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칸디나비아 지역의 건축물들을 보고 왔다. 인구만으로 따지면, 핀랜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4개국은 500만 정도의 작은 나라지만, 알바 알토를 위시한 대가들을 배출했다. 알토 뿐 아니라, 스웨덴의 아스프룬드, 덴마크의 웃존, 그리고 재작년 프리츠커 상을 수상한 노르웨이의 펜. 모두가 독자적인 건축세계를 개척하여 세계적 명성을 얻은 이들이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스웨덴의 또 한명의 대가, 시구드 레베렌츠를 만난 것인 이번 여행의 최대 수확이었다. 그는 국내에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지만, 아스프룬드의 설계로 알려진 ‘숲 속의 공동묘지’의 실질적인 건축가이며 조경계획자였다. 그는 80 평생을 은둔적 건축가로서 시종하면서, 스톡홀름의 성 마가교회, 말뫼의 이스턴 공동묘지와 성 베드로교회 등 걸작들을 남겼다.
스톡홀름의 숲 속의 공동묘지와 말뫼의 이스턴 공동묘지는 극히 대조적인 개념에 의해 계획되었다. 앞의 것은 울창한 교목들 사이에 묘지를 묻어서, 마치 산발적으로 부려놓은 것과 같은 비석들을 보노라면 자연으로 돌아간 죽음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처연한 장소이다. 반면 말뫼의 묘지는 격자형 가로들과 인공 언덕으로 구성된 죽은 자들의 도시로 재현된 곳이다. 여기에는 단독주택(독립무덤)과 공동주택(떼무덤)이 있고, 죽음의 공동체를 위한 광장도 있는 따사로운 풍경을 이룩하고 있다. 하나가 성스러운 자연이라면, 다른 하나는 활기로 가득한 인공적인 도시다. 대조적인 이 개념들은 단순히 거장의 천재성으로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스톡홀름의 자연환경이 울창한 처녀림들이고, 말뫼의 자연은 농경지로 개간된 드넓은 들판과 구릉임을 눈여겨 본다면, 레베렌츠의 두 묘지는 결국 그 대지가 속한 환경과 풍경에서 개념을 설정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두 곳의 묘지는 그 지역의 풍경을 기막히게 다시 재현하고 있다.
모더니즘의 거장들이 건축물 자체의 보편적 구법과 기능적 일반 유형들을 발명하고 실험하는데 그들의 정열을 쏟았다면, 레베렌츠를 비롯한 스칸디나비아의 건축가들은 각 지역의 주어진 환경과 문화적 전통을 재해석하고, 각 프로젝트의 대지가 형상화된 개성에 충만한 하나 하나 작품들을 창조해 냈다. 이들의 지역적 전통은 이미 20세기초부터 시작됐으며, 알토에서 집대성되어 웃존이나 펜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 프램튼은 이러한 건축적 태도를 일컬어 ‘비판적 지역주의’라고 부르며, 현대건축이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다.
비판적 지역주의 – 슐츠는 이와 유사한 경향으로 ‘새로운 지역주의’라고 부른다 -는 현대건축의 성과를 바탕으로 그 지역과 문화적 환경을 재해석하여 창출해 내는 개성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비단 스칸디나비아의 건축가들 뿐 아니다. 포르투갈의 시자, 멕시코의 바라간, 스위스 티치노의 보타, 일본의 안도 등 20세기 후반기의 국제적 대가들의 건축적 태도가 바로 ‘비판적 지역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건축적 성취와 영향력은 모더니즘이나 포스트 모더니즘의 태도를 고수하고 있는 구미권의 건축가들에 비해 오히려 탁월한 빛을 발하고 있다.
열주를 세우고 기와지붕을 씌우던 7-80년대의 한국 건축이 저속한 통속적 지역주의였다면, 현재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중진 건축가들의 태도는 비판적 지역주의에 가깝다. 이러한 건축적 자세는 세계를 향해서 당당한 대안이요 진로로 제시할 수 있는 비젼이다. 한국 건축을 둘러싼 장애요소들은 첩첩하다. 불충분한 건축교육, 사계절이 뚜렷한 불리한 기후, 건축적 변방의 아픔, 전통의 단절과 부재, ……. 그러나 비판적 지역주의의 태도는 이러한 주어진 환경과 일상에 대한 진지한 통찰과 탐구에서부터 시작된다. 희소한 인적 자원, 태양이 없는 우울한 기후, 변방부 유럽의 약세 등 무수한 악조건들 속에서 스칸디나비아의 건축가들은 자유롭고, 빛으로 충만하고, 영감에 가득한 건축적 전통을 만들어냈다. 장애요소는 비판적 태도에 의해 얼마든지 새로운 창작의 원동력으로 바뀔 수 있다. 일상에 대한 리얼리티가 관건이다.
“위대한 사상은 사소한 일상에서 솟아 나온다. 위대한 생각은 대지의 조건에서부터 우러나온다. 재료와 공법은 수단일 뿐, 건축의 진정한 가치가 아니다.” 알바 알토의 이 금언은 곧, 스칸디나비아 건축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