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하면 너무 억울했다. 머리카락은 선생님 손가락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짧게 깎아야 했고, 일본 제국군의 군복을 검게 염색한 교복을 입어야 했다. 초등학교에서 누리던 온갖 자유를 박탈당한 중학교 생활이었지만, 그래도 순진한 소년을 설레게 했던 것은 새로운 언어를 배울 수 있었던 영어시간이었다. “나는 소년이고, 너는 소녀다”라는 따위의 예문들은 일종의 희열마저 안겨주었다. 이해하기 보다는 무조건 외우면 되는 단어들이고 문장이었으니까. 그러나 곧 하나의 장벽을 만났으니, 바로 ‘아트(art)’라는 단어였다. ‘예술’ 또는 ‘미술’과 ‘기술’로 동시에 번역된다는 사실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니 그럼, 피카소와 같은 예술가와 에디슨 같은 과학기술자가 같은 부류의 인간이라는 말인가? 미술은 미대에서, 기술은 공대에서 배우는 것이 아닌가? 마치 하늘과 땅처럼 다른 것들이 어째서 서양에선 하나라고 할까? 그 사소하면서도 거창한 의문을 잊어버린 채 공대에 들어가 건축기술을 배웠으며, 지방의 공과대학교에서 처음 교수생활을 시작했다. 예술과는 완전히 격리된 삶인 줄 알았는데, 어쩌다 지금의 한국예술종합학교 (한예종)으로 옮기게 되면서 다시 그 의문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래도 예술학교에 몸담았으니 예술에 대한 초보적 개념은 익혀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미학책들을 뒤적이게 되었고, 꽤 오랜 추적 끝에 고대 그리이스의 개념어인 ‘테크네’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예술을 예술품을 제작하는 기술로 인식했고, 테크네라는 개념은 예술과 기술을 동시에 포괄하고 있었다.
중세 유럽에는 화가 길드나 건축가 길드가 있었고, 예술가들은 여기에 속한 장인들이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위대한 한국화가 김홍도나 신윤복도 도화서라는 일종의 국립 장인조직에 속한 화원이자 화공들이었다. 여기까지 예술과 기술의 차이는 전혀 없었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기에 들어오면 달라진다. 건축가 알베르티는 인문학 훈련을 통해 장인의 신분을 벗어나 지식인으로 대우받기를 원했으며, 만능인 다 빈치는 수학이나 생물학을 예술과 접목하여 기술적 차원을 벗어나려 했다. 그들의 노력을 통해 예술은 기술과 결별하고, 근대 예술은 학문이나 사상과 결합하였다. 예술에게 버림받은 근대 기술은 과학과 결합하여 오히려 과학기술이 되었다. 까까머리 중학생의 ‘아트’에 대한 의문은 이 거대한 역사적 과정을 이해한 후에야 비로소 풀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 예술은 기술적 지원을 원하게 되었고, 현대 기술은 거꾸로 예술적 표현을 갈구하게 되었다. 헤어진 부부의 재결합이라고 할까, 백남준은 비디오 기술을 응용해 미디어 아트의 개척자가 되었고, 영화 ‘아바타’와 같이 컴퓨터 기술은 미술과 디자인 뿐 아니라 음악과 무용까지도 창작하는 새로운 예술가가 되었다.
몇 해 전부터 한예종은 카이스트나 포스텍과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다. 첨단 과학기술의 머리를 다투는 두 학교는 한예종과 겹치는 전공분야가 전혀 없다. 그러하기에 오히려 서로의 갈증을 해소하는데 적극적이다. 포스텍에는 ‘예술의 산책’을, 한예종에는 ‘현대과학의 이해’라는 과목을 개설하여 상대 학교의 교수진들이 강의한다. 학생들의 반응은 열광적이다. 우선 새로운 세계에 흥미롭고 즐거워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연구와 창작에 큰 도움을 받는다고 한다. 카이스트와는 예술과 기술이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공동 작업을 하기로 연구 중이다. 그래서 새로운 미디어 예술, 경계가 없는 표현의 세계를 창조해 내기를 꿈꾸고 있다.
갑오년 새해는 ‘문화원년’이라 할 만하다. 매월 문화가 있는 날이 있으며, 문화누리 카드와 예술인 패스가 통용이 된다. 문화재정 2%를 달성하고 문화기본법을 시행하면 문화가 융성한 문화대국을 이룰 것이다. 문화의 핵심에는 예술이 자리 잡고 있다. 다시 말해서 예술이 없는 문화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예술은 기술과 이혼한 아트가 아니라, 현대 기술과 재결합한 ‘테크네’이다. 현대적 테크네야말로 문화융성의 강력한 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