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일
1995.06.30.
출처
경상일보
분류
건축론

드디어 올 것이 왔는가. 무너진 서울 삼풍백화점은 큰집 근처에 있어서 매우 눈에 익은 건물인데, 텔레비젼에 비쳐진 앙상한 폐허는 비참하다 못해 신기하기까지 했다. 붕괴의 원인이야 한참 뒤에나 밝혀지겠지만, 천재지변이 아닌 사람과 자본의 실수가 초래한 초대형 사고임에는 틀림없다. 바다 건너 나라에서 얼마 전 일어난 고베 지진이나, 오클라호마 주청사 폭파사건은 어쩔 수 없이 당할 수 밖에 없는 비극들이었지만, 한국에서 작년부터 일어난 사고들은 뉴스가 아니라 해외토픽에나 소개될 어처구니 없는 것들이다. 20년 밖에 안된 한국의 대표적 다리가 내려앉는가 하면, 가스관을 반고의로 뚫어 지하철 공사장이 폭파되기도 했다. 이제는 화려함을 뽑내던 10년도 안된 고급백화점 건물이 땅 속으로 꺼져버렸다. 수많은 죄없는 목숨들과 함께.
사고의 원인은 아직 모르겠지만, 원인의 원인은 너무나 확실하다. 이 건물이 신축되던 80년대말은 무리한 200만호 건설로 인해 건설자재 부족은 물론 기술 인력도 턱없이 모자라던 시기이다. 녹슨 철근, 저질 중국산 시멘트, 바다 모래…들을 사용하는 것은 예사였고, 누구나 망치만 들면 솜씨있는 목수였고, 중장비 한대만 있으면 전문 건설업체였던 시절이다. 이 판에 졸속공사 부실공사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이다.
현대 물리학에 파국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건물과 같은 물체는 물론 한 사회가 붕괴되기까지에는 수많은 사소한 실수와 탐욕들이 쌓이고 쌓여야 한다는 이론이다. 예를 들어 서울 성수대교 붕괴에는 2만여 가지의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잘못된 정책부터 현장에서의 공사비 착복, 그리고 말단인부의 게으름까지. 그 수많은 원인들이 없다면 그러한 대형사고는 일어날 수 없다는 이론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장 큰 원인, 다른 모든 원인들의 원인이 되는 것은 정책자, 자본가, 일반 시민할 것 없이 두눈이 멀어버린 개발신드롬이다. 성수대교는 수출입국 건설입국의 기치를 내걸었던 유신시대의 작품이고, 대구 지하철폭발은 TK 달래기를 위한 현정권의 급속한 선심이었고, 삼풍백화점은 과시 정책과 천민 자본이 합작한 개발의 결과였다.
그러면 울산은 안전한가. 연약 지반 위에 아슬아슬하게 세워진 삼산지구는 그야말로 젤리잔 위의 케익조각들은 아닌가. 민선시장이 뽑히고 또 불어닥칠 건설울산 개발울산의 신드롬은 또 얼마나 많은 삼산지구를 양산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