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기행은 이베리아 반도의 건축적 노력들을 중심으로 기획하였다. 왜 하필 포루투갈과 스페인인가? 다분히 개인적인 이유에서지만 두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유럽의 중심국들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재의 건축적 갈등과 추구들이 우리의 상황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철학과 기술과 도시적 상황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화 국제화를 부르짖는 마당에 상황의 다름이 무슨 큰 장애인가 하는 낙관도 있을 수 있고, 이제는 우리의 문제와 그들의 문제가 결국은 하나일 수 밖에 없다는 메트로폴리탄적 인식도 가능하다. 그러나 관념적 인식과는 달리 한반도의 건축은 여전히 중심에서 벗어난 변방에 머물고 있고, 지진도 안났는데 준공 20년도 안된 철골다리가 무너져 버리는 설계와 시공의 기술적 차원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상황이다. 식민지와 급속한 산업화 과정을 겪으면서 우리의 도시는 보존할 대상도 해체할 대상도 없는 곳으로 바뀌어, 정도 600년을 기념하고 싶어도 기념할 물적인 대상이 없는 뿌리없는 삶의 터전이 되어 버렸다. 유럽의 중심국들이 고민하고 있는 후기 자본주의를 지탱할 수 있는 철학적 기반과 이를 차용한 건축의 새로운 비상구를 찾는 치열한 갈등이 부분적인 공감을 일으킬 수 있으되, 우리의 핵심문제는 아니지 않는가. 단적으로 우리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인 건축시장의 개방을 그들은 즐기고 있지 않은가? 디컨스트럭션이든 견고한 꼬르뷔제앙이든 그들에게는 모두가 정당한 전통의 일부가 아닌가?
유럽 각국을 선진과 후진, 혹은 중심과 주변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가 이미 용도 폐기된 낡은 시각임은 인정한다. 그곳에는 이미 국경의 개념도 민족의 개념도 없이 무수한 도시 연합의 유대와 교류가 일반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면을 들여다 보면, 유럽 공동체는 아직은 가상의 개념에 불과하다. 유럽에도 여전히 중심국과 주변국은 존재하며, 빈부의 격차 뿐 아니라, 문화와 철학의 상이함이 엄존한다. 앵글로 색슨의 철학적 과제는 라틴계의 과제와는 전혀 다르며, 같은 라틴계에서도 이베리아와 이딸리아의 건축적 과제는 상이하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건축에서 한국건축의 일말의 가능성을 찾고자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뿌리깊은 고유의 전통과 기나긴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이제야 건축적 성취의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이베리아의 디자인에 주목한다. 일견 보여지는 그들의 작품에는 강렬한 풍토성과 함께 거친 역동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세계적인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는 까닭을 알고 싶었다. 비교적 우리와 유사한 상황 속에서 그들은 어떠한 해답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기행의 구성원들이 이베리아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풍부한 유럽의 건축적 경험을 한 분들이어서 비교의 시각도 가치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이베리아 건축에 대한 정보는 너무나 희소했다.
두번째 이유는 유럽 중심국들의 건축적 대안들에서 우리에게는 정당하지 않은 중요한 부분들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유형학적 방법으로 대표되는 이딸리아 – 스위스와 남부독일을 포함하여- 작가들의 경우, 역사적 환경 속에서의 실험이란 너무나 한계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아니면 매우 폭력적인 또 다른 질서를 구축하던가. 두가지 모두 역사의 무게가 추상적인 전통 뿐 아니라 구체적인 도시의 환경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대안들이다. 물리적인 역사 환경이 사라져 버린 우리의 상황을 되새긴다면, 유형학적 방법의 부정당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매우 매력적이며 첨단적인 프랑스의 건축은, 특히 이번 기행을 통해서 짜증나는 실망만을 안겨 주었다. 프랑스 건축의 노력들이 매우 다양한 방향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한가지로 평가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국가적인 후원으로 벌어지는 이른바 “거대 작품들 Grand Projects”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기술과 재료의 하이테크들은 건축적 실체를 갈구하는 우리 일행에게 철저히 외면당했다. 거기에는 피상적인 관념과 지식에 갇혀 버린 개인적인 실험들만이 있었다. 꼬르뷔제부터 시리아니와 츄미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건축의 세계적 위상을 높여주고 있는 건축가들이 거의 모두 외국인인 사실을 상기하면서, 프랑스 건축의 이중적 구조의 위험성을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즉물주의 전통에 충실한 , 그래서 자본의 정제되지 못한 형상으로서 만연하고 있는 독일 도시건축의 환경이나, 활력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렵고, 허구적인 이즘과 귀족적인 고전주의 전통을 벗지 못하는 영국의 건축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물론 유럽 중심국의 뛰어난 건축들이 항상 우리에게는 교훈을 주는 대상이고, 탐구의 대상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번 기행은 건축학도의 수학여행이 아니라 자신의 세계를 추구하는 젊은 전문가들이 모인 깨달음을 위한 여행으로 목적되었다. 따라서 기행의 대상지를 유럽 중심국이 아닌 이베리아 반도로 정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렇지만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현대건축에 대한 정보는 너무나 부족했다. 그많은 해외 건축유학생 가운데 이 두나라에는 단 한명의 한국유학생도 없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의 편향된 지적 채널에 다시 한번 아쉬움을 느껴야 했다. 때문에 두나라의 유명 건축가를 중심으로 기획할 수 밖에 없었다. 포르투갈에 있는 씨자와 스페인의 모네오, 그리고 바르셀로나의 젊은 건축가 미랄레스의 작품을 중심으로 기획하여, 포르토에서 출발하여 스페인 내륙을 거쳐 바르셀로나에서 끝나는 환상적인 일정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이 역시 지역적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들 있고, 현지 스폰서의 사정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들로, 그보다는 기획 측의 정보 부족으로 수정과 취소를 거듭한 결과, 마드리드의 범작들과 가우디의 바로셀로나로 귀착되고 말았다. 씨자 모네오 미랄레스의 성취에서 건축의 풍토성과 근대성이 어떻게 화해할 수 있는지, 그 폭발적인 에너지는 과연 무엇에 기인하는지, 세련되고 현학적인 이론들이 아니라 강렬한 감성과 따뜻한 애정만으로도 건축이 가능한지 등의 기본적인 의문을 풀어보려했던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물론 세사람의 작품을 하나 씩은 접할 수 있었다. 마드리드 역 건물을 개조 확장한 모네오, 바르셀로나 쌍스따찌옹 역 앞 광장을 꾸민 미랄레스, 바르셀로나 해변에 있는 씨자의 기상국 건물에서 기대치의 일부분을 충족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이번 기행의 스타는 우연히 접했던 릴 문화관의 쿨하스였으며, 일정에서 누락된 것을 우겨서 갈 수 있었던 콜로니아 위엘교회의 가우디였다. 현대 이베리아 건축의 진수를 보려던 애초의 목표는 철저하게 실패하고만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씨자 모네오 미랄레스의 편린들은 대단했다. 해변에 있는 매우 단순한 외형의 기상국 건물은 “건축은 과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하는 환경과 주체의 문제에 대해 건강하면서도 자신감에 넘치는 지침을 내리고 있었다. 마드리드의 옛 아토차 역과 증축된 새 역 사이에 마치 점과 같이 찍혀 있는 시계탑은 옛 것과 새 것 사이에서, 도시의 조직과 건축의 질서에 또 하나의 활력을 주는 연결고리로 작용하고 있었다. 바르셀로나의 도시적 스킴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미랄레스의 패기만만한 구조물은 도시와 건축 사이의 경계를 해체하면서, 또 하나의 기념물을, 그러나 사그라다 파밀리아와는 달리 매우 경제적이고 친숙한 기념물을 제공하고 있다. 이 세 작품이 세 작가의 대표작은 아니다. 그 작품들은 우리의 여정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포르토에 있는 씨자의 풀장과 주택들, 산 세바스챤과 메리다에 있는 모네오의 박물관들, 그리고 이구아달라의 미랄레스의 공동묘지. 그 뿐 아니다. 이베리아의 신진들인 바에즈, 마르토렐, 발데베그 들은 또 어떠한가.
다시 한번 이베리아 건축 기행을 꿈꾸어 본다. 역시 포르토에서 출발하여 바르셀로나까지.
김봉렬 사진 설명
사진1> 알바로 씨자의 바르셀로나 기상국 :
외형과 평면은 진부하리만큼 단순하지만, 내부에서 전개되는 경관의 구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모든 사무실과 사무실 사이는 시각적으로 연속되며, 각 실 사이에는 외부 발코니가 마련된다. 원형의 평면을 이처럼 구성할 수도 있는 것인가 .
사진2> 기상국 건물에서 외부를 본다 ;
8방향으로 개방된 창들을 통하여, 도시와 해변과 바다의 경관을 내부로 끌어들인다. 단순한 외형은 결국 이러한 경관을 위하여 포기한, 건축가의 또 하나의 선택이다. 건물이 놓인 환경의 경관을 위하여 외부 형태나 내부의 공간의 표현을 과감히 생략한 대가의 자신감에 기가 질린다.
사진3> 라파엘 모네오의 아토차 역사 확장 :
열주의 둥근집은 지하철 역사, 시계탑이 서있는 곳이 구철도역, 지하철 역사 뒤가 신철도역이다. 신철도역과 그 전면의 주차장 구조물도 과감하지만, 원통과 사각탑의 단순한 두 조형물을 세워 옛 것과 새 것, 도시의 질서와 건축의 상징을 절묘하게 결합시킨다.
사진4> 아토차 지하철 역사 :
단순한 요소의 집합이 엮어내는 강렬한 에너지. 건축의 주인은 형태와 디테일이 아니라 빛과 그림자, 색채의 조합으로 만들어지는 장소와 공간의 이미지다. 스페인 건축에서 배우고 싶은 것. 풍토성과 근대성의 화해, 단순한 것들의 다양한 집합, 환경 속에서의 건축의 역동성.
사진5> 엥리크 미랄레스의 상스따치옹 역사 광장의 조형물 :
도시와 건축, 구조물과 건물의 경계를 넘어서. 미랄레스가 파악하는 선으로서의 바르셀로나. 선은 면을 만들고, 면은 입체를 만들고, 입체는 행위를 만든다. 친숙한 스케일과 각도, 비례를 재구축함으로써 도시의 새로운 장소성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