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일
2003.12.07.
출처
미확인
분류
건축론

한국의 현대미술은 인사동에서 안국동을 거쳐 경복궁 옆 사간동과 삼청동에 이르는 길에서 태어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과천 현대미술관이나 한남동에 세워지는 삼성미술관, 평창동에 있는 몇 개의 갤러리를 제외한, 한국의 대표적인 화랑과 미술관들이 이 거리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건축가들이 설계하기를 가장 선호하는 건물이 바로 미술관 건축이다. 건축이 공학과 예술의 만남이라고 한다면, 그 예술성을 미술관 건축에서 가장 잘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80년대 까지만 해도 이 땅에서 미술관 건축을 설계한 행운의 건축가는 거의 없었다. 국립미술관은 하나면 족했고, 먹고 살기에 급급했던 시대에 개인이 미술관을 건립한다는 건 환상에 불과했다.
80년대 중반부터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재벌가의 부인이나 딸 며느리들이 경쟁적으로 개인 미술관을 경영하기 시작했고, 덩달아 달아오른 미술시장의 활성화 덕분에 크고 작은 상업미술관들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미술관의 경영 경쟁은 곧 바로 미술관 건축 경쟁으로 이어졌다. 미술시장의 특성상, 건축도 미술품과 같이 예술성이 높아야 하기 때문이다.
인사동에서 삼청동까지 미술관 거리의 미술품들을 감상하면서 덤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가들의 다양한 건축 작품들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본격적인 미술관 건축 감상을 시작하기 전에 인사동에서 우선 살펴보아야 할 건물이 두 채가 있다.
수도약국에서 낙원동으로 가는 길에 오래된 한옥이 한 채 숨어있는데, 정식 명칭은 ‘민익두가옥’이다. 1930년대에 지어졌을 때는 원래 쌍둥이와 같이 똑같은 한옥 두 채가 앞뒤로 나란히 놓였었는데, 뒤 채는 철거되었다. 최초의 한국인 건축가로 추앙받는 박길룡이 특별한 애정으로 설계한 현대식 한옥이었다. 옛 화신백화점의 건축가인 그는 전통 한옥들을 현대생활에 맞도록 개조하는데 많은 노력을 쏟아 이른바 ‘개량한옥’들을 많이 보급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작품이 민익두 가옥이다. 화장실과 욕실을 집 내부에 설치하였고, 집안에서 편리하게 이동하기 위해 복도를 설치하는 등 한옥에 일대 변화를 가져왔다.
덕성여대 맞은 편 큰 길 가에는 천도교 중앙회관인 수운회관이 이국적인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붉은 벽돌조의 로마네스크 풍의 이 건물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헤이가 설계한 작품이다. 민족종교인 천도교의 중앙본부가 일본인 건축가에 의해, 그것도 유럽의 옛날 양식으로 건설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근대사의 아이러니이다.
인사동 거리의 풍경을 바꾸어 놓은 미술관 건물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인사아트센터이다. 인사동 거리에서는 꽤 높은 층수인 6층 높이로 건축된 이 건물을 설계한 이는 프랑스 건축가 쟝 미셀 윌모트이다. 그는 인천국제공항의 인테리어를 담당한 디자이너로, 그리고 평창동 가나아트센터를 설계한 건축가로 유명하다. 인사아트센터는 전통적인 거리 풍경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미술관 복합건물의 기능을 성공적으로 실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선 길에 면한 면에 3층 높이의 벽을 세우고, 본 건물은 뒤로 물려 세워, 가로벽과 본 건물 사이에는 입구 마당이 생겼다. 인사동 길에 면한 건물들이 3층 정도로 낮기 때문에 높이를 맞추려고 고안한 결과다. 또한 한옥의 대문간과 같은 공간을 얻는 효과도 거두었다. 극히 현대적인 재료와 공법으로도 전통적인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건물이다. 그러나 이 건물의 백미는 역시 내부공간 구성에 있다. 몇 개의 층으로 나누어진 전시장들을 투명 엘리베이터와 시원한 계단을 통해 연결하고 있어서, 전체 내부공간을 하나로 엮으려는 고도의 수법을 보인다.
인사아트센터에서 안국동 쪽으로 올라가면, 가나아트샵과 노화랑이 나타난다. 원래 서있던 평범한 건물들을 리모델링하여 독특한 내부공간을 만들었다. 시원한 통유리를 달아 인사동 길에 내부를 노출시키고 있는 가나아트샵은 젊은 건축가 한만원의 작품이다. 그 옆의 노화랑은 건축가 배병길의 작품으로, 가나아트샵과는 대조적으로 외부에 대해 폐쇄적이며, 내부에는 곳곳에 작은 창들을 찢어서 여러 가지 모양의 빛을 유입시키고 있다. 비록 작은 공간들이지만, 두 건축가의 독특한 개성을 담고 있는 멋진 전시장들이다.
인사동 길이 끝나는 곳에서 미국외교관단지를 보호하기 위한 높은 돌담을 끼고 경복궁 쪽으로 향하면 사간동 길을 만나게 된다. 인사동과 사간동이라는 중요한 두 문화예술의 거리는 이처럼 외국인 거주지로 단절되어 있다. 그러나 이 무미한 거리에도 두 동의 건물이 있으니, 나지막한 백상기념관과 이 동네에서는 가장 높은 안국빌딩이다. 한때, 광복회관으로 건축되었던 안국빌딩은 근래에 리노베이션하여 원래의 모습이 변했지만, 원래 설계자는 고 정인국이었다. 해방후 1세대 건축가로는 보기 드물게 건축학자로서도 유명했던 정인국교수는 여의도 국회의사당의 설계에도 관여했고, 초창기에 근대건축을 서울에 실현시키기 위해 많은 연구를 한 인물이다. 안국빌딩 지하에도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의 전용 갤러리가 최근 오픈했으니, 인사동-삼청동의 미술관 거리에 한 점을 보탠 셈이다.
미국외교관 단지 맞은 편에는 한국일보 사옥 단지가 있는데, 그 가운데 노출 콘크리트로 된 원래의 사옥은 그 유명한 건축가 김수근의 작품이다. 이미 고인이 된지 18년이 되었지만, 서울 곳곳에 그의 명작들이 남아있을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60-70년대를 거의 독주했을 정도로 많은 작품들을 남겼으며, 공간사라는 설계사무소를 통해 배출한 제자 후배건축가들은 이제 한국건축계를 대표하는 주자들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민현식 승효상 류춘수 이종호 등 현재 손꼽히는 건축가들은 모두 공간사 출신이다. 한국일보 사옥은 김수근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각 층이 모두 삼각형으로 설계되었다. 대지의 모습에 맞추어 설계한 결과이다.
사간동 길 초입, 삼거리 한 가운데에는 동십자각이라는 아름다운 전통건축이 외롭게 서있다. 원래는 경복궁 담장의 동남쪽 모퉁이에 있던 건물인데, 도로를 확장하느라 궁궐 담장을 물리면서 이 건물만 분리되어 버렸다. 비참한 도시의 역사이지만, 동십자각은 사간동 문미술관 거리를 시작하는 이정표로 훌륭한 상징물이 된다.
동십자각 맞은 편에 서서 사간동 길을 시작하는 건물은 예상외로 어두운 색조의 벽돌건물인 출판문화회관이다. 이 거리에 즐비한 건축작품 가운데 가장 먼저 들어선 이 건물은 젊은 나이로 아깝게 세상을 뜬 건축가 홍순인의 대표작이다. 70년대 후반, 한창 서울에 유행하던 벽돌건축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이 건물은 이제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평범한 건물로 여겨지지만, 고생 끝에 요절한 홍순인과 같이 현재 발전한 건축문화의 초석이 되었던 작품이다.
본격적인 미술관 건물로 나타나는 현대갤러리는 현재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건축가 배병길의 작품이다. 배병길은 국제갤러리의 건축가이기도 하여, 이 거리에 두개의 작품을 남기는 행운을 얻었다. 현대갤러리와 국제갤러리는 모두 기존의 고만고만한 건물들을 리노베이션하여 완전히 새로운 건축으로 탈바꿈시켜, 예술의 차원으로 끌어올린 명작들이다.
현대갤러리 원래 건물의 외벽은 완전히 철거하지 않고 뼈대를 남겨 일종의 가벽으로 삼았고, 한 켜 물려서 미술관의 내부공간이 시작된다. 미술관 내부에서 바깥을 바라보면, 격자형으로 남은 가벽은 마치 여러 개의 액자와 같이 고궁의 풍경을 담아낸다. 기존의 미술관 내부는 작품 전시를 위해 일절 창을 뚫지 않았지만, 현대갤러리는 과감하게 창들을 설계해서 경복궁 옆이라는 입지의 특성도 살리고 기존 건물의 흔적도 남기는 데 성공했다. 현대갤러리는 그래서 꼭 안으로 들어가 보아야 진가를 알 수 있는 건물이다. 비록 전시된 작품은 감상하지 않더라도 창문을 통해 나타나는 고궁의 풍경 자체가 뛰어난 예술품이기 때문이다.
현대갤러리 옆에 세워진 금호갤러리는 재미건축가 김태수의 작품으로 현대갤러리와는 무척 대조가 되는 건축물이다. 김태수는 일찍부터 미국 동부에서 나름대로 명성을 얻으며 활동하다가 과천 현대미술관 설계로 금의환향한 건축가다. 화강암으로 마감된 금호갤러리의 외벽을 자세히 살펴보면, 맞은 편 경복궁 돌담의 이미지를 재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태수는 이 건물의 표정을 극도로 자제하면서 맞은 편 고궁의 정숙한 분위기에 순응하려 의도했다. 내부 공간도 톱라이트로 자연조명을 유입시키는 정통적인 미술관 구성법을 따르고 있다. 현대갤러리가 재기발랄한 젊은 화가라면, 금호갤러리는 완숙한 원로에 가깝다고나 할까?
금호갤러리를 끝으로 다시 국군병원의 긴 담이 거리의 흐름을 단절시킨다. 서울의 한복판, 그것도 문화예술의 거리에 웬 군용시설이냐 할지 모르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마지막 숨을 거두었던 유서 깊은 병원(?)이다. 한창 이전 논의가 진행 중이고, 병원이 이전하면 이 터에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을 짓자는 의견도 개진되고 있는 곳이다.
사간동 거리의 끊어졌던 흐름은 학고재 미술관과 그 뒤의 국제갤러리로 다시 이어진다. 미술관으로는 특이하게도 한옥을 개조하여 전시장으로 사용하는 학고재미술관의 의욕도 볼만하지만, 역시 배병길의 개성이 강하게 표현된 국제갤러리가 주목된다. 원래는 두 채의 평범한 주택건물이었다고 한다. 두 집을 연결하고 뚫고 잘라서 전시공간을 만들고, 길에 면한 면에는 유리박스를 씌워서 현재의 정면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 덧씌운 유리박스를 삐딱하게 설계하여 80년대 중반에 막 시작되었던 해체주의 건축의 대명사가 되었다. 물론 국내에서는 아직 본격적인 해체주의 건축이 소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공불량 아니냐?”는 오해를 사기도 했었다. 그만큼 과감한 시도였고, 국내 건축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킨 문제작이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국제갤러리 측은 고급 레스토랑을 마련하기 위해 건축가와 상의도 없이 대대적인 개조를 감행했다. 리노베이션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 건물이 다시 리노베이션되는 운명을 맞은 것이다. 그것도 10년만에.
사간동 길은 청와대 쪽 삼거리를 거치면서 삼청동으로 접어든다. 삼청동 길에도 크고작은 갤러리들이 확산되고 있지만, 기존 건물들을 개조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3년 전 이 거리에도 본격적인 미술관 건물이 신축되었다. 월전미술관과 그 옆의 상업건물이다. 건축가 김영회의 작품이다. 월전미술관은 한국적 이미지를 풍기는 젊잖은 건축이지만, 와인바 콩두가 있는 옆의 상업건물은 현대적 공간으로 가득한 개방적인 건물이다. 특히 지하로 이르는 대형 계단실은 그 자체가 현대적인 정원이 되기도 한다.
인사동-삼청동 문화예술거리의 흐름에서 약간 벗어나 있지만, 빼 놓을 수 없는 두 개의 미술관 건물이 있다. 국군병원에서 오른쪽 길로 접어들면 옛 경기고등학교였던 정독도서관이 있고, 그 맞은 편 모퉁이에 선재아트센터가 서 있다. 지금은 해체된 대우그룹에서 건축했던 이 미술관의 설계자는 원로건축가 김종성이다. 현재도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김종성은 힐튼호텔 등 대우그룹의 중요한 건축물들을 담당했었다. 미국대학에서 교수를 역임할 정도로 국제적 수련을 쌓은 그는 건축가의 세련된 신사로 인정되며, 그의 건축물 역시 국제적 수준의 많은 건물들을 국내에 설계했다. 선재아트센터는 대지의 형상을 따라 부드러운 원형으로 설계되었고, 내부 전시장 역시 미술관으로 드물게 부채꼴 모양의 공간을 갖는다. 유리박스 속에 놓여진 계단실에서는 주변 동네의 오래된 풍경들을 볼 수 있어서, 현대적인 내부공간과 절묘한 대조를 이룬다. 게다가 이 미술관의 한쪽에는 아예 한옥 한 채를 옮겨 지어 놓았다. 이 동네의 역사적 전통을 마치 옥외 미술품같이 소중하게 간직하려는 의도이다.
아트선재센터에서 원서동으로 넘어가는 길을 중심으로 소규모 미술관들이 근래 많이 만들어져서, 미술관 거리가 이곳까지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그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건축은 서미갤러리다. 미국에서 활동하던 건축가 유태용이 설계한 야심작 가운데 하나. 전통적 재료인 전돌과 현대적 재료인 압출성형 콘크리트판을 절묘하게 대조시킨 외관부터 범상치 않지만, 가장 특징적인 것은 3층에 들어선 한옥 정자건물이다. 서울의 대표적인 한옥마을인 이 동네의 역사성을 계승하기 위한 선언물이며 상징물이다. 집주인의 사랑채로 쓰이는 이 정자에 오르면 세월의 켜가 쌓여있는 이 동네의 정겨운 풍경을 대할 수 있다. 김종성이나 유태용 두 건축가는 대학부터 미국에서 지낸 해외파들이지만, 오히려 한국적 전통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건축가이기도 하다. 통찰력은 국적과는 관계가 없다.
이제 길이 끝났으니, 미술관 건축 따라잡기도 끝내야한다. 인사동, 사간동, 삼청동, 화동, 원서동, 가회동 등 -이른바 북촌은 현재도 크고 작은 미술관들이 계속 세워지고 있다. 앞으로 미국외교단지와 국군병원이 이전하고, 그 땅도 문화시설로 이용된다면, 북촌 일대가 거대한 문화예술도시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또한 미래의 건축적 명작들도 그 땅위에 계속 탄생할 것이다. 그래서 건축물 자체가 예술품이 되고 감상의 대상이 되는 아름다운 서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