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일
2015.01.13.
출처
목멱칼럼
분류
기타

어느 경제연구소에서 2014년도에 반응이 가장 뜨거웠던 10대 핫(hot) 상품을 선정 발표했다. 1위는 매점 돌풍까지 일으킨 하니버터칩, 그 뒤를 이어 클라우드 맥주, 셀카봉, 영화 명량, TV드라마 미생, 배달용 앱, 한국식 디저트 프랜차이즈 설빙, 에어쿠션 화장품, 초소형 아파트 그리고 소형 SUV인 티구안이다. 핫 상품이란 가장 많이 팔린 상품이 아니라, 사회적 의미와 호응이 높은 상품들이다. 여기에 반영된 의미를 짚어본다면, 지난 해 우리가 추구했던 사회적 가치의 속살을 어림할 수 있다.
첫째는 융복합을 통한 고급 가치의 창출이다. 허니버터칩은 수십 년간 스낵 맛을 독점해 온 감자 칩의 짭짤함을 버터와 벌꿀을 첨가해 달콤한 맛으로 바꾸었다. 눈꽃 제빙기술과 팥빙수가 만나 개발한 설빙의 디저트들, 기초부터 여러 단계의 액체 화장품을 스폰지에 담아 휴대를 가능하게 한 에어쿠션 등은 이미 있었던 것들을 선택하고 결합하여 만든, 그러나 혁신적인 새로운 상품들이다.
둘째는 우리 사회가 무엇에 아파하고 갈망하는가의 반응이다. 1,700만 관객을 동원하여 한국영화사상 최고를 기록한 명량은 지난해 겪었던 세월호 참극의 반작용이다. 진정한 지도자상과 위기 극복의 염원이 이 영화가 가진 용량을 훨씬 더 크게 키웠다는 평가다. 전체 직업인의 1/3이 넘는 800만 비정규직의 처절한 현실을 그린 미생은 더 말할 나위없다. 이 드라마 최대의 파생상품은 논란이 많은 ‘장그래법’이다.
마지막으로 개인화, 소형화의 추세다. 여기에는 새로운 대세 소비층으로 떠 오른 젊은 1인가구의 역할이 크다. 1인 가구는 이미 전체 가구수의 1/4을 넘었으며, 특히 젊은 1인 가구는 미래를 위한 저축보다는 과감한 소비로 시장의 판세를 바꾸어 놓고 있다. 10평 미만의 초소형 아파트의 인기나 배달용 앱의 활성화는 그 대표적 사례이며, 소형 SUV도 젊은 1~2인 가구의 선호품이다.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선풍을 일으킨 작년 최고의 발명품은 바로 셀카봉이다. 비교적 간단한 이 물건은 융합적 가치를 극대화한 도구요, 개인화 소형화의 추세를 극명하게 담고 있는 끝판 왕이다. 관광지에서, 음식점에서, 각종 만남과 모임에서 인증 샷은 이제 필수적인 통과의례가 되었다. 그러나 팔을 뻗어 셀카를 찍으면 큰 바위 얼굴이 되는 문제가 있다. 그렇다고 일일이 다른 이에게 촬영을 부탁하기도 귀찮은 노릇이다. 그러나 셀카봉을 사용하면 자신의 얼굴을 작고 멋지게 담을 수 있으며, 남에게 구차한 부탁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필자는 셀카봉을 3개나 가지고 있다. 리모컨 분리형을 샀다가 불편해서 리모컨 일체형을 다시 샀으며, 블루투스를 사용하는 리모컨형이 또 불편해져서 원격 셔터형을 추가 구입했다. 이처럼 가려운 곳을 꼭 집어 해결해준 발명품이 또 있을까? 해외여행 때 사용했더니 외국인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아직도 외국에서는 자신들의 카메라를 맡기며 서로 서로 촬영을 부탁하는 것이 일반적인 풍경이다. 바로 한해 전 우리가 그러했듯이. 그러면서 낯선 이들이 간단한 대화를 나누고 서로에게 관심을 표하며 소통의 계기가 된다.
그러나 셀카봉을 사용하면서 이러한 만남도 소통도 사라졌다. 지옥이나 천국이나 사람들은 모두 팔에 붙은 긴 포크를 사용해 식사를 한다고 한다. 이 도구는 1m가 넘어 도저히 자기 입에 가져갈 수 없다. 여기서 지옥과 천국의 풍경이 달라진다. 지옥은 음식을 자기 도구로만 먹으려해 아무리 애를 써도 굶주릴 수밖에 없는데, 천국은 서로 다른 사람을 먹여줘 모두가 행복하다는 이야기다. 셀카봉의 셔터를 누를 때마다 왜 이 우화가 생각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