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도 담도 없는 집에 / 시집온 지 삼년만에 / 시어머니 하시는 말씀 / ………” 대학 시절 소주가 거나해지면 술자리 모두 같이 부르던 ‘진주난봉가’의 첫머리다. 가난한 집에 민며느리로 들어와 남편의 첩질로 목을 매달고 만다는 아주 비참한, 그러나 진부한 내용의 구전가요다. 노래말대로 울도 담도 없는 집이라면 자기 재산이라고는 밥그릇 몇 개 뿐인 노비 계층이나 매우 가난한 소작농의 집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집을 지을 땅은 있었고, 그 땅의 소유권을 표시하기 위해서는 담을 둘러야 했는데, 울도 담도 없다니 그 빈한함은 능히 상상이 간다.
담을 쌓는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군사용 성곽이나 궁궐의 담과 같이 담안에 있는 시설을 보호하려는 목적이다. 이런 담은 외적이나 도둑을 막을 수 있도록 튼튼하고 높이 쌓아야 한다. 보통 살림집에서는 소유자나 이용자의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 담을 만들었다. 나뭇가지 따위를 엮어 만든 엉성한 담을 ‘울, 울타리’라 부르는데, 이 정도는 마음먹기 따라 얼마든지 뛰어넘거나 비집고 들어올 수 있다. 울타리는 단지 “여기는 내 땅이라는 걸 알고 들어오시오”라는 표시에 불과하다. 이 때 담은 높을 필요도 튼튼할 필요도 없다. 그저 경계만 표시하면 될 뿐이다.
농업생산력이 늘어서 중소지주 집들에도 재물이 쌓이기 시작한 조선시대 말이 되면 일반 살림집의 담도 높아지고 튼튼해진다. 나라 형편이 어지러워져 창궐한 도적떼 또는 의병들의 일차 공격 표적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자신들의 재산과 신분을 과시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높이 쌓았다. 높은 담은 잘사는 집의 상징이었다.
더 옛날 신라 때도 담 높이가 집주인의 신분을 상징했던 적이 있었다. 삼국통일 후 생활수준이 높아진 일반 경주시민들이 너도나도 높은 담을 쌓아 자랑하기에 이르자, 엄격한 신분질서를 수호해야 할 정부에서는 드디어 건축법을 제정해 담의 높이를 제한하였다. ‘삼국사기 옥사조’에 그 자세한 내용이 나온다. 하위 귀족계급이었던 6두품은 8척 이상, 하위 관료인 5두품은 7척 이상, 4두품과 일반백성은 6척 이상의 담을 쌓을 수가 없었다. 평민들의 집의 담은 사람키 정도면 충분했다는 말도 된다.
아직도 시골 마을에 가면 나지막한 담에 둘러싸인 농가들이 많이 남아 있다. 이들 집안을 들여다보고 싶으면 제자리 뛰기 한번만 해도 넘겨볼 수 있을 정도의 높이다. 이런 담들은 영역의 표시 외에도 바깥의 시선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다고 너무 높게 쌓으면 집안에서 바깥을 내다볼 수가 없다. 바깥에서는 안을 들여다 볼 수 없지만 안에서는 내다볼 수 있는 높이. 바로 그런 높이는 사람 키보다 한뼘 정도 위면 충분하다. 한국 집의 아름다움은 불필요한 부분이나 크기를 갖지 않는 절제성에 있다. 과욕을 부리지 않는 적당한 높이와 크기로 만들어진 집 – 이런 살림 공간을 이른바 인간적 스케일의 공간이라 부르며, 모든 건축이 추구하는 이상인 것이다.
필요한 크기대로만 집을 짓기 때문에 한국 집의 건물은 크지도 넓지도 않다. 건물만으로는 넓은 대지를 나누어 아늑한 공간들로 만들 도리가 없다. 집 터 가운데에 건물을 놓고 사방으로 담을 뻗어 나가서, 사랑마당도 만들고 행랑마당도 만든다. 따라서 담들은 건물과 함께 ‘집’의 공간을 완성하는 2대 요소가 된다. 그처럼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인지, 담만큼 다양한 재료와 방법으로 만들어진 집의 요소를 발견하기 어렵다.
생나무를 조밀하게 열 지어 심은 생울, 나뭇가지 등을 가로 세로로 엮은 바자울, 나무판자로 막은 판장, 흙과 석회와 지푸라기를 섞어 다진 토담, 돌멩이로만 쌓은 돌각담, 돌과 흙을 섞어 쌓은 맞담, 맞담 중간 중간에 별을 상징하는 장식돌을 넣은 곡담, 그리고 갖가지 무늬의 장식을 한 꽃담까지 풍부한 재료와 기법을 가진 담들이 발달해 왔다. 이 가운데 가장 원초적이며 경제적인 생울타리가 흥미를 끈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살아 있는 나무들을 심어, 그 나무열로 담장을 삼은 생울타리가 가장 비싼 담장이 될 수도 있겠다. 생울에는 탱자나무 같이 가시가 있는 나무들을 많이 사용한다. 이 담은 항상 자라나기 때문에 자주 손질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계절에 따라 여러 가지 모양을 얻는 즐거움을 준다.
가장 한국적인 담으로 사대부가에 흔히 사용된 내외담을 소개하겠다.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세워진 작은 담으로서, 여성의 영역과 남성의 영역을 구획하고 시선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내외담의 높이는 눈높이 정도, 길이 역시 한길 정도에 불과하다. 경주 양동마을 손씨 대종가의 내외담과 같이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안채를 엿볼 수 있는 짧고 낮은 담. 엿보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막힌 듯 터져 있는 내외담은 얼마든지 쌓아도 좋을 담이다.
그러나 역시 최고의 아름다움과 솜씨를 자랑하는 담장은 꽃담이다. 꽃담은 궁궐 양반집 향교 서원 등 고급 건축에만 사용될 정도로 높은 솜씨를 요구한다. 행운을 뜻하는 길상문자, 십장생 동물들 모양, 별무늬, 완자무늬, 번개무늬 등 부귀장수를 기원하는 문양을 기와장이나 벽돌을 사용하여 새긴 담들이다. 그 치밀한 솜씨와 아름다움은 접어 두더라도,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리는 다용도성이 놀랍다.
경복궁의 자경전은 순조의 부인인 조대비의 거처용으로 지은 건물이다. 흥선대원군의 강력한 후원자였으며 조대비 덕분에 고종이 즉위할 수 있었으니, 대원군이 경복궁을 다시 지을 때 가장 정성을 들인 곳이 자경전 일대였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이처럼 막강한 권부의 처소에도 담장은 역시 나즈막하다. 국가 최고의 왕족이든 산골의 범부이든 간에 필요한 만큼의 구조물이면 충분했던 것이다.
대신, 자경전의 담장은 매우 정성스레 꾸며졌다. 담장 전체에 장수와 수복을 비는 기하학적 문양을 깔았다. 주황색 전벽돌로 쌓은 이 문양들은 단순한 장식만이 아니라, 문양 자체가 담장을 지탱할 수 있는 구조적 효과를 고려해 설계된 것이다. 시각적 아름다움과 구조적 안전함을 동시에 추구한 놀랄만한 솜씨다. 정교한 문양들 사이에는 점토로 구운 화초모양들을 삽입해 두었다. 매화, 하늘 복숭아, 모란, 국화, 대나무, 나비, 연꽃 등을 붙인 위에 여백을 흰 회칠로 마감하여 마치 8폭의 병풍을 보는 느낌이다. 자경전은 궁궐 최고의 여성구역이다. 최고 어른인 조대비 뿐 아니라, 수많은 상궁들과 궁녀들이 기거하던 이 구역은 담장부터 아름다움과 여성스러움으로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