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후반에 등장한 신진 건축가들을 국내파와 해외파라는 이분법으로 분류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자신의 건축세계를 외국의 대학에서 정립한 경우는 해외파라 할 수 있지만, 김승회와 같이 국내와 국외에서 대학과 실무를 고루 경험한 경우 분류는 어렵다. 어쩌면 국내외를 구분하지 않고 수학하고 경험하는 과정, 그래서 국내의 건축적 현실과 외국의 이상을 결합하려는 시도가 새로운 경향이라 할 수 있다. 김승회는 서울에서 대학원까지의 학력과 설계사무실 경력을 쌓았으며, 미국에서 건축대학원과 유수한 사무실 조직 경험을 쌓았다. 귀국해서 들어간 곳은 대조직 사무소였고 95년부터 독립해서 활동하고 있다.
다채로운, 그러나 대단히 치밀한 경력과 마찬가지로 독립 이후 보여주는 그의 건축세계에는 단단한 일관성이 자리잡고 있다. 현란한 이론의 도입이나 신경향의 방법론으로 건축매체의 각광을 받았던 여러 신진 건축가들과는 달리, 서울의 한 구석에서 조용히 내실있는 작업들을 계속해오고 있다. 특이한 사무실 이름 ‘경영위치’의 의미를 물을 때마다 ‘경영위기’라고 자조적인 대답을 하면서도 앞으로의 비약을 위한 탄탄한 정지작업을 하고있다.
김승회와 그 동료들의 현재 작업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유형화’에 대한 관심이다. ‘농어촌 공공보건의료기관 설계경기’에 당선된 이후, 근 18개소에 이르는 지방보건소 건물을 설계하면서 반원형 보울트 지붕을 가진 긴 선형의 매스들이 중첩시켜 건물군을 이루는 유형학적 방법을 택했다. 그들은 건축물 간의 차이와 개성보다는 동질성과 유형적 변형을 택했다. 이런 어프로치를 통한 건축물들은 유형이 같는 획일성 복제성으로 인해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 쉽다. 이미 전국 곳곳에 있는 교보빌딩이나, 표준설계도에 의해 건설된 수많은 공립초등학교들이 그 부정적 사례들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더욱 선입견을 갖기 쉽다. 그러나 알도 로시가 일본에 세운 일 팔라쪼호텔은 이탈리아 뻬루지아의 상업건물군과 동일한 유형적 근원을 갖지만, 또 다른 방법론적 가능성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문제는 방법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유형 자체의 정당성과 완결성이며 유형을 활용하는 건축적 변용에 있다.
그런 점에서 김승회의 유형은 건실하며 합리적이다. 그가 보여준 반원 보울트의 어휘는 비단 보건소용 뿐 아니라, 일련의 주택작품에도 적용할 정도로 폭넓고 근원적인 것이다. 또한 단위 형태소는 구조와 재료, 기능과 형태의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전체로 통합되어 있다. 또한 기능군과 매스를 일체화 시키면서, 주어진 대지조건과 프로그램에 따라 적절히 변용시킨다. 또한 유형을 이루는 형태 요소들은 내부의 기능으로부터 출발한 것들이며, 외부에서도 쉽게 인지할 수 있도록 세부형태와 색채와 재료를 달리한 집합체를 이룬다.
기눙적 요소의 형태화는 김승회의 또 다른 관심사다. 대학원 시절, 지금은 한양대 교수로 있는 정인하와 공동으로 건축대전에 출품하여 우수상을 수상한 작품을 본 적이 있다. 집합주택으로 기억하는데, 형태소는 다르지만, 지금의 작업들과 상통하는 내용들을 내포하고 있었다. 계단을 포함하는 코어체들을 독립시키고 특징적인 색채들로 독자화한 작품이었다. ‘서울대학교 환경관 현상설계’ 당선작은 대학원 시절의 생각들이 세련되고 구체화된 작업으로 보인다. 자연 경사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떠있는 수평면들, 옥상위로 돌출되면서 강한 유채색채를 가진 계단실 매스들, 그리고 구조적 수열을 이룬 기둥들. 이 건물은 세가지 기본적인 요소들이 교직하면서 이루는 집합체다.
물론 현재의 작업은 시작일 뿐이다. 따라서 유형학적 작업이 갖는 여러 가지 한계와 위험성도 극복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는 건축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읽을 수 있는 혜안과, 건강하고 따뜻한 방법적 대안들과, 소박하면서도 정밀한 훈련된 능력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