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22대 임금으로 즉위한 정조대왕은 보기 드문 호학왕(好學王)이었고,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측면에서 일대 개혁을 이룬 계몽군주였다. 그는 조선사회의 모든 병폐가 족벌세도가들의 당쟁과 횡포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직시했고, 그 핵심인 노론 벽파의 세력을 제거하면서 강력한 왕권을 구축해 나갔다. 20년간의 개혁정치를 마무리 짓는 사건으로 정조는 수원에 신도시 화성을 건설할 것을 명했고, 그 대역사를 자신의 정치적 추종세력이었던 실학파들에게 맡겼다.
수원화성의 건설은 정조의 생부이며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된 ‘사도세자’ 장조의 능을 구 수원읍으로 옮기면서, 기존 주민들의 생활터를 새로 건설한다는 명분에서 시행됐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왕권의 정통성을 강조하면서, 기존 기득권 세력의 경제적 군사적 토대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또한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수원화성을 건설한 후 아직도 구 세력들이 웅거하던 한양에서 수도를 수원으로 천도하려던 목적이 아니었는가도 추측된다. 수원화성에 당대 최고의 계획과 시공기술을 동원했고, 자급자족이 가능한 상업도시로 목표를 삼았으며, 지나칠 정도로 잦은 정조의 행차가 이를 방증한다.
정조와 정약용의 신도시
수원화성 건설의 계획자는 다산 정약용이었고, 공사 총책임자는 당시 좌의정이었던 채제공이었다. 정약용은 당대의 대실학자였으며 채제공은 소장 실학자들의 정치적 후견인이었다. 정약용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방면에 출중한 저술을 남긴 실학의 완성자였을 뿐 아니라, 예술과 건축에도 뛰어난 식견과 솜씨를 가지고 있었다. 정약용의 탁월한 능력을 알아본 정조는 약관 30대 초반의 중급 관리에 불과했던 그에게 개혁을 마무리짓는 국가적 사업인 수원화성 설계를 맡기게 된다. 최고의 천재답게 그는 1년여의 연구 끝에 수원화성의 계획개념과 구체적 방법론을 수록한 문서 <성설>을 정조에게 바쳤고, 매우 흡족해한 왕은 이를 수원화성 건설의 근거로 삼았다.
정약용은 이외에도 모두 6편의 성곽건축에 대한 저술을 작성했다. 여기에는 성곽방어에 불가결한 시설들의 필요성과 공사방법을, 거중기 등 새롭게 고안한 공사기구들의 제작법을 수록하고 있다. 후일 <화성성역의궤>라는 공사기록서에 수록된 그의 계획서는 실제 공사에 거의 대부분 반영되어 성곽 시설의 형태까지도 똑같이 건축됐으니, 현대적 의미에서 수원화성의 진정한 건축가는 바로 다산 정약용이었다.
수원화성은 성곽의 건축적 가치도 뛰어나지만, 원래의 도시계획적 개념도 탁월했다. 주민들이 사는 도시 자체를 방어기지로 생각했고, 농업을 진흥하여 자급자족적인 도시를 만들려했고, 능력있는 상권을 유치하여 남부 경기지역의 중심적 상업도시로서 발전시키려는 국토계획적 거점도시이기도 했다. 서호와 같은 대규모 저수지를 만들어 국유농장을 운영했고, 축산업을 장려하여 전국적인 소시장이 서기도 했다.
성곽건축에도 새로운 제도와 재료, 공법과 기구들이 고안되어 사용됐다. 수원성곽은 근본적으로 외침에 대한 도시방어가 목적인 군사시설이었다. 따라서 우선 강조한 것은 옹성과 치성이었다. 옹성이란 성문 밖에 둥그렇게 쌓은 또 하나의 성곽으로 성문을 공격하는 적을 배후에서 칠 수 있는 이중성곽이었다. 치성이란 성벽의 일부를 밖으로 돌출시킨 형태를 말한다. 치雉라고도 부르는 이 시설은 성벽에 달라붙은 적군을 측면에서 감시하고 공격할 수 있었다. 돌출된 치성 안이나 위에 특수 목적의 시설을 설치해 다양한 기능을 갖기도 한다.
수원성곽의 주재료는 돌과 벽돌이다. 벽돌은 북학파를 비롯한 대부분의 실학자들이 주장한 새로운 건축재료였다, 벽돌은 주로 암문 등 작은 홍예문과 공심돈 등 원형이나 곡선형의 시설물을 만드는데 사용됐다. 돌보다 크기가 작아 손쉽게 자유로운 형태를 만들 수 있으며, 일정한 규격의 벽돌을 가지런히 쌓음으로써 정돈되고 단정한 형태를 얻을 수 있었다. 벽돌은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조형의 길을 한국건축에 터준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수원화성의 공사는 방대한 규모에 비해 2년 반이라는 짧은 기간에 완성된다. 이는 물론 공사에 대한 조정의 확고한 의지와 주도면밀한 공사계획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전반적인 기술수준의 향상과 자재의 원활한 조달, 그리고 새로운 기술과 공사방법이 도입된 결과다.
무거운 돌들을 높이 끌어올려 쌓아야하는 수원화성 공사를 위해 특별한 기구까지 고안했다. 수동식 크레인이라 할 수 있는 거중기, 크고 작은 운반기구였던 녹로와 유형거 등 여러 종류의 공사장비들이 고안됐고, 인근 산에서 채취된 돌을 수레로 운반하기 위해 새로이 도로들을 정비했다.
아름답고도 강한 성곽
화성의 기본적인 개념은 기존 성곽제도를 혁신하는 것이었다. 기존 도시는 평지에 읍성을 쌓고 배후 뒷산에 산성을 쌓는 이중방어체제를 근간으로 했다. 평소에는 읍성에서 생활하다가 외침시에는 읍성을 버리고 산성으로 옮겨 항전하는 체제였다. 그러나 산성전투에서 이기던 지던, 생활의 터전인 읍성은 폐허로 남기 일쑤였다.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수원화성에서는 읍성 자체를 견고히 쌓아 자체 방어가 가능하도록 했다. 어디까지나 나라의 근본인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한 획기적 전략이요, 실학파의 민본사상의 승리였다.
성곽의 계획은 지형을 철저히 분석해서 활용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지형적 이점을 잘 활용하면 최소의 노력과 공사로 방어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수원화성의 입지는 서쪽에 높은 팔달산이 있고 남북으로는 평지며, 동쪽에는 낮은 구릉이 감싼다. 지형에 철저히 맞추어 축조한 결과로 구불거리고 불규칙한 전체 윤곽선을 얻었다. 이렇게 축조된 성곽의 총 길이는 5,418m에 이른다. 여기에 설치된 여러 가지 기능의 건물과 시설들을 간략히 소개한다.
장안문과 팔달문은 2층 루각의 문루를 올렸고 바깥에 반원형의 옹성을 둘렀다. 성문의 좌우에는 높고 육중하게 돌출된 적대를 두어 성문 좌우에서 적군을 감시하고 공격할 수 있도록 했다. 화서문 옆에는 서북공심돈을 두어 감시와 공격의 기능을 배가 시켰다.
암문(暗門)은 외부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위치시킨 비밀 출입구로 문루를 두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외관은 보통 반원형 벽을 올려 독특한 모습을 취한다.
북수문인 화홍문은 수원화성의 대표적인 건축이다. 7개의 아취를 틀어 수로를 확보하고 아취 위는 다리가 된다. 화홍문에는 긴 루각 건물을 세웠지만, 남수문은 루각없이 다리만 만들어졌었다.
노대는 지휘소인 장대와 인접하여 성 내외의 전체적인 동태를 살피는 시설이다. 서노대는 팔각 피라밋 모양으로 전돌을 쌓아 구성했다. 서장대는 뾰족한 2층 루각의 독특한 건물이다. 장대 앞에는 깃발을 세울 수 있는 게양대를 마련하여 성내 지휘본부로서 위용을 갖췄다. 팔달산 위에 설치된 서노대와 서장대는 수원화성 방어사령부가 위치한 핵심부였다.
공심돈은 수원화성의 구조물 가운데 가장 독특하며 아름다운 형태를 가진다. ‘돈’이란 원래 망을 본다는 뜻의 독립 망루였다. 돈에는 항시 소수의 군대가 머물면서 초소 역할을 한다. 공심돈은 돈대의 내부를 비워 여러 층으로 구성하고, 각 층마다 주변을 살피고 공격을 가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서북 공심돈은 모서리를 굴린 사각형의 높은 망루를 세우고 목조 포대를 세웠다. 수평적으로 펼쳐진 성곽 가운데 우뚝 솟은 수직적 형상과 돌과 벽돌을 나누어 여러 층으로 쌓은 디테일이 아름다운 건물이다. 동북공심돈은 벽돌로 원통을 쌓고 그 안에 나선형의 계단을 설치한 독창적인 모습이다. 나선형 계단 때문에 ‘소라각’이라고 부른다.
포루(砲樓)는 일명 적루라고도 하며, 돌출된 치성 위에 높은 여장을 쌓고 내부에 포대를 주둔시킨 강력한 화력기지다. 높은 여장 때문에 루각의 벽체가 가려지고, 지붕만 얹혀져 있는 견고한 외형이다. 또 다른 포루(鋪樓)는 치성 위에 다락집을 올려 병사들이 주둔할 수 있게 만든 시설이다. 성안에서는 2층건물이지만, 바깥에서는 1층건물로 보인다.
수원화성 성곽의 방어용 시설물들
문루 4 : 동서남북 네 곳에 둔 성문 (장안문 팔달문 창룡문 화서문)
암문 5 : 루각을 두지 않는 비밀출입문 (동서남북의 4암문과 서남암문)
수문 2 : 하천에 만든 수로문 (화홍문 남수문)
적대 4 : 성문 좌우에 높게 돌출된 감시소 (북문과 남문의 동서 적대)
노대 2 : 성밖의 동태를 살피는 지휘소 (서노대 동북노대)
공심돈 3 : 다층구조의 높은 전망대 및 공격소 (서북 남 동북공심돈)
봉화돈 1 : 봉화를 피워 신호를 전하는 통신소
포루 5 : 화포류 공격을 할 수 있는 토치카 (북동 북서 서 남 동포루)
포루 5 : 군사가 주둔할 수 있는 소대본부 (동구 북 서 동1 동2포루)
장대 2 : 지휘소가 있는 사령부 2층 루각 (서장대 동장대)
각루 4 : 성곽 모퉁이에 설치한 전망소 겸 초소본부 (동북 서북 서남 동남각루)
치성 8 : 치만 돌출시킨 감시대 (북동 서1 서2 서3 남 동1 동2 동3치)