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펼치면 ‘인터넷, 정보의 바다로 떠나자’ ‘○○○와 함께 떠나는 인터넷여행’ 등의 자극적인 박스기사들이 매일같이 실리던 지난 여름, 동료교수들은 “정보화의 배를 탈거야, 도태될거야” 위협하면서 반강제적으로 인터넷 프로그램들을 깔아주었다. 컴퓨터를 쓸만한 타자기나 계산기 정도로 이용하던 소극적인 자세를 버리고 컴퓨터 통신과 인터넷의 세계로 빠져들자고 작심한 것은 이번 학기초. 온갖 언론들의 협박은 전국의 대학을 인터넷 사용도에 따라 줄 세우는 데까지 마수를 뻗치니, 대학측에서도 근거리 통신망들을 설치해 주면서 인터넷 사용을 적극 권장했다. 이른바 ‘정보와 지식의 파수꾼’으로서 뒤쳐지지 않는 교수가 되기 위해서도 하는 수가 없었다.
마우스를 넷스케이프 아이콘 위에 올려놓고 한 번 두드린다. 화면에는 이내 “넷스케이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영어문귀와 함께 영자신문 같이 편집된 사진과 글씨들이 몇장에 걸쳐 전개된다. 야후 알타비스타 인포식크 리코스 …….. 줄잡아 20개가 넘는 검색엔진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다. 여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운이 좋을 때는 5분, 그렇지 않으면 10분. 이제 분야별로 제시된 항목 가운데서 ‘예술과 인문학’ 항목을 선택하고, 그 가운데 ‘건축’을 선택하고, 다시 ‘건축가 홈페이지’ 항을 선택하고, 최종적으로 ‘건축가 렘 쿨하스’를 선택한다. 한 번의 선택에 걸리는 시간은 3분 정도, 화면이 4번 정도 바뀔려면 15분이 필요하다.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 그것도 매우 일반적인 수사와 눈에 익은 사진으로 가득한, 그다지 신선하지도 않은 내용을 얻기 위해 사용된 시간은 총 20분. 서가에 꽂혀있는 책을 뽑는데 걸리는 시간 30초를 아끼려다 허비해 버린 시간들이다. 그나마 연결상태가 좋을 시간의 이야기다. 러시아워 때는 필요한 정보에 도달하려면 1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대학 시절 읽었던 미카엘 엔데의 소설 ‘모모’에는 회색의 시간도둑들이 등장한다. 인터넷의 흥미진진한 내용들을 찾아 이리저리 헤엄쳐 다니면서도 늘 시간이 아깝다는 느낌을 벗어나지 못하고, 컴퓨터를 끌 때는 “오늘도 인터넷이란 시간도둑에게 당했구나”하는 후회에 젖는다. 당구를 처음 배울 때, 한나절을 꼬박 지낸 후에 당구장을 나서며 돈과 시간과 체력을 버린 자괴감에 빠지듯이. 이쯤되면 마치 세계를 책상 위에 담아올 것 같았던, 어떤 학문적 궁금증과 자료를 제공해 줄 것 같이 기대했던 인터넷은 당구나 고스톱 같은 심심풀이에 불과한 것이 되고만다. 물론 최근에 열릴 전시회나 학술회의 소식들은 약간의 도움이 되지만, 그 이상의 고급정보는 아예 등록이 안돼 있거나, 비용을 지불해야만 접근할 수 있다. 아직 인터넷은 내게 시간도둑 이상의 존재가 아니다.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지내야하나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커다란 위안일지 모르지만. 그러나 오늘 역시 그 시간도둑은 내 소중한 3시간을 빼았아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