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문화의 가치를 일깨워 격조 높은 현대의 생활문화를 창조하려는 아름지기는 출발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쉽게 생각하면 ‘전통문화진흥재단’이나 ‘현대문화창조재단’ 등 내용을 직역한 이름이 떠오르겠지만, 20년 전 재단의 창립자들은 고심 끝에 ‘아름지기’로 이름지었다. 아름다움을 지키는 이들, 아름지기. 중의적이며 함축적이고 아름다운 순 우리말 이름이 신선했다. 재단의 첫 사옥은 북촌의 작은 한옥이었다. 재단 설립 모임에서 직접 설계하고 건립한 집으로 당시 한옥 부활운동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했다.
재단 창립 3주년 때, 기념식에서 축사를 하는 영광을 누렸다. 아름지기 활동에 동참하면서도 “1~2년 반짝 활동하다 시들해지겠지”라고 생각했으나 “그 예단은 틀렸다”고 고백했다. 해가 갈수록 활동의 영역이 넓어지고 의미가 깊어지니 적어도 10년은 동참하겠다고 다짐했다. 그 후 17년이 흘러 벌써 20주년이다. 다시 생각해봐도 아름지기는 문화재단인지 시민운동단체인지 정체성이 모호하다. 기금을 마련하고 문화적 활동을 후원하는 것은 문화재단의 역할인데, 궁궐 청소와 같이 문화유산 정비까지 회원들이 직접 참여하는 것은 시민단체와도 같다. 그런 점에서 기존 재단이나 단체들과는 다른 새로운 길, 다시 말해 종합적이고 실천적인 문화운동의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한다.
아름지기의 활동은 몇 가지 특별한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전통을 계승 창조할 전문가들을 육성하고 후원하는 역할에 중심을 두어 왔다. 단지 재정적인 후원 뿐 아니라 전문가들에게 구체적인 작업 기회를 제공하고 그 작업의 명확한 목표와 과제를 부여했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과제를 해결하면서 스스로 역량을 발전시킬 뿐 아니라 해당 분야의 문화적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효과도 거두어왔다. 문화유산 보존 정비에 대한 여러 프로젝트에 다양한 건축가, 조경가, 디자이너들이 참여하여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수십 차례 열린 국내외 아름지기 전시회는 의상과 음식, 주거와 건축에 관한 수많은 전통 장인들과 현대적 전문가들이 만나고 협업하는 기회를 가졌다. 이미 자신들의 세계를 가진 장인들과의 협업도 중요하지만, 아름지기의 정신과 품격을 실현할 새로운 장인들을 육성할 필요가 절실해졌다. <전통문화연구소 온지음>은 이러한 배경에서 출범했다. 옷공방, 맛공방, 집공방의 세 공방 체제를 갖추고 연구와 실험, 교육과 창작을 일체화한 새로운 장인학교 겸 연구소이다.
아름지기는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후원할 뿐 아니라 기획하고 실행해 완성까지 이르는 독특한 집단이다. 이십년 간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전문 코디네이터들이 그 역할을 담당해왔다. <미국 피츠버그대학교 내 한국국가강의실 건립> 사업을 예로 들자. 이 프로젝트는 피츠버그 한인회와 아름지기 재단이 협업으로 시작했다. 프로젝트를 위해 기금을 위한 후원그룹과 실행을 위한 전문가 그룹을 구성했다. 후원그룹은 국내외 뜻있는 기업과 단체와 개인들이 모금에 동참했다. 전문가 그룹은 설계를 담당한 건축가들, 시공을 위한 장인들, 내부 전시를 위한 디자이너들, 그리고 현장 업무를 위한 현지 건축가와 보조 장인들까지 국제적인 팀워크를 이루었다. 아름지기의 작업은 늘 협업을 중시하는데, 여러 분야 간의 협업 뿐 아니라 전통장인과 현대장인의 시대적 협업, 국내 전문가와 국외 전문가의 국제적 협업까지 확장되었다.
이처럼 깊이 있는 전문성과 광범위한 협업의 결과물은 창의적이고 신선했다. 아마도 <궁궐 안내판 정비 사업>이 아름지기의 사업 가운데 가장 널리 파급된 예일 것이다. 서울 시내 4대궁과 종묘를 대상으로 난립한 안내판들을 체계적으로 정비하는 사업이고, 구체적으로 쉽고 명쾌한 안내문과 단순하고 지속가능한 안내판을 세우는 것이 목표였다. 아름지기의 코디네이터들은 궁궐 전체의 안내 시스템을 연구 분석해 권역별 안내라는 획기적 아이디어를 냈다. 뉴욕의 디자이너가 제안한 안내판 디자인을 채택했다. 문화재 전문가들이 통일된 문체로 문안을 만들었고, 최고의 타이포그라프 전문가가 이를 콘텐츠화 했으며, 최고의 철공 장인이 철제 안내판 제작을 담당했다. 제작된 안내판은 문화재청과 궁궐전문가들과 함께 여러 곳의 입지를 실험한 끝에 위치를 정해 세워졌다. 세계적 수준으로도 독창적이고 획기적인 안내판은 전국의 지자체들이 벤치마킹해 이제는 전국 안내판의 모델이 되었다. 아름지기는 말이나 글을 통하기보다, 만들어진 구체적인 결과물을 통해 재단의 비젼을 선언하고 활동을 홍보하는 지극히 실천적인 집단이다.
아름지기 전시회는 창립 이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수 십 차례 개최해왔다. 의식주 생활문화를 주제로 한 분야 씩 순차적으로 열었다가 이번 20주년 전시회는 드디어 모든 분야가 그 동안의 성과를 요약해 한 자리에 펼쳐 보이는 통합 회고전이다. 모든 전시회는 사람에 대한 후원, 협업을 통한 시너지 창출, 창조적인 결과물 제안 등의 아름지기 정신을 응축하고 있다. 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아름지기 사람들>이라는 전문가들의 교류가 이루어졌다. 전시회의 기획은 창의적이었고 전시된 결과물들은 격조 높은 창작품이었다. 창의성과 격조는 아름지기의 모든 사업에서 강조된 목표여서 아름지기 미학의 기조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전시회는 아름지기의 비젼을 전파하는 가장 강력하고 집중적인 매체였다. 그러나 의식주 전시는 태생부터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의상은 패션쇼라는 공연을 통해 공개되어 왔다. 늘씬한 모델들이 음악에 맞춰 율동하듯 런웨이를 워킹하는 종합 공연이 기존의 의상 전시회였다. 아름지기 옷 전시회는 모델이나 공연 없이 순수하게 의상만을 전시하는 새로운 방법을 추구해왔다. 의상전시를 공간행위에서 시간행위로 차원을 바꾼 것이다. 바지와 같은 뚜렷한 전시주제를 설정하고 다양한 전시기법을 통해 시간적 패션쇼를 정착시키는 중이다.
음식이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먹고 사라지는 숙명을 갖고 있다. 과연 식 전시회가 가능한가?부터 문제가 된다. 밀납 따위로 만든 가짜 음식은 전시가 가능하겠지만 음식 본연의 재료와 향과 형태는 물론 가장 중요한 맛을 전시할 수 없는 한계가 뚜렷한 분야다. 자칫하면 음식을 담는 그릇 전시가 되기 쉽다. 아름지기는 도시락이나 제사상 차림 등과 같은 참신한 주제로 그 근원적 한계를 극복해왔다. 음식 맛이라는 일차원적 범위를 넘어 식재료부터 조리법과 상차림까지 식문화 전반에 대한 개념을 확장해왔다. 아름지기 식 전시회는 음식 전시회가 아니라 식문화 전시회로 지평을 넓힘으로써 본질에 더 가까워졌다.
주 전시도 만만찮은 한계가 있었다. 주생활의 근간인 건축은 원본을 재현하기 어렵다는 태생적 문제가 있다. 전시장에 걸린 미술품은 그 자체가 원본이어서 이동이 가능하지만, 건축은 땅에 뿌리 밖아 전시장으로 옮길 수 없는 ‘부동산’이다. 건축의 감상이란 원본 크기와 재료와 기법이 동일해야 비로소 가능하다. 미술품 답사는 없지만 건축물 답사가 필수적인 까닭이다. 주 전시도 건축물 전시가 아니라 주 환경에 대한 전시로 한계를 극복했다. 가구, 바닥, 벽, 천장 등 건축의 근원적인 요소들을 주제로 삼아 역사적이고도 창의적인 개념들을 추출해왔다. 그럼으로 거주 환경에 대한 고찰과 미래적 제안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아름지기 전시회를 보면서 창의적 격조에 흐뭇하지만 한편으로 아쉬움도 크다. 한 시민재단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크고 근본적인 주제이며 규모이기 때문이다. 또한 막대한 전시회 예산을 부담하기에 비영리재단의 한계도 뚜렷하다. 전시회 주체도 협업적으로 모색해야할 시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