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일
2019.08.06.
출처
서울신문
분류
건축문화유산
원문 링크

[김봉렬과 함께하는 건축 시간여행] <8> 제주 서귀포시 알뜨르 비행장

조선을 강제 합병한 일제는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1937년 중일전쟁을 도발한다. 뒤이어 국가총동원법을 만들어 한반도를 군수기지화해 무자비한 수탈을 감행한다. 조선 청년 40만명이 징병으로, 72만명은 징용으로 끌려가 이역만리에서 죽거나 죽을 고생을 했다. 특히 제주도는 육지가 당한 수탈에 더해 중국 침략의 전초기지로, 일본 본토 방어의 최전선으로 이중 삼중의 피해를 입게 됐다.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다시 반복된다.” 일제가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에 남긴 알뜨르 비행장은 제주를 전쟁의 전초기지로 만든 그들의 만행에 분노와 함께 역사적 수치심까지 일으킨다. 일제는 건설 노역에 매일 제주 주민 5000여명을 강제 동원했다. 제주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다시 반복된다.” 일제가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에 남긴 알뜨르 비행장은 제주를 전쟁의 전초기지로 만든 그들의 만행에 분노와 함께 역사적 수치심까지 일으킨다. 일제는 건설 노역에 매일 제주 주민 5000여명을 강제 동원했다.
제주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육중한 콘크리트 구조물에 띠 입혀 위장한 비행기 격납고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넓은 감자밭에 수십 개의 풀무덤들이 작은 오름과 같이 펼쳐져 있다. 자세히 보면 육중한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띠를 입혀 위장한 비행기 격납고들이다. 그 옆에 마련된 넓은 벌판은 과거 활주로의 흔적이다. ‘아래 펼쳐진 벌판’이라는 뜻의 ‘알뜨르’ 비행장은 1937년 당시 중국의 수도 난징을 폭격하기 위한 징검다리였다. 난징 폭격은 일본 나가사키현에 기지를 둔 오무라항공대가 담당했다. 나가사키에서 이륙한 항공대는 난징을 폭격하고 알뜨르에 착륙, 연료와 폭탄을 보충해 이튿날 다시 난징을 폭격한 후 나가사키로 귀환했다. 총 36회 출격, 300여t의 폭탄을 투하해 난징의 도시 시설 89%를 파괴했다. 폭격에 뒤이어 진주한 일본 육군은 30만명의 민간인을 학살하고 8만명의 여성들을 강간했다. 아직도 중일 간에 해결이 안 된 ‘난징대학살’이다.

1941년 일제는 하와이 진주만 공습으로 태평양전쟁을 도발했다. 초기에는 우세했지만 곧 미드웨이 해전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반격에 밀리게 된다. 1944년 4월, 80일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미군은 오키나와를 함락했다. 오키나와 전투에서 미군 1만 5000명, 일본군 6만 5000명이 전사하고 섬 주민 20만여명 중 12만명이 사망했다. 그해 11월부터 대대적인 일본 본토 공습이 시작됐다. 미군의 이른바 ‘몰락작전’의 시작이었다. 이 작전은 공습으로 일제를 무력화한 후 일본 규슈와 혼슈를 차례로 점령한다는 계획이었다.

일제가 침략 전쟁 전초기지이자 본토 방어선으로 활용한 제주 알뜨르 비행장 내 우뚝 솟아 흉물스럽게 남은 건축물은 관제탑 기능을 했던 곳으로 추정된다.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 일제가 침략 전쟁 전초기지이자 본토 방어선으로 활용한 제주 알뜨르 비행장 내 우뚝 솟아 흉물스럽게 남은 건축물은 관제탑 기능을 했던 곳으로 추정된다.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이에 대응해 일제는 전원 죽음으로 본토를 수호한다는 ‘결○호작전’을 펼친다. 일본 본토를 1호부터 6호까지 나누어 방어하고 7호는 제주도가 맡는다는 내용이다. 일제는 미군이 곧 제주도에 상륙하리라 예상했고, 제주도를 본토 방어의 최전선으로 삼았다. 제주도는 이른바 ‘결7호작전’의 작전지가 돼 군사시설을 건설하는 대대적인 노역에 시달린다. 알뜨르 외에도 여러 곳에 군사비행장을 만들고 훈련장과 포대, 대피소, 특공대 기지 등을 섬 전체에 건설했다. 대부분의 군사시설은 지하로 파들어 간 진지동굴이었는데, 제주도 내 총 360여개의 오름 중 160여개에 지하 진지를 구축했다. 58군 사령부 예하에 5개 사단, 보병 5만 8000명, 포병과 기갑부대 1만 6000명이 주둔했다. 이는 한반도 전체에 주둔한 군대보다 많은 숫자이며 10만명이 주둔했던 오키나와에 육박하는 규모였다.

상공에서 내려다본 알뜨르 비행장 곳곳에는 일제가 폭격기를 숨겨 두기 위해 만든 격납고가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제주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 상공에서 내려다본 알뜨르 비행장 곳곳에는 일제가 폭격기를 숨겨 두기 위해 만든 격납고가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제주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모슬포 마을 주민 5000여명 강제 동원해 격납고 38개 지어

알뜨르비행장이 있는 모슬포 일대는 결7호작전의 핵심지역이었다. 비행장은 1944년부터 활주로를 늘리는 등 대대적으로 확장했고 이때 지은 격납고 38개 중 20개가 잔존하고 있다. 매일 주민 5000여명을 강제 노역에 동원한 결과였다. 격납고는 폭 10m, 길이 20m, 높이 4m의 반원통형 구조로, 전투기에 꽉 끼는 옷과 같은 최소한의 크기이다. 30~80㎝ 두께의 매우 견고한 철근콘크리트 구조물로서, 공중 관측을 피하기 위해 지붕에 풀을 덮어 위장했다. 여기에 숨긴 전투기는 일본의 주력인 제로센이었다. 제로센은 기체의 무게를 과감하게 줄여서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었고 개전 초기에 우수한 전과를 거두었다.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은 무게를 줄이기 위해 저출력 경량엔진을 장착하고 보호용 장갑판을 제거했다. 그래서 민첩함은 얻었으나 속도가 느려 쉽게 노출되고 적기의 공격에 취약한 문제가 있었다. 전쟁 말기에는 급기야 자살특공대인 가미카제의 운송수단으로 전락하게 된다. 알뜨르의 격납고들은 모두 가미카제 특공대를 위한 위장 보호시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