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일
2014.06.17.
출처
한국일보
분류
건축론
원문 링크

광장의 성격은 모인 집단이 규정해

거리 응원에 시간, 장소는 제약 안 돼

또다시 월드컵 시즌이다.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서 한국팀의 목표는 원정 2연속 16강 진출. 우승이나 4강도 아니고 32개 팀이 참가한 경기에서 고작 반타작이 목표라니, 일반 대회라면 말할 가치도 없는 목표다. 그러나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57위인 한국이 12위 벨기에, 18위 러시아, 25위 알제리 중 두 팀을 제쳐야 하니 수치상으로는 불가능한 목표다. 그러니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모두 붉은 티셔츠를 입고 목이 터져라 응원하는 수밖에.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세계인을 놀라게 한 가장 큰 사건은 붉은 악마의 거국적인 응원문화였다. 전 인구의 4분의 1이 같은 색의 옷을 입고 거리로 몰려나와 벌였던 집단적, 자발적, 체계적 거리 응원은 한국에서만 가능한 문화현상이었다. 특히 100만 명이 넘는 붉은 사람들이 서울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운 응원 풍경은 역대 월드컵의 대표적인 장면이 됐다. 이때의 감동을 기억해 서울시는 2004년 이 장소를 아예 ‘서울광장’이라는 정식 광장으로 조성했다.

사실 그때까지 시청 앞 광장은 광장이 아니었다. 5방향의 방사형 도로가 교차하는 지점에 설치된 원형 교차로, 즉 로터리였다. 일본인들은 이를 ‘교통광장’이라고 기괴한 이름을 붙였지만, 보행자의 접근이 불가능하고 차량들이 사방을 쉴 새 없이 질주하여 군중이 모이기엔 불가능한 장소였다. 100만 응원이 가능했던 까닭은 주변의 교통을 차단해 도시의 일상적 기능을 정지시켰기 때문이다. 서울광장은 교통로를 바꾸고 교통체계를 정리해 광장의 한 면과 시 청사를 연결함으로써 교통 흐름을 차단하지 않고 접근과 집회가 가능한 장소로 탄생한 것이다.

서울광장의 근원은 조선말 고종황제 당시로 거슬러간다. 평소 근대국가의 꿈을 꾸던 고종은 서양인 고문들의 자문을 받아 수도 한양을 근대도시로 탈바꿈하려 했다. 핵심 사업은 덕수궁 동문 앞에 방사형 도로를 뚫어 로터리를 조성하고, 옛 원각사 터에 파고다공원을 조성하는 일이었다. 로터리와 공원을 근대도시의 표상으로 여긴 것이다. 이 로터리는 일제 때 경성부청사 앞 광장이라 불렸고, 해방 후엔 서울시청 앞 광장으로, 그리고 한일 월드컵 후에는 서울광장이 된 것이다.

서울광장은 집단 응원의 장소로, 각종 공연과 행사의 장소로, 때로는 정치적 집회와 시위의 장소로 쓰였다. 한때 서울시는 서울광장을 왜 만들었는지 후회한 적이 있다. 2008년 촛불시위 때였다. 수만에서 수십만이 100일 이상 시위를 벌이니 당황한 당국은 그 원인이 광장이 비어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서울광장을 어떻게 개조해야 집회를 막을 수 있는지 전문가들의 자문을 구하기까지 했다. 나무들을 빼곡하게 심거나 큰 연못을 조성하자는 아이디어도 있었다. 마치 광장이 비어있기 때문에 많은 인원이 모이고, 시위가 일어난다고 착각한 것이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광장의 상호작용 능력에 주목했다. 광장이라는 공간은 중성적이지만, 거기에 모인 집단의 역학관계에 의해 광장은 정치적 성격을 갖게 된다. 상호작용이 수평적이면 민주적인 광장이 되지만, 하향적이고 일방적이면 전체주의적 광장이 되고 만다. 중국 공산당의 독재적 권력을 상징했던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은 천안문 사태 때는 저항의 광장이 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여러 나라 방문객으로 가득한 관광의 광장이다. 광장은 말하지 않는다. 그 안에 모인 집단이 말을 할 뿐이다.

브라질 월드컵 기간에도 어김없이 거리 응원을 펼칠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광화문 광장이 중심이 되고, 참여 인원도 그다지 많지 않을 것으로 예측한다. 세월호 분향소가 설치된 서울광장은 추모공간으로 비워 놓는다고 한다. 꽉 차 있어야만 광장이 아니다. 오히려 텅 비어있는 공간이 광장의 본질이다. 그래야만 응원을 담을 수도, 애도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광장이 있어서 응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응원이 있기에 광장을 채울 뿐이다. 서울광장을 꽉 채우기에는 슬픔이 너무 깊고, 응원의 열기로 덮기에는 아픔이 아직 넓다. 광장이 아니라도, 거리가 아니라도, 집단이 아니라도 응원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