앞은 15년 동안 명성을 누리다 문화백화현상을 맞았고, 가로수길 10년 만에 세로수길이 되었으며, 북촌은 5년 만에 성격이 바뀌었다. 서촌은 떠오르기 시작한지 불과 3년 만에 위기를 맞고 있다. 여러 곳에서 학습을 한 대형 자본들이 지역의 명소화와 동시에 침투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30년 전통의 대학로마저 소극장들이 문을 닫고 대형 상권에 자리를 내주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형 자본의 위력 앞에 문화와 낭만을 설 곳이 없다.
가치 있는 환경 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듯이, 특색 있는 동네의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선 소규모 필지를 합병하여 대형 시설을 개발하는 행위를 막아야한다. 또한 그 지역의 잠재력에 적합한 업종만 허용하고 유도하는 지역계획도 필요하다. 그리고 중소기업을 보호 육성하는 중소기업육성법과 같이, ‘작은 거리 육성법’이나 ‘약한 동네 보호법’ 제정과 같은 획기적인 정책이 필요한 때다. 이 작은 동네나 길을 잃으면,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는 어느 곳이나 똑같은 매력 없는 곳으로, 비정한 자본의 논리만 존재하는 숨막히는 곳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